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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명연신부님의 글

~ 빠다킹 신부님과 새벽을 열며,,, ~

2014년 2월 17일 연중 제6주간 월요일

제1독서 야고 1,1-11

1 하느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종 야고보가 세상에 흩어져 사는 열두 지파에게 인사합니다.
2 나의 형제 여러분, 갖가지 시련에 빠지게 되면 그것을 다시없는 기쁨으로 여기십시오. 3 여러분도 알고 있듯이, 여러분의 믿음이 시험을 받으면 인내가 생겨납니다. 4 그 인내가 완전한 효력을 내도록 하십시오. 그리하면 모든 면에서 모자람 없이 완전하고 온전한 사람이 될 것입니다.
5 여러분 가운데에 누구든지 지혜가 모자라면 하느님께 청하십시오. 하느님은 모든 사람에게 너그럽게 베푸시고 나무라지 않으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면 받을 것입니다. 6 그러나 결코 의심하는 일 없이 믿음을 가지고 청해야 합니다. 의심하는 사람은 바람에 밀려 출렁이는 바다 물결과 같습니다. 7 그러한 사람은 주님에게서 아무것도 받을 생각을 말아야 합니다. 8 그는 두 마음을 품은 사람으로 어떠한 길을 걷든 안정을 찾지 못합니다.
9 비천한 형제는 자기가 고귀해졌음을 자랑하고, 10 부자는 자기가 비천해졌음을 자랑하십시오. 부자는 풀꽃처럼 스러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11 해가 떠서 뜨겁게 내리쬐면, 풀은 마르고 꽃은 져서 그 아름다운 모습이 없어져 버립니다. 이와 같이 부자도 자기 일에만 골몰하다가 시들어 버릴 것입니다.


복음 마르 8,11-13

그때에 11 바리사이들이 와서 예수님과 논쟁하기 시작하였다. 그분을 시험하려고 하늘에서 오는 표징을 요구하였던 것이다. 12 예수님께서는 마음속으로 깊이 탄식하며 말씀하셨다. “어찌하여 이 세대가 표징을 요구하는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이 세대는 어떠한 표징도 받지 못할 것이다.”
13 그러고 나서 그들을 버려두신 채 다시 배를 타고 건너편으로 가셨다.



명품을 좋아하십니까? 이 명품이라는 것이 가격이 엄청나지요. 보통 사람은 절대로 구입하기 힘들 정도 비싼 가격을 형성합니다. 그런데도 이 명품을 좋아하고 구입하는 이유는 다른 사람과의 차별성일 것입니다. 명품을 들고 다니면 마치 자기 자신이 명품인 것 같은 착각에 빠지기 때문이지요.

여기서 한 가지, 과연 이렇게 귀하게 여기는 명품을 아무데나 들고 다닐까요? 목욕하러 가면서, 장보러 가면서 명품 백이나 명품 보석을 가지고 가시는 분은 없을 것입니다. 혹시라도 집중하지 못해서 소중한 명품을 잃어버릴 수도 있기 때문이지요. 또한 비가 엄청나게 쏟아지는 날에 대중교통을 이용해야하는 상황에서 명품을 들고 외출하는 분도 없을 것입니다. 비라도 맞아서 명품이 손상될 수 있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일상 삶 안에서는 들고 다닐 수 없다면 그 명품이란 것의 가치는 과연 무엇일까요?

책을 읽다가 미국처럼 총기 소지가 자유로운 나라에 사는 부자들은 외출 시에 값비싼 장신구를 함부로 몸에 지니지 않는다는 내용을 보게 되었습니다. 치장이 필요할 때는 진짜와 똑같이 생긴 이미테이션을 대신 사용한다는 것이지요. 이 글을 보면서 ‘그렇다면 진짜를 가지고 있지 못한 사람과의 차이는 과연 뭐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소위 명품이라는 것 역시 이 세상에서 언젠가는 사라져 없어질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내 목숨을 걸만큼 소중하고 귀한 것이 아닙니다. 이렇게 언젠가 사라질 것을 쫓는 것이 아니라, 대신 영원히 변하지 않을 참으로 소중한 것을 쫓는 우리가 되어야 합니다.

과거 예수님 시대의 이스라엘 사람들은 표징만을 요구했습니다. 고칠 수 없는 병을 척척 고쳐주고, 배고플 때에는 배불리 먹을 수 있는 빵을 나눠주고, 죽은 사람을 살리는, 때로는 물 위를 걷기도 하는 등의 놀라운 기적만을 요구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기적들은 영원함을 가져다주는 것이 아니라, 한 순간만을 만족시킬 뿐입니다. 그래서 영원함을 가져다 줄 수 있는 참된 표징을 쫓을 수 있어야 합니다. 만약 곧 사라질 순간의 기적만을 요구한다면 예수님 말씀처럼 어떠한 표징도 받지 못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깜짝 놀랄 사라질 표징만을 쫓는 우리가 아니라, 영원한 변하지 않을 참된 표징을 쫓아야 합니다. 그 표징은 사실 찾기가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사랑의 길을 통해서 그리고 그 실천을 통해 표징을 찾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찾는 표징은 과연 어떤 것일까요? 영원함을 가져다주는 참된 표징을 찾을 수 있는 지혜로운 나를 청해 봅니다.

부모가 자식에게 남겨 줄 수 있는 최고의 재산은 물질적인 것이 아니라 바로 ‘내 부모는 정말 행복하고 즐거운 삶을 살았다’고 느끼는 것이다.(가나모리 우라코)


인천교구사제연대의 평신도인재양성위원회에서 장학생 2명을 뽑았습니다. 교회의 큰 일꾼이 되길.


한 걸음, 한 걸음

법정 스님의 ‘홀로 사는 즐거움’이라는 책에서 본 구절입니다.

1959년 티베트에서 중국의 침략을 피해 80이 넘은 노스님이 히말라야를 넘어 인도에 왔다. 그때 기자들이 놀라서 노스님에게 물었다. “어떻게 그 나이에 그토록 험준한 히말라야를 아무 장비도 없이 맨몸으로 넘어올 수 있었습니까?”

그 노스님의 대답이었다.

“한 걸음, 한 걸음, 걸어서 왔지요.”

아주 간단한 답입니다. 그런데 이 답이 정답이네요. 어떤 결과도 한 걸음을 통해서 얻을 수 있습니다. 특별한 무엇인가를 통해서만 얻는 결과가 아닌, 한 걸음 한 걸음 걷는 우리의 작은 발걸음을 통해서 주님의 놀라운 표징에 가까워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들은 늘 특별한 것만을 요구합니다. 그래서 내 욕심과 이기심은 더욱 더 커졌나 봅니다.

이제 그러한 욕심과 이기심을 대신할 ‘사랑’이라는 작은 한 걸음을 힘차게 내딛어야 할 것입니다. 그래야 진실로 우리에게 필요한 영원한 생명에 가까워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