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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마을

~ 축복받는 첫 영성체 / 소설가 박완서 ~

사진 - 김대열 신부님


축복받은 첫 영성체


축복받은 첫 영성체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빵이다.]

 

십여 년 전 예비자 교리를 받을 때였으니까 아직 성체를 영한 경험이 없을 때였다.
그때 태생 교우라는 나이 지긋하고 신앙이 두터운 자매님한테서 이런 얘기를 들었다.

영세받은 지 얼마 안 되는 교우가 성체로 영한 밀떡이 과연 주님의 몸일까 의심스러워 입에 넣지 않고 슬쩍 주머니에 숨겨가지고 나와서 아무도 안 보는 데서 분질러 보았더니 피가 나오더라는 얘기였다.

초보자가 영성체를 가볍게 여기지 않도록 하려는 의도에서 그런 말이 나왔다는 건 이해가 가나 그런 유의 얘기를 좋아하지 않는다. 어딘지 공포스럽기 때문이다.

거룩한 것하고 공포스러운 것하고는 다르다. 거룩한 것은 정신을 고양시키지만 공포는 정신을 억압해 황폐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 후 영세를 받고 영성체를 할 수 있게 되어 좋다고 생각한 것은 그걸 안 하면 큰일날 것 같아서가 아니라 한 번 맛들인 성찬 전례의 감사와 기쁨을 세속의 식사와 나눔 중에서도 느낄 수 있게 되어서이다.

아무리 검소한 식탁도 사랑하는 사람끼리 둘러앉아 일용할 양식을 나누는 기쁨과 감사가 충만할 때 절로 거룩해진다는 걸 일상적으로도 체험할 수 있다는 것은 커다란 축복이다.

손자 중에 요새 첫 영성체 교리를 받은 아이가 있다. 등교 전 새벽에 한 번, 학교 갔다온 후에 또 한 번, 한 달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이렇게 하루 두 번씩이나 교리 공부를 해야 한다고 했다. 그 아이는 아주 건강하고 장난과 컴퓨터게임과 인기 가수를 좋아하는 보통의 초등학생이다. 보통 아이답게 아침잠도 많고 친구도 많고 학교 갔다오면 가야 할 학원도 몇 군데 된다.

나는 새벽과 저녁 두 차례나 되는 교리 공부는 보통 아이들의 하루 일과를 전혀 고려 안한 것 같아 불만스러웠다. 보통 아이들이 끝까지 해내려면 식구들까지 심한 스트레스를 받아야 할 가혹한 스케줄은 아무리 교리 공부라 해도 피하는 게 좋을 것 같았다.

그러나 뜻밖에 아이는 개근을 목표로 잘해나갔다. 새벽 다섯 시에도 누가 깨우기 전에 일어나 나간다는 소리를 듣고 나는 아이에게 "얘야, 몇 번 빠진다고 첫 영성체 못 받지 않을 테니 정 고단한 날은 빠지기도 하고 그래." 이렇게 아이를 꼬셨다.

나는 워낙 그렇게 헐거운 구석이 많은 할미다. 할미보다 책임이 무거운 에미 노릇을 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자식이 숙제가 많다고 밤늦도록 질질 짜고 있으면 그렇게 힘들면 숙제를 안 해 가고 대신 선생님한테 매를 맞으라고 꼬시기 일쑤였다. 그 버릇이 또 나와 그렇게 꼬셔본 건데 아이는 들은 척도 안 하더니 기어코 개근의 목적을 달성했다.

다시 한번 말해두거니와 그 아이는 학교에서도 일이등이나 개근상에 집착하는 특별한 아이가 아니라, 병 나면 결석도 하고, 많이 틀린 시험지를 아무렇지도 않게 내놓기도 하는 철저하게 보통 아이다. 그리고 아직 초등학생이다.

그 아이가 영성체를 어떤 것이라고 알고 있기에 그렇게 열심인지, 거기에 관해 충분히 설명할 수 있기엔 아직 어리다고는 하나 성체를 영하기에 합당하지 위해서는 자신이 달라져야 한다고 믿는 것만은 확실하지 않을까.

떳떳하게 성체를 영할 수 있기 위해 험없이, 완벽하게 순수하고 싶은 그 아이의 열정이 예쁘고 부럽다. 그리고 그런 순결한 열정을 가지고 유년기에서 소년기로 넘어가고 있는 그 애가 자랑스럽다.

요한 6장 51-58절

- 소설가, 박완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