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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례자숙소에서 내려다본 움브리아평원의 평화로운 아침 모습 6. 8월29일(월) 맑음. 본조르노! 아시시!! 지하 사부님무덤미사,성프란치스코대성당,끼에사누오바,성프란치스코 삐꼴리노, 주교관 마당,산타 마리아 마죠레,뀐따빌레의 베르나르도의 생가,산루피노성당, 성녀글라라생가,산타끼아라 대성당,로까 마죠레. "너 거룩한 도시, 아시시는 하느님의 축복을 받으리니, 너로 인하여 많은 영혼이 구원을 받을 것이며, 네 안에서 지극히 높으신 분의 종들이 살 것이며, 너로부터 많은 영혼이 간택되어 천국으로 들어갈 것이다." (사부님께서 아시시를 축복하신 내용중에서) 아침 일찍 일어나 순례자숙소에서 내려다본 움브리아평원의 아시시 모습은 정말 아름답고 평온한 모습이었습니다. 사부님께서 마시던 공기를 마시고 냄새를 맡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참 행복했습니다. 숙소 식당앞 마당에는 예쁜 꽃을 심어 놓고 숙소 현관 벽에 빨간꽃 화분을 매달아 놓은 모습은 참 아름다웠습니다.성프란치스코의 무덤과 제대 아침9시.성프란치스코 대성당의 지하 사부님 무덤에서 미사를 봉헌하였습니다. '우리는 한 형제' 입당성가가 울려 퍼지며 시간을 초월하여 사부님과 한 공간 안에서 미사를 드리는 기쁨은 말로 다 할 수 없는 기쁨이었습니다. 오늘도 사제의 손을 통하여 내려오시는 예수님의 성체를 영하며 태양의 찬가로 이 자리에 올 수 있게 해 주신 하느님께 찬미 드렸습니다. 성지, 장소가 주는 거룩함을 온몸으로 느끼며... 성 프란치스코 대축일 미사로 봉헌하였습니다.
세데솔리의 야고바형제(부인) 무덤 사부님 무덤을 중심으로 오른편에는 루피노, 안젤로 형제의 무덤이, 오른쪽에는 레오와 맛세오 형제의 무덤이 있었고, 성인의 무덤 맞은편에는 야고바 형제(부인)의 무덤이 있었습니다. 사부님과 함께 살았던 형제들은 참 행복하였을 것이란 생각을 했으며, 사부님을 따라 주님 포도원의 충실한 종이 될 수 있기를 기도 드렸습니다.
성프란치스코 대성당 아래층에서 본 모습(정면이 아래층성당으로 들어가는 문이다.)
아래층성당에서 1253년에 축성된 아래층성당에서는 사진으로만 보던 성화를 프레스코화로 직접 눈으로 볼 수 있어서 참 감사했습니다. 상본, 성화의 원래 크기와 입체감과 화가가 표현하고자 한 느낌을 생생히 느낄 수 있어서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 성 마르띠노 경당의 입구 아치에는 시모네 마르띠니가 그린 성 루도비코9세(축일:8월25일), 성루도비코주교(축일:8월19일), 성녀글라라(축일:8월11일), 헝가리의 성녀엘리사벳(우리형제회 주보성녀:축일.11월17일), 사부 성프란치스코(축일:10월4일), 파도바의 성안토니오(축일:6월13일), 알렉산드리아의 성녀가타리나(축일:11월25일)등 여러 성인의 모습이 있었습니다.
Scenes from the Life of Mary Magdalen: Noli me tangere-GIOTTO di Bondone 1320s.Fresco.Magdalen Chapel, Lower Church, San Francesco, Assisi 성녀 막달레나 경당에는 유명한 그림, 무덤에서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성녀 막달레나(축일:7월22일)에게 나를 만지지 말라고 하시며 가서 제자들에게 전하라는 말씀(요한20,1-2.11-18) 을 하시는 지오또의 그림이 있었습니다. 성녀 막달레나경당은 앞으로도 사부님과 관련된 성지에 몇번 등장하게 됩니다. (예: 폰테콜롬보에서 막달레나경당에 사부님께서 직접 그리셨다는 T (타우)가 있습니다.)
Madonna Enthroned with the Child, St Francis and four Angels-CIMABUE 1278-80.Fresco, 320 x 340 cm.Lower Church, San Francesco, Assisi 오른쪽 통로에 있는 시모네 마르티니가 그린 성녀글라라의 모습과 치마부에가 그린 '네분의 천사들의 찬미를 받으시며 아기 예수님을 안고 옥좌에 앉아 계시는 성모님과 그 옆에 서 있는 사부님의 전신모습을 직접 볼 수 있어서 참 행복했습니다. 사진으로 보고 생각했던 것 보다 훨씬 큰 벽화이었습니다. 이것이 사부님의 가장 오래된 초상이라고도 하며, 나중에 가게될 그렉치오에 있는 야고바부인이 주문했다는 눈물 흘리시는 성프란치스코 초상(크기가 생각보다 작았습니다)이 더 오래되었다고도 합니다. 나중에 그렉치오에서 치마부에가 그린 상본을 꺼내어 가까이 비교해보니 사부님의 얼굴이 두 작품에서 비슷하게 닮아 있었습니다.
Franciscan Allegories - GIOTTO c. 1330 Fresco Lower Church, San Francesco, Assisi 중앙제대 위의 가난, 순명, 정결, 영광의 천장화는 더욱 깊은 감동을 주었습니다. 이 천장화 밑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보냈는데 화가 지오또에게 감사했습니다.
Franciscan Allegories: Allegory of Poverty - GIOTTO 가난에 대한 묘사에서 예수님께서 주례자이시며 성프란치스코가 가난부인과 결혼하는 모습인데 한 아이가 가난부인의 맨발에 던진 가시덤불이 크게 자라서 가난부인의 머리에 얹는 아름다운 장미와 백합의 화관으로 변하는 묘사는 많은 생각을 하게 하였습니다. (지극히 위대한 가난)
Franciscan Allegories: Allegory of Chastity - GIOTTO 정결은 성안에 흰 옷 입은 여인으로 표현했는데 봉쇄, 공간 안에 자신을 가둔 정결녀로서 성프란치스코는 정결의 성으로 올라오려는 세 사람을 도와주고 계셨습니다. 사부님께 감사! 맨앞의 한사람은 재속프란치스코회(3회), 가운데는 작은형제회(1회), 맨끝은 글라라회(2회)를 표현하고 있었습니다. (빛나는 정결)
Franciscan Allegories: Allegory of Obedience - GIOTTO 순명은 수도자의 정신을 표현하는 것으로 두가지의 덕이 함께 있는데 분별과 겸손의 덕으로서 명목적순명이 아닌 '거룩한 분별'과 '거룩한 겸손'의 덕을 나타내고 있었습니다. 교만을 상징하는 반인반수를 다른천사가 저지하고 있었습니다. 맨 위 꼭대기에는 멍에를 두른 사부님이 하늘에서 내려온 두 개의 손 순명에 의해 인도되고 있었습니다. (거룩한 순종)
Franciscan Allegories: St Francis in Glory - GIOTTO 영광은 사부님께서 황금색 달마띠까 부제복을 입은 모습으로 의자에 앉아 계시며 천사들이 춤과 음악을 연주하고 있는 모습입니다. 천장화의 위치는 앞에는 가난, 뒤에는 영광, 왼편은 순명, 오른편은 정결을 표현하고 있었습니다. 여기에서 그냥 몇 시간이고 있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며 떠나기 아쉬웠습니다. 잔꽃송이 제2부 제3장에서 "하느님은 나에게 당신께 세 가지의 선물을 바치도록 요구하셨는데 나는 '나의 주님, 저는 온전히 당신 것입니다. 당신께서도 아시는 바와 같이 저는 수도복과 허리띠, 그리고 바지 한벌밖에 없습니다. 이 세가지도 모두 당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당신 대전에 무엇을 바치거나 드릴 수 있나이까' 하고 말하자 하느님께서 나에게 '가슴에 네 손을 넣고 거기서 찾아내는 것은 무엇이고 내게 바쳐라'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말씀대로 가슴을 뒤져보니 금화가 하나 들어있기에 그것을 하느님께 바쳤습니다. 나는 이것을 세 번 했습니다. 세번째 봉헌물을 바치고 난 후에 나는 세 번 무릎을 꿇고 내게 바칠 것을 주신 하느님께 찬미와 감사를 드렸습니다. 그러자 그 세가지 봉헌물이 바로 거룩한 순종과 지극히 위대한 가난과 빛나는 정결을 상징해 주고 있다는 것을 나는 즉시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나는 내 양심이 아무 것도 꾸짖지 못할 정도로 이 세 가지 허원을 잘 지켰습니다. 내가 가슴에 손을 넣어 하느님 자신이 거기에다 넣어주신 세 개의 금화를 그분께 다시 돌려드린 것과 똑같이, 하느님께서 당신의 지극히 거룩한 자비를 통해 주신 모든 좋은 것과, 모든 은혜에 대해 목소리와 마음을 다해 계속 하느님 당신을 찬미했습니다."
Madonna with St Francis and St John the Evangelist - LORENZETTI, Pietro 1320-25 Fresco Lower Church, San Francesco, Assisi 제대 오른편 앞에 있는 벽에는 유명한 황혼의 성모(석양의 성모)가 있었는데 아기예수님께서 성프란치스코와 사도성요한중에서 어느분을 더 사랑하느냐고 묻자 성모님께서는 엄지손가락으로 사부님을 가리키셨다는 일화를 그림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로렌제띠의 십자가의 죽음과 십자가에서 내리심, 그리고 사부님께서 오상을 받으시는 모습등 어느것 하나 감동적이지 않은 작품이 없었습니다. 유물관에서 1223년 교황호노리오3세가 인준한 회칙 진본을 볼 수 있었는데 유해 발굴 때 관에서 나온 것이라고 합니다.(또 하나의 진본은 바티칸에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레오 형제에게 써주신 자필 축복문도 진본이었는데 사부님의 T 타우 싸인이 있었습니다. (나중에 세라피노 신부님께서 순례단에게 이 축복문을 선물로 주셨습니다.) The Lord bless thee and keep thee. Show His face to thee and have mercy on thee. Turn His countenance to thee and give thee Peace The Lord bless thee. St. Francis of Assisi 레오 형제에게 내리신 축복 주께서 형제를 강복하시고 보호하소서. 주께서 당신의 얼굴을 형제에게 드러내 보이시고 자비를 베푸소서. 주께서 당신의 얼굴을 형제에게 돌리시어 평화를 주소서. 레오 형제, 주께서 형제를 축복하시리이다. Benedizione a Frate Leone Il Signore ti benedica e ti custodisca, mostri a te il suo volto e abbia misericordia di te. Rivolga verso di te il suo sguardo e ti dia pace. Il Signore benedica te, frate Leone.
성 프란치스코의 수도복 그리고 사부님의 여기저기 기운 수도복과 성녀글라라가 성인을 위해 만들어준 옷과 샌들, 야고바형제가 만든 사부님의 손수건 2장(성인께서 돌아가실 때 땀을 닦은 손수건) 관에서 나온 피가 뭍은 천조각, 성광, 동전, 돌, 아랍왕이 준 뿔나팔등 귀중한 유물이 보관되어 있었다. 그런데 사부님의 수도복은 갈색이 아니고 회색수도복이었는데 예전에 사진에서 보았을 때도 회색이구나 했지만 성인이 사시던 시대에는 회색을 입으셨던 것 같았습니다. (*나중에 몬테 까살레에서 카푸친형제들을 만났는데 거기에 빨아 널어놓은 수도복도 회색이었다. 그리고 1221년 우골리노회칙이후 당시 회개생활을 하는 도미니코3회의 검은의복과 구분하기 위해 프란치스코3회원은 회색옷을 입었다고 한다.*)
아래층대성당에서 윗층대성당으로 올라가는 입구에는 단순한 색깔로 십자가를 지고 가시는 예수님을 사부님께서 십자가를 지고 뒤따라가는 성화가 그려져 있었습니다. ("프란치스코야! 너 왜 따라오니? ... 예수님! 저도 제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의 뒤를 따라가고 싶습니다." 하시는 것 같았습니다.- 세라피노 신부님 설명) 아래층에서 윗층으로 올라가면서 성물방에서 다미아노 십자가와 한국어판 아시시 해설서등을 구입하였습니다.
윗층 대성당 내부 모습 (basilica superiore san francesco.) 윗층대성당에서 윗층대성당 중앙제대 옆쪽에는 치마부에의 십자가의 죽음이 갈색, 단순한 색으로 그려져 있었는데 화려한 채색보다 더 슬프게 보였으며 현대화가의 작품처럼 보였습니다. 중앙제대 위 천장에는 4대 복음사가, 성마태오(축일:9월21일), 성마르코(축일:4월25일), 성루가(축일:10월18일), 사도성요한(축일:12월27일)이 그려져 있었다. 중앙복도의 벽 윗 부분에는 오른쪽에는 구약16개, 왼쪽에는 신약18개가 그려져 있다. 벽의 아래 부분에는 1296년-1300년 사이에 성보나벤투라 대전기 일화에서 지오토가 그린 유명한 성프란치스코 생애가 28개의 프레스코화로 그려져 있었다.(사진에서 본 것보다 훨씬 큰 그림이었다) 28개의 성화 중에 세 번째 그림, 무기들로 장식된 궁전의 꿈, 환시에서 "이것은 모두 너와 네 기사들의 것이다." 라는 말을 듣고 그 후 출전하여 스폴레토 계곡을 지나가다가 "프란치스코야, 너는 주인과 종 중에서 어느 편을 섬기려 하느냐? 라는 물음을 듣고 "주인입니다" 라고 대답하고 집으로 돌아왔다는 일화가 있다. 네 번째, 1205년말, 나환자와 만남이 있은지 얼마 후 성다미아노 성당의 십자가 밑에서 기도하고 있을 때, "프란치스코야, 네가 보다시피 다 쓰러져 가는 내 집을 수리하여라" 라는 하느님의 음성을 듣게 되는데 여기에서 내 집은 당시의 가톨릭교회를 말하는 것이며 오늘날엔 우리 자신에게 하시는 말씀일 수도 있다. 여섯 번째, 라떼란대성당에서 인노첸시오3세 교황의 꿈의 일화가 그려져 있고
Legend of St Francis: 7. Confirmation of the Rule-GIOTTO di Bondone 1297-99. Fresco, 270 x 230 cm. Upper Church, San Francesco, Assisi 일곱 번째, 1209년 프란치스코 수도회의 회칙을 인노첸시오3세께서 구두 인준하며 회개의 설교를 할 수 있는 탁발수도회가 탄생되었다. (이때부터 사부님과 형제들의 머리를 삭뱔례 한 모습으로 확연히 나타난다) 그리고 리보또르또와 관련된 불 마차의 환시, 하늘에 걸려있는 5개 의자들의 환시, 아레쪼 마을에서 실베스텔 형제에게 마귀를 쫒게하는 모습, 그렉치오에서 만든 구유, 바위에서 물이 나오는 기적, 라베르나로 기도하러 가는 도중 베바냐에서 새들에게 설교하시는 모습, 라베르나에서 오상을 받으시는 모습, 뽀르지웅쿨라에서 돌아가신 사부님을 성다미아노 성당에서 글라라성녀께서 마지막으로 보는 모습등이 그려져 있었다. 지오토의 그림에서 배경으로 나오는 건물은 오늘날 현대 입체파화가의 그림처럼 여려 각도에서 보이는 부분을 한 장의 그림에다 그려 넣었다. 그리고 복도 위 천장에는 4명의 교회박사(4대 공교부). 성아우구스티노(축일:8월28일), 성암브로시오(축일:12월7일), 성대그레고리오1세교황(축일:9월3일), 성예로니모(축일:9월30일)와 여러 성인의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끼에사누오바(새성당) 성프란치스코의 출생지로 여겨지는 세곳중 하나로 왼편에 성인의 부모상이 서있다 끼에사누오바(끼에사Chiesa =성당, 누오바Nuova=new,새로운)로 가며 성프란치스코의 출생지로 여겨지는 세 곳을 가보았다.
1. 계단 아래에 있는 작은 문이 있는 곳. 현재 TOR(율수3회:1323년.요한22세인준,3회 회칙에 기원을 갖은 수도공동체 공식인준,재속3회와 분리)이 관리하고 있다고 하며 문옆의 벽에 아마 출생지를 뜻하는 부조판이 걸려있었다. 시청광장을 지나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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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프란치스코의 목각상 2 .끼에사누오바(새성당): 옷감 장사 터, 성인이 아버지로부터 감옥에 갇혔던 곳이며, 무기의 꿈을 꾼 곳에는 제대가 놓여 있었다. 성인의 오래된 목각상이 있었고 이곳은 성인의 아버지의 집이었고 성인의 어머니와 함께 부부동상이 세워져 있었다.
3.성프란치스코 삐꼴리노(작은프란치스코) 경당. ORATORIO DE SAN FRANCISCO "PICCOLINO" 성인이 태어났다고 추정되는 곳인데 아치모양의 작은 경당이었다. 앉는 곳은 그냥 일자형으로 벽에 붙여놓았다. 제대 위 벽에는 다미아노 십자가가, 왼쪽 벽에 사부님 판넬화가 걸려있었다.(진본인지는 잘모르겠다)
주교관 마당은 1206년 봄, 아시시의 귀도주교앞에서 재산의 포기와 아버지와의 결별한 사건이 있는 곳이며, “이제부터 나는 하느님께로 방향을 돌려, 그분을 하늘에 계신 나의 아버지라고 부르겠습니다.” 세라피노신부님께서 설명을 해주셨다. (세라피노신부님은 버스 이동중에도 성지에 대해 자세한 설명을 해주셨다) 회개 Metanoia 프란치스칸 영성의 핵심중의 하나로써 하느님께로의 완전한 귀의를 뜻하며, 하느님의 뜻에 온전히 자기를 표기하는 것이고, 하느님을 위한 무아(無我)요, 완전한 자기소멸(自己消滅)이다. 유언에도 나오듯이 이것이 바로 프란치스코가 깨달은 점이다.: "그분은 제 주인이기에, 그분의 뜻과 순종을 벗어나서는 어디에 가지도 무엇을 하지도 못할 정도로 그분의 수중에 매여 있기를 원합니다."(유언28절) -토마스 첼라노 전기 제 1생애의 주석67번 참조.- 성인께서 1226년 죽기전에 뽀르지웅쿨라로 옮겨지기 전 며칠 간 여기에 머물렀으며, 태양의 찬가중에 용서에 관한 부분(귀도주교와 아시시시장의 불화)을 지은 곳이다. 주교관 옆에 있는 아시시의 첫 주교좌 성당이었던 곳이 산타 마리아 마죠레(Santa Maria Maggiore)로 바뀌었으며 지진으로 프레스코화가 거의 파괴되었으며 지하에 아직도 발굴중인 곳에 내려가 석상이 놓여질 비어있는 공간에 올라가서 사진을 찍어보았다. 여기에서 성인께서 세례를 받았다고 전해지며 세례반은 성루피노성당으로 옮겨가 있었다.
뀐따발레의 베르나르도의 생가는 가까운 곳에 있었다. 문위에 표시문을 새겨 놓았는데 3층이상이 되는 집은 귀족집이라고 한다. 세 번의 복음서를 펼쳐본 성니꼴라오 성당은 없어졌다고 한다.
왼쪽 이오니아식 기둥의 건물은 기원전 100전 지어진 미네르바신전 인데 지금은 성모님께 봉헌된 성당이며, 이 광장은 아시시 시청 광장으로 오른꼭에 분수대가 보인다. 기원전 100년전에 지어진 이오니아식 건물인 미네르바신전이 광장에 있었는데 수바시오산 분도형제회에서 접수하였고 현재 TOR(율수3회:1323년.요한22세인준,3회 회칙에 기원을 갖은 수도공동체 공식인준,재속3회와 분리)이 관리하며 성모님께 봉헌된 성당으로 되어 있었다.
성당 중앙에는 12개의 별을 쓰고 계신 원죄없이 잉태되신 복되신 동정마리아 상이 있었고, 성당 입구 왼편에는 파도바의 성안토니오(축일:6월13일)상이 있으며
입구쪽 오른편에는 이마에 가시관 상처가 있는 카시아(움브리아지방)의 성녀리타(축일:5월22일)의 상이 있었습니다. 신전기둥에 기대어 앉아 있으니까 2000년 이전으로 돌아간 것 같은 착각이 들었습니다.
산루피노성당(성루피노는 아시시에서 복음을 전하다가 238년에 순교하셨음)의 왼편에 이어서 지어진 건물이 성녀글라라가 1194년에 태어나신 집이다. 마침 문이 열려있어서 들여다보니 입구에 성녀글라라를 새긴 부조판이 벽에 있었고 건물 벽에도 글라라성녀의 부조판이 붙어있었다.
성녀글라라의 생가 -오른쪽 벽에 성녀글라라의 모습의 부조가 생가임을 나타낸다
성녀글라라 생가의 안쪽 모습-마침 문이 열려 있어서 들여다 보았다. 루피노성당 안에는 사부님께서 세례를 받을 때 쓰였을 것으로 추정되는 세례반이 있었다. 그리고 입구에는 성체현시대를 들고 계신 성녀글라라상과 사부님의 상이 양옆에 서있었다.
사부님께서 세례를 받을 때 쓰였을 것으로 추정되는 세례반과 성화
성체 현시대를 들고 계신 성녀 글라라 상-성체현시대 주보성인 그리고 눈물을 흘리셨다는 통고의 복되신 어머니(축일:9월15일)상이 있었고 14세기 작품인 나무로 된 피에타상이 있었는데 미켈란젤로의 피에타와는 많이 다른 슬픔이 그대로 느껴지는 피에타상이었다. 실베르스텔형제는 여기 루피노성당에서 동료가 되었으며, 사부님은 루피노성당에 계시고 제자들은 리보또르또에서 불마차의 환시를 보았던 일화가 있다.
산타끼아라(Santa Chiara)대성당(예전;성지오르지오성당) 성녀글라라 대성당은 앞에서 보면 성프란치스코 대성당의 모습과 비슷한 모습이다. 이 성당은 예전에 성지오르지오 성당이었으며, 사부님께서 어릴 때 교육을 받았던 곳이고, 대성당이 완공될 때까지 유해를 모셨던 곳이며, 1228년 그레고리오9세(우골리노추기경)교황께서 시성을 선포한 곳이다.
1850년 셩녀글라라의 유해가 상하지 않은채로 발견되었으며, 1893년 셩녀의 수도복속에서 성녀 글라라의 회칙 원본이 발견됨 성녀글라라의 유해 앞에서 친구를 청하며 사부님의 작은나무이며 가난하신 예수그리스도를 온 마음으로 열렬하게 사랑하며 관상하고 흠숭한 성녀에게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시기를 기도 드렸습니다.
성녀 글라라의 생애를 보여주는 판넬화 1872년 성녀의 일생에 대한 8개의 그림이 있는 판넬화의 진본을 보았습니다.. 십자가 소성당에는 프란치스코성인에게 말씀하셨던 성다미아노 십자가 진본이 걸려 있었습니다.
"프란치스코, 가서 무너져가는 나의 집을 고쳐라" (1205년)- 성다미아노십자가 성다미아노 십자가는 1260년 성녀글라라의 유해를 이곳에 안치할 때 성다미아노성당에서 옮겨 왔다고 합니다. 다미아노 십자가 앞에서 성프란치스코의 찬미송을 바치고 이곳에 오게 해주신 하느님께 감사의 기도를 올렸다. 성당의 중앙제대에는 큰 거룩한 십자가가 걸려 있었는데 처음보는 십자가였다. 다미아노 십자가처럼 비잔틴양식의 십자가인데 사진을 찍어오지 못하여 아쉬웠습니다. *** 몇몇 성지(성프란치스코대성당,산타끼아라대성당,뽀르찌웅쿨라..)에서는 성지에 대한 예의와 보존에 대한 마음으로 사진을 찍지 않았으며 눈과 마음으로만 담아 왔습니다. 여기에 올린 성프란치스코대성당 내부의 몇개의 사진은 유럽갤러리에서 옮겨왔습니다.*** 성녀글라라 성당에도 뽀르지웅쿨라가 있었습니다. (원래 뽀르지웅쿨라, 성녀글라라성당의 뽀르지웅쿨라, 라베르나의 뽀르지웅쿨라 3개이다) 성녀께서는 옷(장백의)을 만들고 수를 놓는 손재주가 많으셨던 것 같다. 유물관에 있는 글라라성녀의 자른 금발머리카락도 보았다.
아시시 골목길 모습- 멀리 움브리아 평원의 모습이 보인다. 로까 마죠레 언덕을 오르다. 저녁식사 후 순례자 경당에서 성무일도를 바치고 우리들은 로까 마죠레로 올라갔다. 루르드의 로까 마죠레처럼 옛날 성인의 시대에 일반사람들에게 미치는 위압감은 대단하였을 것으로 보였다. 언덕에서 아시시의 야경을 내려다 보았다. *아죠레(Maggiore)와 성인의' 미노룸(Minorum), 작음' 에 대하여 생각해보았다.* 밤에 내려올 때 가로등이 없어 어두웠지만 하나도 무섭지 않았고, 성인께서 어렸을 때 뛰어 놀았을 골목길과 성다미아노 성당를 보수하기 위해 구걸하며 지나갔을 골목길이라는 생각에 우리동네 골목길처럼 친근하게 느껴졌습니다.
아시시 골목에 있는 성물가게의 진열장 모습
아시시 골목의 모습- 가운데 보이는 건물 벽에는 성프란치스코 대성당 아래층성당에서 보았던 황혼의 성모(석양의 성모)성화의 일부분(성모자부분)을 그려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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