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수행자 (Hermit :1670)
작가 : 도우 제리트(Dou Gerrit : 1613- 1675)
소재지 : 미국 워싱턴 국립 미술관
생활 환경의 개선과 의학의 발달로 수명 100세 시대가 시작되었단 구호가 현실화되고 있으며 이런 현실에서 과거 생각지 못했던 새로운 시도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스포츠나 여흥을 통한 젊음과 건강 유지나 증진이 아니면, 지적인 훈련을 통해 과거 상상 할 수 없었던 높은 정신 세계에 대한 기대를 약속하고 있다.
이 작품은 바로 이런 시기에 과거와 전혀 다른 노년기를 맞아야 현대인들에게 멋지고 바른 삶의 방향을 제시할 수 있는 교훈적 내용을 담은 작품이다.
작가는 네델란드 대표 작가로 평가되는 렘브란트(Rembrant)의 제자로 스승의 기법을 전수받은 후 자기만의 화풍을 창출했다. 스승의 영향에서 벗어나면서 세부 묘사와 특히 초상화 제작에 뛰어난 기량을 발휘했다.
그가 남긴 초상화들은 스승인 렘브란트가 남긴 권문 세도가들의 초상화와 전혀 다르게, 세속을 떠난 삶을 살아가던 은둔 수도자의 모습을 통해 스승과 다른 차원의 인생을 제시했다
먼저 이 작품의 주인공은 이름처럼 은둔 수도자이다 은둔 수도생활은 초대 로마 교회가 박해받던 처지에서 종교자유를 얻으면서 기득권을 지닌 처지가 되자, 신앙의 이완 현상과 함께 여러 부패 현상이 생기기 시작했을 때 ,여기에서 탈출해서 하느님의 순수함을 보이고자 하는 열정에서 시작된 수도생활의 형태이며 이것은 초세기 교회의 부패를 막는 소금 역할을 했다.
작가가 활동하던 시대의 네델란드는 무역과 식민지 개척으로 대단한 번영을 누리고 있었다 칼빈의 가르침인 “신의 예정설”은 이 세상에서 구원의 확인은 부와 번영을 이루는 것이란 가르침으로 신자들을 가르치면서 신앙의 충실이 현세 삶의 번영이라는 이율배반적인 현실을 만들었다.
이 번영은 주님이 말씀하신 “ 가난한 사람의 행복”이 서야 할 자리를 잊게 만들면서 새로운 처방이 필요하게 되었다. 오늘 우리 개신교 대종을 지배하고 있는 풍요와 성공의 신학이 복음과 거리가 먼것이라 여겨 뜻있는 사람들이 복음으로 돌아가자고 외치는 사람들이 생기는 것과 같은 현실이었다.
이 작품의 주인공은 복장으로 보아 프란치스칸 수도자로서 카푸친 형제회에 속한 형제이다
카푸친 형제단은 프란치스칸 중에서도 개혁 세력으로 극단의 은둔이나 선교 활동을 통해 성 프란치스코의 삶을 너무도 선명히 제시했던 한마디로 성서가 말하는 빛과 소금의 삶을 알차게 살고자 노력했던 수도자들의 상징이었다. ‘
하느님을 찾는 것 외에는 아무것에도 관심이 없이 살다 이제 인생의 마지막 단계에 도달한 수도자의 모습이다.
그의 배경인 굴속같은 좁은 공간과 거칠게 깍여진 채 서 있는 나무는 그의 삶의 실상이 얼마나 척박한 것인가를 잘 보여주고 있다. 이 주인공이 세상과는 담을 쌓고 오직 하느님만을 찾고 있는 신앙의 사람임을 보여주고 있다.
그의 벗겨진 머리는 그가 머물고 있는 정신세계의 상징처럼 드러나고 있다 그의 모습은 온몸과 마음을 다해 하느님의 뜻을 찾기 위해 혼신의 노력을 다하며 살아온 그의 정신성의 이력서와 같다 백발의 수염은 그의 인생이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는 서글픈 예고가 아니라 그의 살아온 삶이 얼마나 고귀했던 지를 알리는 인생 훈장처럼 밝음으로 다가오고 있다.
구약 성서에는 노년기 이룰 수 있는 덕스러운 모습을 다음과 같이 전하고 있다. “백발 노인으로서 판단력이 있고, 원로들로서 건전한 의견을 줄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좋은가! 풍부한 경험은 노인들의 화관이고 , 그들의 자랑거리는 주님을 경외함이다.“ (집회 25: 4- 6)
그의 얼굴은 그가 살아온 인생이 외양처럼 결코 고통으로 찌들린 인생이 아니라 세상에서 어떤 부귀나 영화를 누렸던 인간들에게서도 볼 수 없는 큰 평화와 충만이 있다. 이 은둔자의 얼굴 표정은 성 바울로의 다음 말씀을 연상시킨다
“우리는 낙심하지 않습니다 우리의 외적 인간은 쇠퇴해 가더라도 우리의 내적 인간은 나날이 새로워집니다.“ (2 코린 4, 16)
그의 앞에 떨어질 모래가 얼마 남지 않는 모래 시계가 있다. 모래가 얼마 남지 않는 것은 이제 그의 인생이 마무리 할 단계가 되었음을 알리고 있다. 은둔자는 이 모래 시계를 앞에 두고 펼쳐진 성서위에 손을 얹은 채 뚫어지게 십자가를 응시하고 있다. 십자가를 쥔 그의 앙상한 손 역시 근육이 다 소진된 이제 그는 삶을 마무리해야 할 시기에 와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그가 손을 얹고 있는 성서는 그의 인생 여정을 인도했던 나침판과 같다. 그가 선택한 , 세상과는 절연하고 하느님만을 외골수로 찾는 그의 인생 여정을 꾸리기 위해선 확고한 의지가 필요했으며 ,성서는 그의 일생의 발걸음을 안내했던 등불과 같다.
성서는 주님 말씀이기에 좋은 것이란 막연한 권고가 아니라 인생 전체를 인도할 유일한 책임을 강하게 전하고 있다. 당신의 말씀은 내 발의 등불 내 길을 비추는 빛이 옵니다.(시편 119:105)
그는 안경 너머로 시선을 십자가에 고정시키고 있다 십자가는 크리스챤 삶의 상징이며 부활한 생명이 잉태되는 요람과 같기에 크리스챤의 삶이란 어떤 의미로던지 십자가와 연관을 지니며 삶이다.
삶이 힘겹고 어려운 순간에도 십자가를 , 삶에서 희망이 보이지 않는 절망의 순간에도 십자가를 , 아무리 봐도 출구가 보이지 않는 암담한 현실에서 탈출했을 때 감사와 안도의 마음을 표현할 때도 십자가를 바라보며 감사를 하듯 십자가는 크리스챤 삶의 모든 것이다
은둔자는 여러 시련과 유혹 속에서도 흔들림이 없이 주님만을 섬겨온 자기 인생이 결코 헛되지 않고 보람되었음을 확인하면서 시계위에 떨어지고 있는 작은 분량의 모래와 같은 남은 인생을 위해 다음과 같은 기도를 바치고 있다.
“ 주여 내 믿는데 당신이시고 어려서부터 나의 희망 야훼님이외다. 어머니의 품안에서부터 임은 나의 힘, 모태에서부터 임은 내 의지시오니 나는 언제나 당신을 믿었나이다.”( 시편 70: 5-6)
성서 곁엔 그의 생필품을 보관한 것으로 보이는 광우리와 조그만 가방은 그가 꾸려온 검박한 생활양식만이 아니라, 하느님 외에 다른 아무것에도 관심이 없었던 그의 삶을 모습을 보이는 증거품인양 여겨진다.
살기가 나아지고 ,수명이 연장되면서 사람들은 늙음의 가치를 망각하고 될 수 있는 한 늙지 않고 젊게 살려는 허황한 꿈에 자신을 던지는 어리석음을 범하고 있는 현실에서, 이 작품은 늙음의 고귀함을 우리에게 알림으로서 영원이 젊음을 붙들고픈 망상에서 헤어나도록 우리를 일깨우고 있다.
독일 의사인 하인리히 시페르게스(H. Schipperges: 1918-2003)는 다음과 같은 말로 노년기의 가치와 중요성을 강조했다. “ 늙는다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은 삶이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이다. 늙는다는 것은 나이와 함께 세월로 들어온다는 뜻이다..... 나이 드는 기술과 늙음이라는 예술 작품을 향한 길은 결국 자기 스스로 찾아야 한다. 나대신 늙어 줄 사람은 없다.”
작가는 좁고 한정된 공간에 배치된 단순한 것들을 정교하고 세련된 방법으로 배치함으로서 현대인들이 꼭 기억해야 할 풍요로운 메시지를 관객에게 선사하고 있다.
늙는다는 것은 서글픈 일이나 , 하느님 안에서 늙음은 퇴락이 아니라 새로운 완성과 성숙의 과정이며, 신앙 안에 멋진 늙음의 지혜가 있음을 알리고 있다.
정밀한 묘사를 거부하는 인상파 화풍이 출현하기 까지 그의 작품은 사람들의 대단한 사랑을 받았다. 가짜 작품이 시중에 나돌 만큼 그의 작품은 인기가 있었다.
- 이종한(요한) 신부님의 성화 이야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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