명랑한 가난뱅이, 아씨시의 성 프란치스코
프란치스코는 1181년(혹은 82년) 겨울, 이탈리아의 아씨시에서 부유한 포복 상인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상술이 뛰어난 적극적인 상인이었고, 이 마을의 가장 부유한 젊은이로서 사교계의 리더였다. 순식간에 친구들을 모아들이고 농담을 하며 익살을 떨었다. 이 부자 청년은 축제에서 축제로 이어 살았고, 밤이면 거리를 쏘다니며 마치 음유시인이기나 한 것처럼 류트(손가락 등으로 뜯는 현악기)나 바이올린에 맞추어 노래를 불렀다.
그의 이런 명랑한 성품은 그가 포로가 되어 감옥에서 생활하게 되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만족할 이유라고는 하나도 없음에도 불구하고 언제나 그의 노래 소리와 농담이 들렸기 때문에 감옥의 동료들이 놀랄 정도였다.
이런 프란치스코의 성향은 7번 유형의 사람으로 보인다. 이들은 매우 명랑하고 낙천적이며 대개 인생을 즐기며 산다. 유머감각이 풍부해 남들을 웃길 수 있으며 자신에 대해서도 웃을 수 있는 사람들이다. 항상 쾌활한 이들은 적개심을 없애버리는 매력을 가지고 있다. 또한 세상의 모든 것이 멋지고 호기심을 자극하는 것들이다. 그래서 변화와 자극, 새로운 경험을 찾아다니며 삶의 기쁨을 최대로 만들기 위해 동분서주한다.
프란치스코의 젊은 시절은 이런 그의 성향을 잘 보여준다. 그는 상인의 아들이었지만 기사가 되어 큰 공을 세우고 싶어 했다. 그러면 귀족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싸움터에 나갈 때에도 값지고 화려한 옷을 준비했으며, 전쟁에 나가기만 하면 마치 금방 싸움에 이겨 귀족이 될 것처럼 흥분했다.
그 후 프란치스코는 모든 장비를 챙겨가지고 고향으로 돌아 왔다. 처음에 그는 자신의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갈망을 잘 알아차리지 못했다. 귀족이 되고 싶기도 했다가 갑자기 전쟁이나 무기 같은 것들이 허무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어떤 때는 세상의 목소리만 들리고, 어떤 때는 주님을 섬기고 싶은 갈망이 일어났다. 그는 모든 것으로부터 떠나 홀로 그분의 부르심을 확인하고 싶었다.
그토록 많은 친구와 어울려 다니던 그가 자신만의 방, 어두운 동굴 속에서 기도하기 시작했다. 날마다 하느님의 뜻이 무엇인지 분명해질 때까지 기도하였다. 오, 주님! 제게 당신의 길을 보여 주소서. 저에게 당신의 길을 가르쳐주소서. 그렇게 그는 기도하는 사람이 되어 갔다. 반면에 지나간 젊은 날을 회상하면 과거의 삶이 얼마나 어둡고 허무한지 염증이 났다. 얼마나 어리석었고 목적도 없었으며 유치하고 헛된 삶이었는지, 자신의 삶이 가련하기조차 했다. 그러나 다시 과거로 돌아간다면? 다시 유혹을 받게 된다면 거절할 수 있을까? 그는 자신을 믿을 수가 없었다. 조금만 불편하거나 지루해도 불안하고 두려워 온갖 흥미로운 것들을 찾아 헤매었던 자신이 아니던가. 그는 자신이 얼마나 보잘것없고 부서지기 쉬운 하찮은 존재인지 깨닫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하느님께 울부짖었다. 주여, 불쌍한 죄인에게 자비를 베푸소서! 이 동굴에서 보잘것없는 한 영혼이 완전한 믿음과 희망과 사랑으로 하느님께 부르짖을 때에 일어나는 기적이 일어난다. 나의 약함을 생각하면 모든 것이 두렵습니다. 그러나 당신의 선하심으로 저는 모든 것에 희망을 둡니다. 이것이 바로 프란치스코가 하느님께 올리는 기도의 핵심이었다.
마침내 그는 모든 것을 버렸다. 아버지와 어머니를 떠났고, 집과 가정, 재산과 돈을 버렸을 뿐 아니라 하느님께서 그 안에 있고 그가 하느님 안에 있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 곧 자기 자신을 버렸다.
7번 유형의 사람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이 자신이 갖고 있던 것들을 잃어버리는 것이다. 이들은 자신의 삶이 즐겁고 재미있으려면 재산과 능력, 친구와 자유로움까지 많은 것을 소유해야한다고 느낀다. 이들이 알아야할 중요한 사실은 이 세상의 행복과 만족을 추구하는 한 그것은 결코 얻어질 수 없다는 것이다. 충만함이란 무엇인가를 얻음으로써 생기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주님께서는 프란치스코를 도와 그의 낡은 자아를 벗어버리도록 해주셨다. 그는 기꺼이 지나칠 정도로?? 빈곤하게 되었으며 고통을 껴안았다.
그의 수도회는 더 작은 형제회 (lesser brothers)라 불렸다. 이는 철저한 가난과 겸손을 뜻한다. 이 세상 끝 날까지 자신보다 더 낮은 자는 없다는 섬김과 봉사를 의미한다. 그래서 그는 그의 형제들이 고위 성직에 오르는 것을 적극 반대하였으며, 어떠한 명령도 내리지 말라고 일렀다. .
그는 기존 수도자들처럼 기도하지 않고 자유롭게 기도했으며, 그의 회칙도 독창적이었다. 그는 전통적인 사고방식에서 벗어나 교회의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었는데, 즉 온 세상이 모두 기도의 집이고 성당이었다. 특히 가난한 이들과 자연과의 접촉을 통하여 하느님을 체험하였고 나병환자를 통해 십자가의 그리스도를 발견하였다.
권위에 매이지 않는 자유로움은 7번 유형의 사람들에게서 공통적으로 나타난다. 그러나 성인의 자유는 고통과 어려움을 회피하기 위한 자유가 아니라 자신을 억압하고 있는 퇴폐적인 악습으로부터의 자유였다. 하느님께 무조건 순종하는 것이 우리 인간을 얼마나 자유롭게 해주는 가를 자신의 삶으로 보여 주신 것이다.
하느님을 만나면서 프란치스코는, 맛나고 좋은 음식에서 거
친 음식으로, 부드럽고 멋진 옷에서 농부들의 모자달린 옷
으로, 친구들에게 베풀던 사람에서 구걸하는 사람이 되었
다. 그가 선택한 가난과 고통은 그의 육적인 성향, 곧 7번 유
형의 성향 -재미난 익살꾼, 아마추어 예술가, 음유시인- 과
는 전혀 상반되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는 더 이상 별난 재미
나 쾌락을 찾아다니는 데 집착하지 않고, 자신과 자신을 둘
러싼 세상에서 경이로움을 발견했다. 이러한 그의 경험은
다른 이들에게도 현실을 깊이 있게 받아들이고 자신의 내면
을 바라볼 수 있도록 인도했다.
7번 유형의 사람들은 대부분 창조적인 능력을 가진 사람들이 많다. 이들은 다양한 분야의 경험을 서로 결합하여 자신만의 독창적인 것을 만들어 낼 수 있는 것이다. 프란치스코 역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신비를 대중들에게 구체적이면서도 현장감 넘치게 드러내고자 애를 썼다. 그는 구유와 말과 양들과 짚북데기를 준비하여 성탄절의 의식을 거행함으로써 그리스도께서 비천하게 오신 모습을 그대로 재현했다. 12세기의 낡고 세속적인 교회체제에 타격을 입은 대중들은 프란치스코의 이런 자유에 큰 매력을 느꼈다. 그는 죽음을 앞두고 그의 형제들과 최후의 만찬까지도 거행하였다.
프란치스코가 하는 설교의 모든 것은 단지 복음 선포였다. 이런 영성을 바탕으로 한 프란치스코 공동체는 그가 살아있을 당시에도 거의 전 유럽을 휩쓸었다.
프란치스코가 살던 당시 중세(11-13세기) 가톨릭교회의 모습은 하느님과 교황의 이름으로 권력을 남용했다. 가난하고 겸손해야 할 성직자들마저 제국의 권력과 부를 누렸다. 신자들은 가난했고, 라틴어로 하는 미사는 알아들을 수도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프란치스코는 문전 탁발을 하며 가난한 농부들과 함께 노동을 했다. 설교도 지방 사투리로 예수님의 말씀을 전하고자 했다. 예수님이 어떻게 사셨는지, 어떤 말씀을 하셨는지, 자신이 몸으로, 행동으로 보여주고자 했다.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과 십자가 안에서 복음적인 생활로 돌아가려는 프란치스코의 갈망은 당시 교회에 새로운 힘과 자극을 주기에 충분했다.
프란치스코의 힘은 행동으로 보여주는 것이었다. 그는 먹기를 너무 즐기지 말라.는 말 대신에 맛있는 음식에다 재를 뿌리거나 찬 물을 부어 먹었다. 몸이 아파 사순시기에 닭고기를 먹었다고, 제자들에게 자신의 목에 밧줄을 걸게 한 후 온 동네를 끌고 다니라고 명하기도 했다. 조금이라도 동료를 의심하게 되면 그 순간 그 동료에게 자신의 입과 몸을 밟고 지나가도록 시켰다. 그는 자신이, 맛있고 편안한 것, 잘난 체 하는 것, 또 다른 이들을 판단하는 것 등, 자신이 잘 빠질 수 있는 많은 유혹에 대해 너무나도 잘 알았다.
7번 유형의 사람들은 아주 긍정적인 사람들이다. 그래서 자기 자신에 대해서도 매우 긍정적이다. 이만하면 인정받을 만하다. 나는 멋있는 사람이니까. 이게 이들의 무의식에 깔려있는 자신의 자아상이다. 그러나 프란치스코는 온 세상을 통틀어도 자기보다 더 쓸모없는 피조물은 없고, 더 큰 죄인도 없으며, 자기보다 더 깊은 악으로 떨어져 길을 잃은 영혼도 없다는 것을 보았다. 그는 하느님께서는 당신이 하고자 하는 그 놀라운 일을 위해서 그 이상 더 천한 피조물을 찾지 못하셨기에 나를 택하셨습니다. 모든 죄인들 가운데서 나보다도 더 천하고, 더 부족하고, 더 큰 죄인을 보시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세상의 존귀한 자, 아름다운 자, 강한 자, 지혜로운 자를 부끄럽게 하시고, 누구도 하느님 앞에서 자랑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 입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가난과 고통을 선택했지만 늘 명랑했다. 진정한 기쁨이란 진정한 고통과 함께 할 수 있을 때 얻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를 깨달은 성숙한 7번 유형의 사람들은 자신과 모든 사람들을 위해 항상 충분한 것이 마련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에 아주 적은 것에도 만족한다. 이것이야말로 고통과 괴로움을 회피하려는 즐거움이 아니라, 주님으로부터 오는 진정한 평화의 기쁨인 것이다. 프란치스코는 제자들에게도 항상 명랑하라고 당부했다. 악마에 속한 사람들은 우울하다. 우리는 주님 안에서 기뻐하고 즐거워야 한다.라고 말했다. 영혼이 편안하지 않을 때, 고독할 때, 어두울 때, 영혼은 쉽게 외부에서 위로를 찾으려 든다. 세상의 공허한 기쁨을 찾으려 드는 것이다. 그러므로 프란치스코 성인은 사도의 말씀을 되풀이하였다. 항상 기뻐하라!, 영적인 기쁨은 마음의 순수함과 항구한 기도에서 나오는 것이다!(완덕의 거울 95-96장)라고 말했다.
마침내 프란치스코 성인은 십자가 현양 축일인 9월 14일 아침, 주 예수 그리스도의 오상이 그의 양손과 발 그리고 옆구리에 생긴 것을 알게 되었다. 이는 그가 주님께 주님의 고통을 알게 해주시고, 그 고통을 가능하게 한 당신의 사랑을 알게 해소서라고 한 그의 간절한 기도에 대한 응답이었다.
그는 죽음을 준비하면서도 죽음 누이에 대한 노래를 불렀다. 거룩한 성령의 은총으로 나는 우리 주 하느님과 완전하게 일치하였습니다. 나는 주님 안에서 기뻐하고 즐거워할 수 있는 것이 당연합니다.(완덕의 거울, 121장)
주님과 완전히 합일함으로써 명랑한 가난뱅이 성자는 완전한 기쁨을 얻을 수 있었다. 그는 풍요로운 빈곤의 삶을 마감하면서 즉음조차도 자유롭고 기쁘게 맞이했다.
과적으로 살아갈 수 있게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우리가
하느님과 협력할 때 그것은 다른 의미를 내포한다. 곧 언제
나 기쁨과 고통이 어우러져 있는 현실을 직시하고 삶의 양
면을 모두 받아들이는 것이다. 세상에서 완전한 기쁨을 추
구하던 프란치스코 성인은 허무감만을 맛보았다. 그러나 주
님 안에서는 가난과 고통을 통해 완전한 기쁨의 길, 곧 죽음
에서 부활로 이르는 길을 발견한 것이다.
-야곱의 우물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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