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건부의 믿음은 강요된 믿음
-박상대신부-
오늘 복음은 군중이 계속 모여들자 예수께서 이 세대를 악한 세대로 규정하시고, ‘이 세대가 기적을 구하지만 요나의 기적밖에는 따로 보여 줄 것이 없다.’는 말씀으로 시작된다.(29절) 이 세대가 기적을 구한다는 근거는 좀더 앞서간 구절에 있다. 예수께서는 당신이 행하신 벙어리 구마기적을 두고 군중 가운데 몇 사람이 ‘하늘에서 오는 기적을 보여 달라.’(11,16)고 요구한 사실을 지나간 시점에서 다시금 논제로 삼으신 것이다. 즉, 기적을 보여 달라는 사람들의 요구가 갑자기 끼어 든 한 여인의 마리아에 대한 행복찬사(11,27-28) 때문에 무시되는가했더니, 예수께서 잊지 않으시고 다시 거론(擧論)하셨다는 말이다.
사람들이 하늘에서 오는 표징을 요구하는 이유는 예수의 말씀과 행동에 대한 믿음의 조건으로 이해된다. 그러나 예수님의 입장은 단호하다. 우리가 잘 알고 있다시피 예수께서는 모든 조건부의 표징이나 기적은 거절하신다. 오히려 조건부의 표징요구를 믿음으로 가기 위한 과정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불신(不信)의 태도로 간주하시면서 이들에 대한 단죄와 심판을 예고하신다는 것이다. 딱 잘라 말하자면, “기적을 보고 믿겠다.”는 주장은 “기적 없이는 믿지 않겠다.”는 불신의 태도로 간주된다는 것이다. 사실 믿음에 조건이 따를 수 없다. 그것은 믿음이 자유의지의 결과로 나타나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만약 믿음을 위한 조건으로 기적이 주어지고, 그 기적을 보고 난 뒤에 믿음을 가진다면 이 믿음은 자유의지에 의한 믿음이 아니라밝혀진 사실에 대한 수긍과 인정이다. 이는 진정한 믿음이 될 수 없을뿐더러 강요된 믿음으로서 주관성을 상실한 객관적 차원의 사실 확인에 불과하다.
예수께서 따로 보여주시려는 것은 기적이라기보다는 이미 있었던 과거의 두 가지 사실이다. 하나는 세바의 여왕이 솔로몬의 지혜를 듣기 위해 예루살렘을 찾아 온 사실(1열왕 10,1-13; 2역대 9,1-12)이고, 다른 하나는 죄악에 빠진 니느웨의 사람들이 요나의 설교를 듣고 왕을 비롯한 전 시민과 동물에 이르기까지 회개하고 단식함으로써 하느님께서 내리고자 하셨던 재앙을 거두신 일(요나 2,1-11; 3,1-10)이다. 여기서 세바의 여왕과 니느웨 사람들은 이방인들로서 좀처럼 믿으려 하지 않는 야훼의 백성인 이스라엘에 대조를 이룬다. 예수께서는 지혜를 찾으며, 말씀을 듣고 회개하는 이방인들이 오히려 심판 날에 이스라엘의 불신하는 이 세대를 단죄할 것이라고 하신다. 그런데 복음의 요지는 예수님 자신이 솔로몬과 요나보다 더 큰 사람이며, 예수님의 지혜와 가르침이 더 위대하다는 사실을 주지시키는 것이다. 물론 요나가 하느님의 명을 거역하고 도망치다가 물고기 뱃속에서 3일간을 지내다 뭍으로 다시 나온 기적(요나 2,1.11)이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을 암시하는 기적이 될 것이지만, 군중은 아무도 이를 예상하지 못한다. 중요한 것은 나중에 가서나 심판 날이 아니라 바로 ‘지금’과 ‘여기’이다. 따라서 솔로몬과 요나보다 훨씬 더 위대하신 분으로 군중 앞에 계시는 예수께 대한 선택은 ‘지금’, 그리고 ‘여기’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예수를 선택하지 않는 행동자체가 곧 불신이요, 심판이다. 그리고 조건부의 믿음은 결국 강요된 믿음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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