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독서 사도 16,11-15
11 우리는 배를 타고 트로아스를 떠나 사모트라케로 직행하여 이튿날 네아폴리스로 갔다. 12 거기에서 또 필리피로 갔는데, 그곳은 마케도니아 지역에서 첫째가는 도시로 로마 식민시였다. 우리는 그 도시에서 며칠을 보냈는데, 13 안식일에는 유다인들의 기도처가 있다고 생각되는 성문 밖 강가로 나갔다. 그리고 거기에 앉아 그곳에 모여 있는 여자들에게 말씀을 전하였다. 14 티아티라 시 출신의 자색 옷감 장수로 이미 하느님을 섬기는 이였던 리디아라는 여자도 듣고 있었는데, 바오로가 하는 말에 귀 기울이도록 하느님께서 그의 마음을 열어 주셨다. 15 리디아는 온 집안과 함께 세례를 받고 나서, “저를 주님의 신자로 여기시면 저의 집에 오셔서 지내십시오.” 하고 청하며 우리에게 강권하였다.
복음 요한 15,26─16,4ㄱ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26 “내가 아버지에게서 너희에게로 보낼 보호자, 곧 아버지에게서 나오시는 진리의 영이 오시면, 그분께서 나를 증언하실 것이다. 27 그리고 너희도 처음부터 나와 함께 있었으므로 나를 증언할 것이다. 16,1 내가 너희에게 이 말을 한 이유는 너희가 떨어져 나가지 않게 하려는 것이다. 2 사람들이 너희를 회당에서 내쫓을 것이다. 게다가 너희를 죽이는 자마다 하느님께 봉사한다고 생각할 때가 온다. 3 그들은 아버지도 나도 알지 못하기 때문에 그러한 짓을 할 것이다. 4 내가 너희에게 이 말을 한 이유는, 그들의 때가 오면 내가 너희에게 한 말을 기억하게 하려는 것이다.”
지난주에 제 아버지께서 병원에 입원하셨습니다. 집에서 넘어지셨는데, 글쎄 요추 1번이 골절된 것입니다. 아마 연세가 많으셔서 한 번의 넘어짐으로도 크게 다치신 것 같습니다. 그래서 지난 한 주일동안 꼼짝 못하시고 누워만 계셨습니다. 이렇게 누워만 계시던 아버지께서 이런 말씀을 하시더군요.
“이렇게 누워 있으니까 앉아 있는 사람이 너무나 부럽다.”
우리가 보통 피곤하고 힘들 때 “조금만 누워 있었으면 좋겠다.”라고 말하지요. 그러나 계속 누워 있을 수 있을까요? 당연히 계속 누워있지 못합니다. 그렇다고 계속 앉아 있지도 못합니다. 또 계속 서 있지도 못합니다. 누워있기도 또 앉아있기도 또 서 있기도 해야 합니다.
우리의 삶도 그렇지요. 힘들 때에는 누워서 편히 쉴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하며, 조용하게 앉아서 기도하고 묵상할 수 있는 시간도 필요합니다. 그리고 열심히 활동하는 서서 돌아다니는 시간도 필요하지요. 그래야 잘 사는 삶입니다. 즉, 즐겁고 행복한 시간도 필요하겠지만, 우리의 삶 안에서는 고통과 시련의 시간도 필요하다는 것이지요.
하지만 사람들은 고통과 시련의 시간은 제발 찾아오지 않기를 바라며, 대신 즐겁고 행복한 시간만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것이 일반적인 마음인 것 같습니다. 그래서 고통과 시련이 찾아올 때에는 온갖 불평불만으로 더욱더 내 삶의 자리를 힘들게 만들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피하고 싶은 고통과 시련의 시간 역시 내 삶의 일부라고 생각하면서 기쁜 마음으로 받아들일 때, 내 삶의 자리를 더욱 더 풍요롭게 만들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오늘 복음을 통해서도 말씀하시지만, 우리가 당신 곁을 떨어져 나가는 것을 원하시지 않습니다. 당신의 곁에서 당신께서 약속하신 영원한 생명을 누리면서 기쁘고 행복하게 잘 살기를 원하십니다. 그런데 그 삶 안에도 고통과 시련은 분명히 있습니다. 따라서 이러한 시간을 피하려고만 한다면, 이 안에 계시는 주님을 피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며 동시에 주님께서 약속하신 영원한 생명도 나의 것으로 만들 수가 없게 될 것입니다.
내게 주어진 모든 시간을 주님과 함께 하는 시간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좋은 것만을 취하는 것이 아니라, 피하고 싶은 순간 역시 주님의 자리를 만들어 드려야 언제나 주님과 함께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때 우리가 간절히 바라는 참 기쁨과 행복이 있는 하느님 나라가 그리 멀리에 있는 나라가 아님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우리에게 다가오는 그 모든 시간에 감사하면서, 그 안에 계신 주님을 생각할 수 있는 행복한 오늘을 만드시길 바랍니다.
행복한 결혼 생활을 하려면 한 사람과 여러 번 사랑에 빠져야 한다(믹논 맥로린).
병실에서 어버이날 행사를 가졌지요. 어버이노래를 연주하는 큰형부부.
말이 씨가 된다.
“말이 씨가 된다.”는 속담이 있지요. 늘 말하던 것이 마침내 사실대로 되었을 때를 이르는 말입니다. 이 속담을 보면 정말로 그렇다는 생각을 자주 하게 됩니다.
실제로 “피곤해 죽겠어.”, “아이고 죽겠네.”라고 말하는 사람의 인상이 좋은 것 봤습니까? 이러한 말을 하면서 밝은 표정을 짓는 사람은 절대로 없습니다. 또한 “나는 할 수 있어.”, “감사합니다.”, “사랑해요.”라는 말을 하면서 온갖 우거지상을 쓰고 있는 사람도 보기 힘듭니다. 이러한 사람들은 아주 환한 표정을 지면서 사람들에게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어떻습니까? 이렇게 사람들의 모습에서 정말로 말이 씨가 된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그런데 요즘 길을 가다보면 아이들의 말에 보통 신경 쓰이는 것이 아닙니다. 아주 입에 욕을 달고 사는 것 같습니다. 습관이 되어서 자기 자신도 모르게 욕이 나오는 것 같더군요.
자신이 쓰는 말이 우리의 인생을 결정된다는 것을 생각하니, 지금 습관처럼 욕을 쓰고 있는 아이들의 모습에 우리의 미래가 어둡게 느껴지는 것은 저만의 걱정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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