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독서 집회 36,1-2.5-6.13-22
1 만물의 주 하느님, 저희에게 자비를 베푸시고, 2 모든 민족들 위에 당신에 대한 두려움을 펼치소서. 5 주님, 당신 말고는 어떤 신도 없다는 사실을, 저희가 아는 것처럼 그들도 알게 해 주소서. 6 새로운 표징을 보여 주시고 다른 기적을 일으켜 주소서. 13 야곱의 모든 지파들을 모아들이시고, 16 처음처럼 그들 각자에게 상속 재산을 나누어 주소서. 17 주님, 당신 이름을 지닌 백성을 불쌍히 여기시고, 맏아들로 대우해 주신 이스라엘을 불쌍히 여기소서. 18 당신의 성소가 있는 도성이요, 당신의 안식처인 예루살렘에 자비를 보이소서. 19 당신 위업에 대한 찬미로 시온을 채우시고, 당신 영광으로 당신의 성전을 채우소서. 20 당신께서 한처음에 창조하신 이들을 증언해 주시고, 당신의 이름으로 선포된 예언들을 성취시켜 주소서. 21 당신을 기다리는 사람들에게 보답을 주시고, 당신의 예언자들이 옳다는 것을 드러내 주소서. 22 주님, 당신 백성에 대한 호의로 당신 종들의 기도를 들어 주소서. 이 세상 만민이 당신께서 영원하신 주 하느님이심을 깨닫게 하소서.
복음 마르 10,32-45
그때에 제자들이 32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 길이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 앞에 서서 가고 계셨다. 그들은 놀라워하고 또 뒤따르는 이들은 두려워하였다. 예수님께서 다시 열두 제자를 데리고 가시며, 당신께 닥칠 일들을 그들에게 말씀하기 시작하셨다. 33 “보다시피 우리는 예루살렘으로 올라가고 있다. 거기에서 사람의 아들은 수석 사제들과 율법 학자들에게 넘겨질 것이다. 그러면 그들은 사람의 아들에게 사형을 선고하고 그를 다른 민족 사람들에게 넘겨 34 조롱하고 침 뱉고 채찍질하고 나서 죽이게 할 것이다. 그러나 사람의 아들은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날 것이다.” 35 제베대오의 두 아들 야고보와 요한이 예수님께 다가와, “스승님, 저희가 스승님께 청하는 대로 저희에게 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하고 말하였다. 36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내가 너희에게 무엇을 해 주기를 바라느냐?” 하고 물으시자, 37 그들이 “스승님께서 영광을 받으실 때에 저희를 하나는 스승님 오른쪽에, 하나는 왼쪽에 앉게 해 주십시오.” 하고 대답하였다. 38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너희는 너희가 무엇을 청하는지 알지도 못한다. 내가 마시는 잔을 너희가 마실 수 있으며, 내가 받는 세례를 너희가 받을 수 있느냐?” 하고 물으셨다. 39 그들이 “할 수 있습니다.” 하고 대답하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마시는 잔을 너희도 마시고, 내가 받는 세례를 너희도 받을 것이다. 40 그러나 내 오른쪽이나 왼쪽에 앉는 것은 내가 허락할 일이 아니라, 정해진 이들에게 돌아가는 것이다.” 41 다른 열 제자가 이 말을 듣고 야고보와 요한을 불쾌하게 여기기 시작하였다. 42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가까이 불러 이르셨다. “너희도 알다시피 다른 민족들의 통치자라는 자들은 백성 위에 군림하고, 고관들은 백성에게 세도를 부린다. 43 그러나 너희는 그래서는 안 된다. 너희 가운데에서 높은 사람이 되려는 이는 너희를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44 또한 너희 가운데에서 첫째가 되려는 이는 모든 이의 종이 되어야 한다. 45 사실 사람의 아들은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고, 또 많은 이들의 몸값으로 자기 목숨을 바치러 왔다.”
옛날 CF 광고 카피 중 하나가 갑자기 기억나네요. 그 광고 카피는 다음과 같습니다.
‘개구쟁이라도 좋다. 튼튼하게만 자라다오.’
아마 많은 분들이 기억하실 것입니다. 그리고 이 광고 카피처럼 자녀들이 튼튼하게만 자라길 원한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은 것처럼 보입니다. 튼튼한 것은 저절로 주어져야 하는 것이고, 공부를 잘 해야 하며 다른 능력도 덤으로 몇 가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시지 않습니까? 그래서 학원을 몇 군데나 다니면서 힘들어하는 아이에게 항상 하시는 말씀.
‘다 너를 위한 거야.’
모든 아이가 다 반에서 1등을 할 수 없을 텐데, 많은 부모들이 1등으로 키우기 위해 애를 쓰시는 것 같습니다. 그 1등 때문에 자녀들의 신앙문제가 뒷전으로 물러날 때가 얼마나 많은지요? 제가 본당신부로 있을 때, 어떤 어머니께서 이런 말씀을 하시더군요.
“제 딸이 고3이 되어서요. 이제 성당에 못 다니게 하려고요. 대학 들어가서 성당 다니면 되잖아요.”
제가 그러면 안 된다고. 신앙은 쉬었다가 다시 나가기를 반복하는 자기 편한 대로 하는 것이 아니라고 말씀드리면 이렇게 이야기하시지요.
“제 딸이 대학 떨어지면 신부님이 책임지시겠어요?”
눈에 보이는 것만 믿으려하는 우리들의 어리석음입니다. 세상의 기준으로만 생각하는 우리들의 우둔함입니다. 그러한 기준으로 살다보면 결국 어렵고 힘듦을 경험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이 안에서 진정한 행복을 얻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 역시 처음에는 이 세상의 기준이 먼저였나 봅니다. 오늘 복음에서 제베대오의 두 아들 야고보와 요한이 예수님께 “스승님께서 영광을 받으실 때에 저희를 하나는 스승님 오른쪽에, 하나는 왼쪽에 앉게 해 주십시오.”라고 청하지요. 영광의 자리에 자신들도 앉고 싶다는 욕심이지요. 그런데 이 모습에 다른 열 제자 역시 불쾌하게 여기더라는 것입니다. 자신들도 그 영광의 자리에 앉고 싶은데, 야고보와 요한이 먼저 선수를 쳐서 말했으니까요.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분명히 말씀하시오.
“너희는 그래서는 안 된다. 너희 가운데에서 높은 사람이 되려는 이는 너희를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세상의 기준으로 살아가서는 안 됩니다. 또한 세상의 기준으로 주님을 따르려고 해서도 안 됩니다. 그보다는 주님께서 원하시는 기준, 주님께서 사셨던 그 모습으로 우리 역시 살아야 합니다. 그 기준과 모습이 세상에서는 낮은 사람이 되는 길이라도 끝까지 따를 때, 주님께서 약속하신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게 될 것입니다.
다른 사람의 생각에 인생을 맞춰가는 것은 노예나 다름없다(라와나 블랙웰).
절벽에 위치한 수도원. 주님을 따르려는 마음 때문에 세상을 떠날 수 있었지요.
긍정적인 생각 갖기.
정말로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힘든 순간이 주어질 때가 있습니다. 그때에는 “내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어.”라는 탄식이 저절로 나오게 되지요. 그런데 이렇게 말하면 안 된다고 합니다. 이 말은 긍정적인 방향으로 나아가지 못하게 하는 말이기 때문입니다. 즉, 위와 같은 말을 할 때, 이런 말을 덧붙여 보면 어떨까요?
‘아직’
이 짤막한 단어 하나가 불러일으키는 효과는 엄청납니다. 왜냐하면 이 단어 하나로 부정적인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무는 것을 막아주기 때문입니다.
“아직 내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어.”
지금은 아무것도 할 수 없지만, 곧 할 수 있는 것들이 생길 수 있다는 것이지요. 긍정적인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는 여지가 얼마나 많습니까?
고대 로마 철학자 에픽테토스의 말이 생각납니다.
“우리를 불안하게 만드는 것은 사물이나 사건이 아니다. 오히려 그것을 바라보는 우리의 의견이 불안함을 조장한다.”
긍정적인 방향으로 나아가게끔 만드는 나의 의견들을 계속해서 만들어 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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