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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영성이야기

~ 안식일을 무욕 사랑의날로 환원시키는 사회운동가 / 아브라함 헤셜 ~



 

안식일을 무욕·사랑의 날로 환원시킨 사회운동가 - 아브라함 헤셜

유대교와 가톨릭의 유대 강화에 기여미국 인권운동-월남전 반대운동 참여  
“종교적 진리는 독점할 수 없다” 주장  



1965년 3월 21일 앨라배마 주 셀마에서 마틴 루터 킹 목사를 비롯한 미국 인권운동 지도자들과 함께 팔장을 끼고 행진하는 헤셜. 아브라함 조슈아 헤셜(1907~1972)은 20세기 후반 유대인들 뿐 아니라 비유대인들에게도 큰 영향을 끼친 사상가요 사회운동가였다. 그는 유대교 사상의 심층을 파고들어, 거기서 얻은 영감을 오늘 우리들의 삶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에 관심을 기울였다. 그는 이런 관심의 연장선에서 인권 운동 등 사회 문제에 깊이 관여하므로 많은 사람들을 감동시키기도 했다. 그는 또 유대교와 가톨릭의 유대를 강화하는 등, 종교간 화합의 문제에도 크게 공헌했다.

헤셜은 1907년 폴란드의 수도 바르샤바에서 랍비 가문 출신의 부모 밑에서 여섯째 막내로 태어났다. 십대에 탈무드를 배우는 등 정통 유대교 교육을 받고, 16세에 랍비 안수도 받았다. 20세에 베를린 대학교에 입학, 1933년 26세로 철학 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이어서 베를린에 있는 유대학 고등학원에서 두 번째 랍비 안수도 받았다. 베를린에서도 가르치고, 마틴 부버가 설립한 프랑크푸르트 유대 학당의 교장으로 봉직하기도 했다. 나치 정권이 들어서자 1938년 프랑크푸르트에서 체포되어 폴란드로 추방되었다. 6개월간 바르사바 유대 학당에서 유대교 철학과 토라를 가르치다가 독일이 폴란드를 침공하자 1939년 런던으로 옮겼다.

                                           1907년 폴란드 바르샤바 출생

헤셜의 어머니는 나치에 의해 죽임을 당하고, 누나 하나는 폭탄에 맞아 죽고 누나 둘은 유대인 수용소에서 죽었다. 헤셜은 폴란드를 떠난 후 한 번도 독일이나 폴란드에 다시 간 일이 없다. 그는 “내가 폴란드나 독일에 다시 간다면, 돌맹이 하나하나, 나무 하나하나가 모멸과 증오와 살인, 죽임을 당한 어린 아이들, 산 채 불타죽은 어머니들, 질식사한 사람들을 상기시켜 줄 것이다.”고 했다.

1940년 3월 미국으로 건너가 오하이오주 신시내티에 있는 히브리 연합대학(Hebrew Union College)에서 철학과 랍비 문학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이 대학은 유대교 중에서 자유주의적인 개혁파에 속한 대학이었기 때문에 자기의 경전주의적 배경과 잘 맞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1945년 뉴욕에 있는 보수파 유대교 신학대학(Jewish Theological Seminary)로 옮겨가 유대교 윤리와 신비주의를 가르쳤다. 1946년 결혼, 딸을 두었는데, 딸 수산나 헤셸(Susannah Heschel)은 현재 미국 명문 다트머스(Dartmous) 대학 종교학과 교수로 맹활약하고 있다.


헤셜의 주요 저작으로 『안식일』(1951), 『인간은 홀로가 아니다: 종교철학』(1951), 『인간을 찾는 신: 유대철학』(1955), 『예언자들』(1962), 『인간이란 누구인가?』(1965), 『이스라엘: 영원의 메아리』(1969), 『진리를 향한 열정』(1973) 등이 있다. 헤셜은 독일어, 히브리어, 유럽 유대인들이 쓰던 언어 이디쉬로 글을 쓰다가 삶의 후반에는 뒤 늦게 배운 영어로 글을 썼는데, 매우 아름답고 음률적인 영어를 구사했다.

인터넷 동영상에서 인터뷰하는 장면을 보면 힘차고 확신에 넘친 말을 하고 있음을 보게 된다. 그는 어렸을 때 배운 정통 유대교나 카발라, 하시디즘의 기본 가르침을 오늘을 사는 사람들에게 의미 있는 것으로 재해석하는데 힘썼다. 그는 고대 문헌 연구 자체보다 그 문헌이 인간의 영적 발달에 어떻게 도움을 주는가 하는 문제에 더 큰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유대교 예언자들의 전통에 따라 앎이 행동과 결합되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고 스스로 이를 실천했다.

가톨릭의 전통적 가르침에는 유대인을 그리스도를 죽인 백성이라 하는 등 유대인이나 유대교를 비하하는 내용이 들어 있었는데, 헤셜은 유대교 대표로 로마 교황 바오로 6세 등 가톨릭 지도자들을 만나 이런 내용을 시정해 줄 것을 요구하여, 가톨릭교회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서 공식적으로 유대교에 호의적인 선언을 채택하도록 하는 데 공헌하였다.


앎과 행동하는 것은 일치해야

헤셜은 어느 한 종교가 종교적 진리를 독점할 수 없다고 보았다. 이런 자세 때문에 그는 유대교와 그리스도교 간의 대화에도 주도적 역할을 하고, 1965년에는 유대인으로서 최초로 뉴욕에 있는 개신교 최고의 신학교 중 하나인 유니온 신학대학의 교수로 지명되기도 했다.

미국 민권 운동에도 참가했는데, 1965년 3월 21일 앨라배마 주 셀마에서 마틴 루터 킹 목사를 비롯한 미국 민권운동 지도자들과 함께 팔장을 끼고 행진하는 모습을 담은 사진은 민권운동사에서 불후의 명작으로 남아 있다. 그는 자기의 민권운동 참가 경험에 대해 말하면서, “내가 셀마에서 행진하고 있을 때 내 발이 기도하고 있었다.”고 했다. 그는 또 월남전 반전 평화 운동에도 참가했다. 그의 가르침은 영성과 사회활동과의 관계를 추구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점점 더 많은 주목을 받고 있다.


그는 앞에서 말한 마틴 부버와 함께 비유대인들에게 큰 영향을 끼친 유대인 학자라 할 수 있다. 2007년 12월 헤셜의 탄생 100주년 기념 강연회가 뉴욕에 있었다. 여덟 시간 계속된 이 행사에 200명이 넘는 유대인, 비유대인 학자들이 모여 랍비이며 동시에 철학자, 신비주의자, 사회 활동가로서의 그의 면모에 대해 토의했다. 이는 ‘그의 영향력이 갈수록 커진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라 할 수 있다. 필라델피아에 있는 샬롬 센터는 헤셸의 가치관을 반영하고 그의 메시지를 전파할 목적으로 세워진 기관이다.

헤셜이 사람들에게 많이 알려지게 된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그가 『안식일: 현대인을 위한 그 의미』이라는 책을 썼기 때문이었다. 지난 회에 언급한 것처럼 이 책에서 그는 유대인들에게 가장 중요한 종교적 가르침인 안식일 문제를 새로운 시각에서 서술한다. 유려하고 열정적인 문장으로 가득한 이 책은 1951년 출판된 이후 하나의 고전으로 자리매김을 하고, 유대인들 뿐 아니라 현대인의 삶에서 의미를 찾으려는 종교인이라면 반드시 탐독해야 할 책으로 여겨지고 있다.

단 100페이지 정도의 이 짧은 책에서 헤셜은 우선 공간과 시간을 대비시킨다. 공간 영역에 속한 사물에도 과거와 미래가 있지만, 참된 미래는 없다. 사물들의 경우 미래는 과거에 의해 결정되기 때문이다. 시간을 하나의 선물로 경험할 수 있는 인간만이 진정한 매래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시간을 선물로 경험하기 위해서는 우선 공간과 물질의 세계로부터 자유스러워져야 한다.


종교도 공간과 물질을 중요시하는 종교와 시간과 영원을 중요시하는 종교로 나눌 수 있다

공간을 중요시하는 종교는 공간과 그 공간을 채우고 있는 물질을 중요시하고 거기에서 의미를 찾는다. 반면 시간을 중요시하는 종교는 시간과 그 속에 스며든 영원을 중요시하고 거기에서 의미를 찾는다.

기본적으로 유대교는 공간을 중요시하는 종교가 아니라 시간을 중요시하는 종교라는 것이다. 공간이나 물질에서 의미를 찾는 종교가 산이나 샘이나 나무 등 물체나 장소에서 신을 찾고 신을 위해 위대한 성당이나 신전을 짓는데 반해, 시간과 영원을 중요시하는 종교인 유대교는 안식일이라는 성당을 건축했다는 것이다. “안식일이야말로 우리들의 위대한 성당이다.(the Sabbaths are our great cathedrals.)”라고 했다.

이것이 구체적으로 무슨 뜻인가? 일반적으로 인간은 누구나 공간과 공간에 있는 물질세계를 중요시하기 마련이다. 행복을 증진시키기 위해서는 물질을 더욱 많이 얻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대부분 물질 자체가 최대의 관심사일 수밖에 없다. 시간이란 오로지 이런 물질을 더 얻기 위해 쓰이어지는 수단일 뿐이다. 그런데 시간은 언제나 모자라는 것, 쉽게 흘러가버리는 것, 부질없는 것으로 보이기에 시간에 대해서는 일반적으로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기 일쑤다.


“안식일은 축제의 날” 가르쳐

이렇게 시간이란 물질을 얻기 위해 희생되어야 할 수단에 불과하다는 부정적인 시각 때문에 우리에게는 ‘안식일’이 필요하다는 것이 헤셜의 주장이다. 안식일은 물질을 더 얻겠다는 생각, 살아남거나 무엇인가를 더 얻겠다는 염려나 욕심에서 해방되는 날, 물질이 아니라 진정으로 시간의 고마움을 체험하는 날이라고 보았다. 이렇게 함으로 사람들은 신이 물질 너머에 계시다는 것, 그리고 인간도 물질을 초월할 수 있다는 것을 확인하게 되는 것이라 하였다.

헤셜의 말을 직접 들어보자. “공간 세계를 제어한다는 것은 분명 우리가 이루어야 할 과업 중 하나다. 위험은 공간의 영역에서 힘을 얻으려 할 때 시간의 영역에서 얻을 수 있는 모든 감흥을 다 빼앗기게 되고 만다는 것이다. 시간의 영역은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단순히 존재하는 그대로를, 획득하는 것이 아니라 나눔을, 억누름이 아니라 조화를 목표로 한다. 공간을 제어하는 것, 공간의 사물을 획득하는 것이 우리의 유일한 관심사가 될 때 우리의 삶은 빗나가게 된다.”

“일주일 중 엿새는 세상과 씨름하면서 땅에서 이익을 얻어낸다. 안식일에는 특별히 영혼에 심어진 영원의 씨앗을 보살핀다. 일주일 중 엿새는 세상을 다스리려 애쓰고, 이렛날은 우리 자신을 다스리는 날이다.”

존재·나눔·조화만이 신의 영역

헤셜은 십계명 중에 “탐내지 말라”는 말이 두 번이나 언급되었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고 했다. 이 말은 물질의 영역에서는 탐내지 말고, 시간의 영역에서는 탐을 내라는 뜻이라고 한다. 물질 영역에서 탐내는 것은 남에게 속한 것을 가지려는 이기적인 욕망이다. 그러나 시간의 영역에서 탐내는 것은 신과, 그리고 동료 인간들과 시간 속에서 함께함을 나누려는 사랑스러운 마음이라고 했다. 헤셜은 안식일이야말로 신이 우리에게 탐내기를 바라는 날이라 주장했다.

“그러므로 안식일은 휴전 이상이고 휴게 시간 이상이다. 그것은 인간과 세상 사이의 심오한 조화를 의식하는 날, 만물과의 동질성을 재확인하는 날, 아래에 있는 것과 위에 있는 것을 합일시키는 그 정신에 동참하는 날이다.”유대인들 중에는 안식일을 율법이 명했기에 ‘지켜야 하는 날’ ‘부담스러운 날’이라 여기는 경우가 많은데, 이 책에서는 안식일을 축제의 날, 사랑의 날로 묘사하고 있다. 유대전통에서 안식일을 신부나 여왕으로 생각하며 사랑하던 전통을 현대적으로 회복한 셈이다.

이 책이 비유대인에게도 고전으로 취급되는 것은 안식일의 의미가 하나의 종교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님을 밝혀주었기 때문이다. 누구에게나 안식일은 영원의 차원으로 우리의 시선을 돌리도록 하는 창문이 될 수 있다. 한국어 번역을 위해서는 아브라함 헤셸 지음, 김순현 옮김, 『안식』(복 있는 사람, 2007)을 볼 수 있다.

오강남 캐나다 리자이나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