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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명연신부님의 글

~ 빠다킹 신부님과 새벽을 열며,,, ~

2014년 2월 15일 연중 제5주간 토요일

제1독서 1열왕 12,26-32; 13,33-34

그 무렵 26 예로보암은 마음속으로 이런 생각을 하였다. ‘어쩌면 나라가 다윗 집안으로 돌아갈지도 모른다. 27 이 백성이 예루살렘에 있는 주님의 집에 희생 제물을 바치러 올라갔다가, 자기들의 주군인 유다 임금 르하브암에게 마음이 돌아가면, 나를 죽이고 유다 임금 르하브암에게 돌아갈 것이다.’ 
28 그래서 임금은 궁리 끝에 금송아지 둘을 만들었다. 그리고 백성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예루살렘에 올라가는 일은 이만하면 충분합니다. 이스라엘이여, 여러분을 이집트 땅에서 데리고 올라오신 여러분의 하느님께서 여기에 계십니다.” 29 그러고 나서 금송아지 하나는 베텔에 놓고, 다른 하나는 단에 두었다. 30 그런데 이 일이 죄가 되었다. 백성은 금송아지 앞에서 예배하러 베텔과 단까지 갔다.
31 임금은 또 산당들을 짓고, 레위의 자손들이 아닌 일반 백성 가운데에서 사제들을 임명하였다. 32 예로보암은 여덟째 달 열닷샛날을 유다에서 지내는 축제처럼 축제일로 정하고, 제단 위에서 제물을 바쳤다. 이렇게 그는 베텔에서 자기가 만든 송아지들에게 제물을 바치고, 자기가 만든 산당의 사제들을 베텔에 세웠다.
13,33 예로보암은 그의 악한 길에서 돌아서지 않고, 또다시 일반 백성 가운데에서 산당의 사제들을 임명하였다. 그는 원하는 사람은 누구에게나 직무를 맡겨 산당의 사제가 될 수 있게 하였다. 34 예로보암 집안은 이런 일로 죄를 지어, 마침내 멸망하여 땅에서 사라지게 되었다.


복음 마르 8,1-10

1 그 무렵 많은 군중이 모여 있었는데 먹을 것이 없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가까이 불러 말씀하셨다. 2 “저 군중이 가엾구나. 벌써 사흘 동안이나 내 곁에 머물렀는데 먹을 것이 없으니 말이다. 3 내가 저들을 굶겨서 집으로 돌려보내면 길에서 쓰러질 것이다. 더구나 저들 가운데에는 먼 데서 온 사람들도 있다.”
4 그러자 제자들이 “이 광야에서 누가 어디서 빵을 구해 저 사람들을 배불릴 수 있겠습니까?” 하고 대답하였다.
5 예수님께서 “너희에게 빵이 몇 개나 있느냐?” 하고 물으시자, 그들이 “일곱 개 있습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6 예수님께서는 군중에게 땅에 앉으라고 분부하셨다. 그리고 빵 일곱 개를 손에 들고 감사를 드리신 다음, 떼어서 제자들에게 주시며 나누어 주라고 하시니, 그들이 군중에게 나누어 주었다. 7 또 제자들이 작은 물고기 몇 마리를 가지고 있었는데, 예수님께서는 그것도 축복하신 다음에 나누어 주라고 이르셨다.
8 사람들은 배불리 먹었다. 그리고 남은 조각을 모았더니 일곱 바구니나 되었다. 9 사람들은 사천 명가량이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돌려보내시고 나서, 10 곧바로 제자들과 함께 배에 올라 달마누타 지방으로 가셨다.



언젠가 성당을 새롭게 신축하신 신부님을 만나서 이야기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대화 중에 뜻밖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처음에 신부님께서는 꽤 큰 액수를 봉헌하신 분들이 계셨기 때문에 성당을 건축할 수 있었다고 생각했답니다. 하지만 결산을 하면서 큰 액수를 봉헌하신 분들의 힘보다, 적더라도 오랫동안 계속해서 봉헌해주신 많은 분들의 힘이 더 컸다는 것을 숫자상으로도 확실하게 드러나더라는 것입니다. 저 역시 성지에 있을 때, 일회적으로 큰 액수를 기부해주시는 분들보다 적은 액수라도 꾸준히 후원해 주시는 분들의 도움이 더 크다는 것을 알았지요. 한 번은 이런 일도 있었습니다.

어떤 자매님께서 성지에서 기도를 하고서 큰 은총을 받았다면서 상당한 액수를 봉헌하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분과의 대화를 통해서 집안 살림이 그렇게 넉넉하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었지요. 그래서 제가 이렇게 일회적으로 봉헌하는 것보다는 적다라도 꾸준히 봉헌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면서 봉헌하신 돈을 돌려 드렸습니다. 이에 크게 감동했다면서 앞으로 평생 적은 액수라도 후원금을 내시겠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결과는 몇 번 내시다가 소식이 끊어지고 말았습니다. 큰일을 한 번 하는 것은 누구나 가능합니다. 그러나 작은 일이라도 꾸준히 한다는 것은 너무나도 힘들고 어려운 것입니다.

물질의 크고 작음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그보다는 마음을 꾸준히 주님 앞으로 나아가도록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러한 작은 마음들이 하나 둘 모여서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만들기 때문입니다. 결국 일회적인 이벤트적인 말과 행동보다는 꾸준할 수 있는 사랑의 마음이 필요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빵 일곱 개와 작은 물고기 몇 마리로 4천명이나 되는 사람들을 배불리 먹이십니다. 엄청난 기적으로 사람들은 깜짝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기적을 체험한 사람들이 과연 예수님을 끝까지 세상에 증거하는 사람이 되었을까요? 배고픈 이들을 측은하게 여기시는 주님의 사랑을 세상에 알리는 사람이기보다, 이들은 더 큰 것만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자신들을 편하게 살 수 있도록 만들어 주는 메시아, 주변 강대국을 물리칠 수 있는 정치적인 메시아를 원합니다. 그래서 놀라운 기적들을 체험했어도 예수님께서 수난을 당하실 때 침묵합니다. 아니 오히려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더욱 더 큰 소리로 외쳤지요.

더 큰 것만을 청하는 우리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그러면 주님의 사랑을 발견할 수 없으며, 오히려 주님의 반대자가 되어 주님의 뜻과는 먼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따라서 작은 사랑을 꾸준히 실천할 수 있는 우리가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의 측은히 여기는 사랑에 보면서, 기꺼이 자신이 가지고 있는 얼마 안 되는 빵과 물고기라도 기쁘게 내어 놓을 수 있는 사랑의 마음을 꾸준히 실천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주님의 뜻에 함께 하면서, 계속해서 주님의 커다란 은총을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이 세상을 떠날 때 갖고 갈 수 있는 것은 물건이나 돈이 아닌 감동이라는 추억뿐이다. 그리고 죽은 후에도 다음 세대에 남는 것은 자신의 품었던 ‘뜻志’이다(히라노 히데노리).


인천 가톨릭대학교 간호대학 기공식이 있었습니다.


성공의 삶

미국의 철학자인 ‘랄프 왈도 에머슨’은 이러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성공이란, 자기가 태어나기 전보다 조금이라도 세상을 더 행복하고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어 놓고 떠나는 것이다. 자신이 한때 존재했음으로 해서 단 한 사람이라도 좀 더 편안히 숨 쉴 수 있다면, 그것이 바로 진정으로 성공한 삶이다.”

어떻습니까? 나의 삶은 과연 성공한 삶일까요? 아니면 실패한 삶입니까? 세상에서는 성공에 대해 물질적인 평가가치를 앞세우고 있지만, 자신의 진정한 행복과 연관되지 않는다면 그 삶은 절대로 성공한 삶이 될 수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