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이웃사랑
-박상대신부-
루가복음에서 예수님의 제일 중요한 가르침을 손꼽으라면 "많은 일 중에 가장 요긴한 하느님 말씀의 경청"(10,25-37), "주님의 기도와 옳은 기도에 대한 가르침"(11,1-13)과 함께 단연 오늘 복음이 보도하는 "참된 사랑에 관한 가르침"이다. 예수님의 참된 사랑에 관한 가르침은 공관복음 전체에 나타나는 가장 핵심적인 말씀이다. 그런데 원전(原典)이 되는 마르코복음(12,28-34)이나 이를 참고한 마태오복음(22,34-40)에서는 첫째가는 계명으로 "하느님사랑"(신명 6,4-5)을, 둘째가는 계명으로 "이웃사랑"(레위 19,18)을 제시하면서 이 두 계명이 율법과 예언서의 골자이며, 가장 큰 계명이라 요약하고 있다. 그러나 루가복음에서는 "계명"이라는 말을 찾아볼 수 없다. 루가가 원전을 각색하고 "착한 사마리아 사람의 비유"를 곁들여 고유자료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마르코와 마태오복음의 같은 대목을 살펴보면, 한 율법교사가 예수께 와서 "모든 계명 중에 어느 것이 첫째가는 계명입니까?" 하고 질문을 던진다. 이 질문에 대하여 예수께서는 직접 사랑의 이중계명을 설파하신다. 그런데 루가복음에는 한 율법교사가 예수께 와서 "선생님, 제가 무슨 일을 해야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겠습니까?"(25절) 하고 묻는다. 그 질문에 예수께서는 직접 대답을 주시지 않고, 그 교사로 하여금 스스로 답을 찾도록 유도하신다. 율법교사는 자신이 모세의 율법서에서 읽은 대로 "하느님사랑과 이웃사랑"을 영원한 생명을 얻기 위한 답으로 제시한다. 이에 예수께서는 율사의 대답을 옳은 답으로 인정하시고 "그대로 실천하라. 그러면 살 수 있다"(28절) 하고 말씀하신다. 여기에 루가가 계획하는 편집의도가 들어 있다. 루가는 영원한 생명을 얻기 위한 조건으로 사랑의 실천, 즉 행동을 거듭 강조하고자 한 것이다. 고맙게도 루가는 "그러면 누가 저의 이웃입니까?(29절) 라는 율법교사의 질문을 추가하여 참된 사랑의 실천방법을 가르쳐준다.
이번에는 예수께서 직접 수고를 하신다. 예수께서는 "착한 사마리아 사람의 비유"를 통하여 "누가 나의 이웃인지?", 그리고 "내가 누구의 이웃이 되어야 하는지?"를 한꺼번에 가르쳐 주신다. "이웃"이란 말 그대로 자신을 기준으로나, 타인을 기준으로 했을 때 "제일 가까이 있는 사람", 즉 나의 도움을 가장 가까운 곳에서 필요로 하는 사람인 것이다. 물리적으로나 장소적으로 가까이 있는 사람이 이웃이긴 하지만 그것으로 이웃사랑이 실천되지는 않는다. 물론 함께 있어주는 것도 사랑실천이 될 경우도 있다. 그러나 오늘 비유에서는 가장 가까운 곳에서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에게 실제로 사랑을 베푸는 것을 예수께서는 "이웃사랑"이라고 하신다
비유에 등장하는 첫째 인물인 사제는 길을 가다 강도를 만나서 가진 것을 다 빼앗기고 얻어맞기까지 하여 반쯤 죽어 있는 사람의 제일 가까운 이웃이 되었으나, 사랑을 베풀지 않았다. 사제의 머릿속에는 위급에 처한 사람보다는 "시체에 몸이 닿은 사람은 칠 일간 부정하다"(민수 19,11)는 규정이 먼저 떠올랐을 것이다. 둘째 인물인 레위 사람은 성전제사의식에서 제사장을 돕거나 종교적 업무에 종사하는 부류로서 육체적이 노동을 하지 않고도 십일조를 받아 걱정 없이 살 수 있던 사람들이었다. 그러니 괜한 일에 관여할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사마리아 사람은 달랐다. 강도를 만난 어떤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예리고로 가던 길이었으니, 그 사람은 유다인임이 틀림없다. 유다교의 정통성을 상실한 이유로 사마리아 사람들이 유다인들로부터 업신여김을 받았다는 것은 삼척동자도 다 아는 사실, 그런데 사마리아 사람이 유다의 진정한 이웃이 되는 순간이었다. 비유에서 보듯이 사마리아 사람은 심하게 다친 유다인에게 기대이상의 사랑을 베풀어준다.
강도를 만나서 반쯤 죽게된 사람에게 이웃이 된 자는 사제, 레위, 사마리아 사람 셋이었다. 사제와 레위는 그 사람을 보고 동정심을 가지긴 했겠지만, 피해서 지나가 버림으로써, 즉 가까운데서 먼 곳으로 가버림으로써 이웃이 되기를 거부하였고, 이로 인해 이웃사랑의 실천에는 실패했다. 그러나 유다인과 원수지간이었던 사마리아 사람은 강도를 만난 사람의 진정한 이웃이 되었고, 실제로 이웃사랑을 실천하였다. 사랑은 바로 이렇게 행하는 것이며, 그렇게 함으로써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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