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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신부님들의 강론

~ 구체적으로 용서하기 위하여 / 송봉모 신부님 ~

 

구체적으로 용서하기 위하여

 송봉모 신부

 

용서는 저절로 되는 것이 아니며 용서하려면 먼저 결심이 필요하다. 우리는 ‘시간이 약이다.’란 말을 종종 듣는다. 아무리 견디기 어려운 상처라도 시간이 가면 낫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용서는 시간이 흐른다고 저절로 되는 것이 아니다.

용서는 시간이 간다고 저절로 되는 것이 아니다. 먼저 용서 하겠다는 결심이 펼요하다. 결심을 하는 그 순간이 바로 용서 의 시작이다. 사실 용서하겠다고 결심하는 것은 상처 받은 인간의 감정을 고려할 때 참으로 힘든 얘기다. 하지만 종교적 행위로는 가능하다. 

 

우리가 누군가를 용서하지 못한다는 것은 그 사람에게 집칙 하면서 미움과 원한을 움켜쥔다는 뜻이다. 그런데 이 집착이 얼마나 우리의 진을 빼는지 모른다. 

 

인간의 고통은 집착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적지 않은 사람 들이 죽을 때까지 그놈을 용서하지 않겠다며 이를 갈다가 원한 속에 죽는다. 대단히 파괴적인 집착이다. 용서는 정의의 문제가 아니다. 용서는 치유의 문제다. 정의만으로는 내안의 상처와 울분을 치유할 수 없다. 파괴적 집착에서 벗어나 용서하기로 결심할 때 비로소 치유 과정은 시작된다. 

 

우리 중에는 자기 상처를 보여주면서 사람들의 관심과 동정을 받고 싶어하는 이들도 있다. 이런 사람들은 누구든 자기 편이 되어 상처 준 사람들을 비난할 땐 기뻐하지만 동조하지 않을 때는 그 사람을 비난한다. 이런 사람들이 바로 상처가 낫기를 바라지 않는 이들이다. 상처가 나으면 더 이상 그 상처를 준 사람을 계속 미워하고 괴롭힐 수 없기 때문이다.

 

상처를 그대로 갖고 있으려는 또 다른 이유는 미래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다. 심리치료자들의 말이다. 많은 사람이 도움을 받다 변화의 단계가 되면 돌연 치료를 멈추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이제 막 개선이 일어나려는 상황에서 다시금 비참한 옛 모습의 편안함으로 되돌아간다는 것이다. 이제까지 익숙했던 고통을 떠나 변화할 때 맞이하게 될 미래의 불확실함과 그 불확실함이 가져다주는 불안 때문에 새롭게 변화될 자신을 대면 하기를 주저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상처를 계속 지니고 있기를 바라거나 변화를 바라지 않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상처에서 치유되느냐 안되느냐의 열쇠를 자신에게 상처 준 사람한테서 찾으려 한다. 자신에게 상 처 준 사람이 진심으로 용서를 청하고 자신이 바라는 대로 행동해야만 상처가 치유되리라 믿는다. 그러나 이러한 믿음을 가진 사람은 평생 상처에서 헤어나지 못할 것이다. 

 

결국 삶은 선택이다. 다른 사람이 우리를 어떻게 대하느냐 하는 것은 우리가 마음대로 할 수 없지만 우리 자신의 행동과 반응은 우리 몫이다. 달리 말하면 아무리 상처를 받고 고통스러워도 삶을 대하는 태도만은 우리가 선택할 수 있다. 

 

내 안의 상처를 아물게 하는 주체는 오직 나 자신과 나를 생명의 길로 인도하시는 하느님뿐이다. ‘내 상처와 아픔에서 일 어나기 위한 열쇠는 오직 나 자신만이 가지고 있다. 누가 대신 해 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또 내 원수가 나에게 용서를 청해 서 상처가 나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오로지 주님의 도움을 받아 스스로의 힘으로 일어나야 한다.

 

많은 경우 상처를 준 사람은 이미 그 사람 자신이 다른 누군 가에게 상처를 받아 피를 흘리면서 실아온 사람이다.

나에게 상처를 준 상대방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한 가지 방법은 나도 상대방처럼 다른 사람들에게 상처를 줄 수 있음을 인정하는 것이다. 보통 우리는 우리에게 상처 준 사람을 대할 때 우리 자신은 철저히 잘못이 없는 존재, 잘못을 아예 저지르지 않는 존재처럼 행동한다. 하지만 사실 그런가? 우리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얼마나 많은 상처를 사람들에게 주었는가. 상대방이나 나 자신이나 모두 용서가 필요한 존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