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월 2일 토요일 *위령의 날(R) - 마태11,25-30
“나에게 오너라. 내가 너희에게 안식을 주겠다.”
<내 안에 천상 예루살렘>
형제들과 산행을 다닐 때 마다
오늘 복음을 온몸으로 묵상하곤 합니다.
1박 2일,
혹은 2박 3일 산행을 하려면
필요한 물품들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그래서 꼭 필요한 물품들을 중심으로 리스트를 만듭니다.
계획이 마련되면
이제는 짐을 싸기 시작해야죠.
먼저 각자
머리끝까지 올라오는
큰 배낭을 하나씩 준비합니다.
그 안에
별의 별 것들이
다 들어갑니다.
쌀, 라면, 밑반찬, 과일, 과자,
휴대용 버너, 코펠, 침낭, 우의, 랜턴, 미사도구,
그 외 개인 짐들...
바리바리 싸고 나서
저울에 올려보면 20-30Kg는 너끈히 나갑니다.
평지에서도
걷기가 꽤 힘든 배낭을 메고
수십Km를 오르락내리락하려니 얼마나 힘들겠습니까?
산 능선을
따라 걷다가
가끔씩 경치 좋은 곳에서
잠시 쉴 때는 배낭을 내려놓습니다.
그 순간의 해방감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을 정도입니다.
예수님은
어쩌면 꿀 같은 ‘휴식’같은
존재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무거운 멍에를 잔뜩 메고 가고 있는
우리 인생길에 한 줄기 소나기처럼
시원한 존재, 먹장구름 사이를 뚫고
화사하게 나타나는 무지개 같은 존재,
갈증 끝에 만나는
얼음장같이 차가운 옹달샘 같은 존재...
하느님께서는
팍팍한 일과 속에 고생하며
살아가는 우리가 가끔이나마
참 평화를 맛보기를 바라십니다.
지고 가는 짐이 너무 무거워
주기적으로 모든 것 내려놓고 쉬어가기를 원하십니다.
때때로 참된 평화,
제대로 된 안식을 누리기를 원하십니다.
짧은 순간의 안식을 통해서나마
잠시 피로를 씻고 새롭게 시작하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나
의외로 사람들이
의외로 참 휴식,
진정한 안식,
제대로 된 평화를
맛보지 못하고 살아갑니다.
그 이유가
무엇인가 생각해봅니다.
아무래도 내 안에
그 누군가가 들어와
있어서 그렇습니다.
그러다보면
내 삶을
내가 주도적으로
이끌어가지 못하게 됩니다.
누군가가 떡하니
내 중심에 자리를 차지하고 있으니
내적인 평화나 고요도 기대하기 힘듭니다.
당연히 기도생활이나 영적생활도 지지부진합니다.
필요한 노력은 한 가지
내 안에서 ‘그’를 쫒아내는 것입니다.
그를
몰아내고 나면
또 다른 ‘그’가 들어올 가능성이 많습니다.
그래서 재빨리
그 자리를 하느님께
내어드리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4세기
수도생활의 대가였던
에바그리우스 폰티쿠스는
그 자리를 ‘하느님의 처소’
‘천상 예루살렘’이라고 명명했습니다.
내 안에
하느님 나라,
내 안에 천상 예루살렘이
마련될 때
이제 더 이상
나는 다른 사람들과
사사건건 다투게 되지 않습니다.
더 이상
그 누군가가
내 인생을 좌지우지하지도 않습니다.
내가
내 삶을 당당하게
주도적으로 이끌어갈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 안에
그 누구도 함부로
들어올 수 없으며
침해할 수도 없는 작은 공간
하나 만드는데 힘써보면 좋겠습니다.
†살레시오회 한국관구 부관구장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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