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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신부님들의 강론

~ 연중 제25주간 목요일 미사 강론 - 북산성당 부주임 신부 이 균태(안드레아) 신부님 ~

 
 

 

축일:9월 25일

성 세르지오(세르게이)

 

 

러시아의 귀족 가문 출신인 성 세르지오는 로스토프에서 태어나

바르톨로메오란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다.

 

15세 때에 그는 모스크바 통치자들의 로스토프 침략을 피하여

정처없이 온가족이 떠나야 했다.

그들은 모든 것을 잃어버린 후, 모스크바 교외인 라도네즈에서 농사를 지으며 지냈다.

 

1335년, 부모와 사별한 세르지오와 그의 형 스테파노는 마코프카에서

은수 생활을 하다가, 수도원으로 들어가서 세르지오란 수도명을 받았다.

 

그러나 그는 러시아의 혹독한 추위를 견디며 은수생활을 계속하였으므로,

그의 성덕이 널리 알려졌다.

 

이때부터 제자들이 몰려들므로, 세르지오는 유명하게 된 "성삼 수도원"을 세워

원장이 되었고, 또 사제로 서품되었다.

 

그는 타타르족의 침략 이후 사라졌던 러시아에 수도공동체를 재건한 것이다.

 

그 후 그는 헤르쟈크강변에서 은수자 생활을 하던 중, 모스크바의 총주교

 알렉시스의 부름을 받았으며, 모스크바의 드미뜨리 돈스코이 왕자는

세르지오의 권고에 따라 타타르족과 싸워서 러시아를 해방시키게 되었다.

 

이 승리 이후 그의 명성은 더욱 퍼져나갔고, 러시아 왕가의 협조는 매우 관대하여

수많은 교회와 수도원을 짓게 되었다.

 

1378년, 그는 모스크바 총주교 임명을 끝내 사양했고,

또 1392년에는 자기 수도원의 원장직도 사임한 후 6개월 만에 서거하였다.

 

성 세르지오는 러시아 최대 성인으로 공경받고 있다.

 

 

     

       

       

       

      찬미예수님!

       

       

      오늘의 미사강론

       

       

       

       

      9월 25일 연중 제 25주간 목요일 미사 강론

       
       

       

      복산성당 부주임 신부 이균태 안드레아

       

        

    성경에는 참으로 많은 사람들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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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든 인간 유형이 성경에 나오지는 않지만, 적어도 사람으로 태어나서

    본받고 싶은 인물들이 나오는가 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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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의 탈을 쓰고 세상에 나기는 했지만, 사람답게 살지 못하는 인물들,

    결코 본받지 말아야 할 인물들,

    심지어 차라리 태어나지 말았으면 하는 인물들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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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 복음에는 헤로데라는 인물이 등장하는데, 이 헤로데는 죽음에 이르기까지

    권력을 꽉 움켜쥐려는 이들을 대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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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헤로데를 가만히 살펴보면, 불쌍하다는 생각이 절로 드는 인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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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기 아버지 헤로데의 그늘 아래에서 산 덕분에 아버지에 대한

    열등감을 늘 가지고 있었던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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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제나 권력에 눈이 멀어 있어서 늘 주변의 눈치를 살피는 통에

    자존감이라고는 눈 씻고 찾아보아도 없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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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늘 체면치레하느라 인간으로서는 해서는 안 되는 일들도

    어떠한 구실을 만들어서라도 끝내는 일을 내고야 마는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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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런데, 헤로데라는 인물이 2천년 전에만 존재했던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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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력이라는 것, 누구나 가질 수 없는 것이기 때문에,

    아주 매력적인 것으로 보이고, 모든 것을 다 쥐고 흔들 수 있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에, 강력한 것으로 내비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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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지만,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에서 권력의 속성은

    참으로 비참하리만치 매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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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구나 가질 수 없는 것을 가지기 위해서, 그 « 누구나 »를 매도해버리거나,

    그 « 누구나 »의 손발을 잘라버리거나,

    그 « 누구나 »를 제거해야, 비로소 권력을 움켜 쥘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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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나라에서 가장 똑똑하다는 사람들,

    가장 잘 났다고 하는 사람들이 모인 곳이 서울 여의도

    로보트 태권 V가 감춰진 거기와 서울 종로구 세종로 1번지, 푸른 집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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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성을 대표해서, 백성의 뜻을 잘 받들어야 하고 때로는 나라의 주인인 백성들이

    서로서로 뜻을 달리할 때에, 그 주인들을 중재하고, 설득해야 할 머슴들이

    주로 생활해야 하는 곳들인데, 희한하게도 그곳들은 늘 움켜쥐려고 하고,

    늘 빼앗기지 않으려고 하는 싸움이 하루도 쉴 날 없이

    벌어지는 곳이라서 그런지, 매일매일이 진흙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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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진흙탕 속에서 사는, 사람의 몰골을 하고 있지만 정말 사람인가

    의심이 드는 그 물체들은 늘 피곤과 불안 속에서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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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피곤과 불안을 없애 보려고, 백방으로 노력하는 모습이

    권력이 주는 무감각에 함몰되어가는 모습으로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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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안해지면 질수록, 어떻게든 살아남기 위해서, « 생존 »이라는

    드높은(?) 가치를 위해서, 해서는 안 되는 일들도 버젓이 해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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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서 그들은 도덕적으로도, 상식적으로도

    이해가 안 되는 일들을 버젓이 해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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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리고는 « 나라를 위해서 », « 안보를 위해서 », « 국민을 위해서 »라는

    핑계는 잘도 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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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실을 파헤쳐 보면, 나라를 위하는 것도 아니고, 안보를 위한 것도 아니고,

    국민을 위해서는 더더욱 아님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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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들의 불안이 어제, 오늘의 불안,

    이 나라 이 땅에서만의 불안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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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천년 전에 쓰여진 성경에도 나오는 불안이다.

    그렇다.

    오늘 복음은 권력을 쥔 자의 불안을 폭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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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권력자는 바로, 이스라엘의 왕이 났다고 하자,

    그 일대의 모든 두 살박이 사내 아이들을 모조리 죽여 버릴 만큼,

    불안에 시달렸던 헤로데 대왕의 아들,

    오늘 복음의 등장 인물, 헤로데 안티파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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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 복음은 ‘시대의 바른 소리’인 예언자, 세례자 요한을 죽여 버리고는

    전전 긍긍하다가, 다시 그 예언자가 살아났다는 소문에, 자신이 죽였던

    그 세례자 요한의 환영에 시달리며 불안에 떠는 헤로데 안티파스를 폭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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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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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식이 통하지 않고, 도덕, 윤리가 통하지 않는 것이 이 나라 이 땅

    대한민국이라는 세상의 권력이 가진 속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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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세에 몰린다고, 누리고 있는 권력 절대 빼앗기지 않으려고,

    온갖 방법들을 동원해서, 심지어 국가정보기관까지도 쥐락펴락해대는

    작태를 보이는 것이 권력이라는 마귀에 들린 것들이 해대는 비열한 짓거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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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가 내란 음모 죄인으로 상대방을 찍어 버리고,

    마음에 안 든다고, 걸림돌이라고, “카더라” 통신을 동원해서는

    결국 상대방을 자리에서 끌어내려 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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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모든 것들은 나 밖에 모르는 나쁜 놈들이 하는 짓거리이고,

    돈밖에 모르는 돈 놈들이 하는 짓거리다.

    성경의 어휘를 굳이 빌리자면, 그런 나쁜 놈들과 돈 놈들은 마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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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권력자도 아니고, 권력을 움켜쥐어 보려고 안간 힘을 쓰는 사람도 아니니,

    이런 일들이 나와 전혀 무관한 일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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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렇지 않다.

    행여나 내가 누구나 가질 수 없는 것을 독점하려고 하는 것은 아닌지,

    그 욕심이 자꾸만 내 안에서 어두움을 늘여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되돌아 본다면, 왕좌에 앉아야만, 푸른 집 안에 살아야만,

    금배지를 달아야만 권력자가 아님을 깨닫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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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 내가 누군가를 지배하고 있다면,

    나도 그 사람에게서 권력자로 군림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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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정에서, 직장에서, 성당에서, 너를 위해 봉사하지 않고, 너 위에 서려고 한다면,

    그 욕망 자체가 권력자로서 군림하는 것과 하등 다를 바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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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런데, 그렇게 살아가는 사람들 대다수는 그런 것을 두고,

    참으로 파렴치하게도 사랑이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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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너라는 존재가 아직도 어리기 때문에, 아직도 배울 것이 많기 때문에,

    아직도 세상이라는 곳이 얼마나 무서운 곳인지를 알지 못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그런 식으로 사랑할 수 밖에 없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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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나 사랑은 움켜쥐는 것이 아니다.

    군림하는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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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군림하려는 순간부터, 군림의 대상이 되어 버리는 너에게서는 눈물이 나온다.

    남의 눈에 눈물 흘리게 하는 사람,

    자기 눈에 피눈물 난다는 말은 허튼 소리가 결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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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늘의 소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