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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명연신부님의 글

~ 빠다킹 신부님과 새벽을 열며,,, ~

2013년 7월 11일 성 베네딕토 아빠스 기념일

제1독서 창세 44,18-21.23ㄴ-29; 45,1-5

그 무렵 18 유다가 요셉에게 나아가 말하였다. “나리, 이 종이 감히 나리께 한 말씀 아뢰겠습니다. 나리께서는 파라오와 같으신 분이시니, 이 종에게 노여워하지 마십시오.
19 나리께서 이 종들에게 ‘아버지나 아우가 있느냐?’ 물으시기에, 20 저희가 나리께 대답하였습니다. ‘저희에게 늙은 아버지가 있고, 그가 늘그막에 얻은 막내가 있습니다. 그 애 형은 죽고 그의 어머니 아들로는 그 애밖에 남지 않아, 아버지가 그 애를 사랑합니다.’
21 그러자 나리께서는 ‘그 아이를 나에게 데리고 내려오너라. 내 눈으로 그를 보아야겠다. 23 너희 막내아우가 함께 내려오지 않으면, 너희는 다시 내 얼굴을 볼 수 없다.’ 하고 이 종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24 그래서 저희가 나리의 종인 저희 아버지에게 올라갔을 때, 나리의 말씀을 아버지에게 전하였습니다.
25 그 뒤에 저희 아버지가 ‘다시 가서 양식을 좀 사 오너라.’ 하였지만, 26 저희는 이렇게 대답하였습니다. ‘저희는 내려갈 수 없습니다. 막내아우가 함께 가야 저희가 내려갈 수 있습니다. 막내아우가 저희와 함께 가지 않으면, 저희는 그 어른의 얼굴을 뵐 수 없습니다.’
27 그랬더니 나리의 종인 저희 아버지가 저희에게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내 아내가 나에게 아들 둘을 낳아 주었다는 것을 너희도 알지 않느냐? 28 그런데 한 아이는 나를 떠났다. 나는 그 애가 찢겨 죽은 것이 틀림없다고 말하였고, 사실 나는 지금까지도 그 아이를 다시 보지 못하였다. 29 그런데 너희가 이 아이마저 나에게서 데려갔다가 무슨 변이라도 당하게 되면, 너희는 이렇게 백발이 성성한 나를, 비통해하며 저승으로 내려가게 하고야 말 것이다.’”
45,1 요셉은 자기 곁에 서 있는 모든 이들 앞에서 더 이상 자신을 억제하지 못하고, “모두들 물러가게 하여라.” 하고 외쳤다. 그래서 요셉이 형제들에게 자신을 밝힐 때, 그 곁에는 아무도 없었다. 2 요셉이 목 놓아 울자, 그 소리가 이집트 사람들에게 들리고 파라오의 궁궐에도 들렸다.
3 요셉이 형제들에게 말하였다. “내가 요셉입니다! 아버지께서는 아직 살아 계십니까?” 그러나 형제들은 요셉 앞에서 너무나 놀라, 그에게 대답할 수가 없었다. 4 그래서 요셉은 형제들에게 “나에게 가까이 오십시오.” 하고서는, 그들이 가까이 오자 다시 말하였다.
“내가 형님들의 아우 요셉입니다. 형님들이 이집트로 팔아넘긴 그 아우입니다. 5 그러나 이제는 저를 이곳으로 팔아넘겼다고 해서 괴로워하지도, 자신에게 화를 내지도 마십시오. 우리 목숨을 살리시려고 하느님께서는 나를 여러분보다 앞서 보내신 것입니다.”


복음 마태 10,7-15

그때에 예수님께서 사도들에게 말씀하셨다. 
7 “가서 ‘하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하고 선포하여라. 8 앓는 이들을 고쳐 주고 죽은 이들을 일으켜 주어라. 나병 환자들을 깨끗하게 해 주고 마귀들을 쫓아내어라.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
9 전대에 금도 은도 구리 돈도 지니지 마라. 10 여행 보따리도 여벌 옷도 신발도 지팡이도 지니지 마라. 일꾼이 자기 먹을 것을 받는 것은 당연하다.
11 어떤 고을이나 마을에 들어가거든, 그곳에서 마땅한 사람을 찾아내어 떠날 때까지 거기에 머물러라.
12 집에 들어가면 그 집에 평화를 빈다고 인사하여라. 13 그 집이 평화를 누리기에 마땅하면 너희의 평화가 그 집에 내리고, 마땅하지 않으면 그 평화가 너희에게 돌아올 것이다.
14 누구든지 너희를 받아들이지 않고 너희 말도 듣지 않거든, 그 집이나 그 고을을 떠날 때에 너희 발의 먼지를 털어 버려라. 15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심판 날에는 소돔과 고모라 땅이 그 고을보다 견디기 쉬울 것이다.”



어제 재미있는 유머 하나를 보게 되었습니다. 여러분들도 한 번 맞춰 보세요.

“노처녀들이 가장 싫어하는 말은 무엇일까요?”

저는 시집가라는 말, 늙어 보인다는 말 등을 예상했지요. 그런데 정답은 다음의 말이라고 합니다.

“아줌마! 꼭 처녀 같아요!!”

어때요? 정말로 싫어하는 말이 될 것 같지 않습니까? 자신이 처한 상황에서 듣기 싫은 말이 있습니다. 또 반대로 들으면 기분 좋아지는 말도 있지요. 그런데 반드시 내가 듣고 싶은 말만 들어야 할까요? 기분이야 좋을 수 있겠지만 그러한 말이 꼭 내게 좋은 것이 아닐 때가 더 많습니다. 반대로 그 순간에는 듣기 싫은 말이지만 결국은 내게 도움이 되고 커다란 힘이 되기도 합니다. 따라서 듣고 싶은 말만 들으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내게 필요하고 유익한 말을 들을 수 있는 넓은 마음이 필요합니다.

어떤 청년은 자기 부모가 이야기하는 성당 가라는 소리가 그렇게 듣기 싫다고 합니다. 강요의 목소리로 들려서 성당이라는 소리만 들으면 짜증이 날 정도라고 하더군요. 그런데 부모가 왜 성당에 가라고 하는 것입니까? 자기 자신에게 무슨 혜택이 주어져서 하는 말일까요? 아니지요. 다 사랑하는 자녀 영혼의 구원을 위해서 싫어해도 말하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을 보면 예수님께서 사랑하는 제자들을 세상에 파견하시지요. 솔직히 당신이 뽑은 제자들의 모습은 그리 대단하지 못합니다. 부족함이 너무나도 많은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더 많은 것들을 필요로 할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오히려 가지고 가지 말라고 하지요. 돈도 옷도 신발도 지팡이도 지니지 말라고 합니다. 그리고 받으려고만 하지 말고 거저 주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을 듣고 기쁘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아무것도 주지 않고 파견하시고, 고생길이 훤하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이렇게 파견을 했을 때 하느님의 권능과 사랑을 확실하게 체험할 수 있기 때문에 제자들이 듣기 싫어할 그러한 명령을 내렸던 것입니다.

결국 제자들은 이 예수님의 말씀을 그대로 따릅니다. 그리고 그들은 커다란 기쁨을 얻게 됩니다. 몸은 힘들지만 마음으로는 주님께 대한 사랑으로 더 큰 열정을 갖게 되었음을 기억하시길 바랍니다.

우리 삶 안에서도 주님의 이 명령은 계속됩니다. 정말로 따르고 싶지 않고, 듣고 싶지 않은 주님의 말씀입니다. 그러나 이를 따를 때 과거의 제자들처럼 큰 기쁨과 행복을 얻게 될 것입니다.

다시 도전하라. 또다시 실패해도 좋다. 이번엔 한결 성공에 가까워져 있을 테니까(사뮈엘 베케트).


교구청 사제관 성당의 모습입니다.


노르웨이의 어느 어부의 이야기

노르웨이에서 있었던 어느 어부의 이야기입니다. 이 어부는 두 아들과 함께 바다로 나갔지요. 그런데 갑자기 세찬 바람이 불고 먹구름이 끼더니 폭풍우가 몰아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열심히 육지를 향해 노를 저었지요. 그러나 파도가 너무 거세서 방향을 잃고 만 것입니다. 더군다나 어두운 밤이 되니 더욱 더 어느 쪽이 육지인지를 알 수가 없었습니다.

바로 그 순간 불기둥을 보게 됩니다. 그리고 어부는 ‘저 불기둥 쪽이 육지일 거야.’라는 생각으로 이 불기둥만을 바라보면서 노를 저었습니다.

드디어 부두에 도착했고, 이들은 서로 부둥켜안으면서 살았다고 기뻐했지요. 바로 그 순간 아내가 울면서 다가와 말하는 것입니다.

“여보. 큰 일 났어요. 집에 불이 나서 홀라당 다 타 버렸어요.”

맞습니다. 먼 바다에서 보았던 그 불기둥은 바로 자기 집이 타면서 생겼던 것이었습니다. 물론 집이 전소된 것은 아내의 입장에서는 아프고 슬픈 일이지만, 자기와 아들들을 살릴 수 있었던 기쁜 일이 되었지요. 한쪽에서는 재앙의 불기둥, 다른 쪽에서는 희망의 불기둥인 것입니다.

어느 쪽을 바라보느냐에 따라 지금의 상황이 바뀔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고통도 선택적이 아닐까요? 이 선택은 바로 내 자신의 몫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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