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르겠소
-장재봉신부-
독서가 전하는 발라암은 이방인이었지만
“당신이 축복하는 이는 복을 받고, 당신이 저주하는 이는 저주를 받는”
능력을 지닌 하느님의 사람이었습니다.
이 능력은
그가 “주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말하는 일에서 기인했다는 사실을
성경은 전해줍니다.
그가
돈에 마음이 멀어져서
모압 왕의 청을 거절하지 못하고
미적대는 모습을 들으면 의아하지만
그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닙니다.
모압 왕의 제안은
“무엇이든 요구하는 대로 해 드리겠습니다.”(민수22,17)라는
엄청난 보수가 걸린 일이었으니까요.
그의 머뭇거림을 본
하느님께서는 ‘나귀가 말을 하는’ 이적까지 행하셨음에도
세상의 유혹 앞에
흔들리는 발라암은 스스로 마음을 붙잡지 못하고
타락을 자초하였습니다.
“돈벌이를 좋아하다가 그 범법 때문에 책망을” 받은 사람으로 기록되는
불명예를 얻고 말았으니까요(2베드2,14-16 참조).
타락이란 하느님께
“믿음이 확고하지 못한 사람”이며
“마음은 탐욕에 젖어 있는”것임을 배웁니다.
하느님과 세상 사이에서 오락가락하는 마음은
복음에 단호하지 못합니다.
하느님의 뜻에
‘예’라고 답하고
‘아니오’라고 말하라는 주님의 명령을
모른척하고 외면하려합니다.
때문에
자신의 몸을 사리며 “모르겠소”라고
모호하게 처신하기를 꾀합니다.
이야말로 인간의 궁리로
하느님의 뜻을 흐지부지시킬 수 있다는 생각이기에
가당치 않습니다.
+++
오늘 수석사제와 율법학자들의 답변은
하느님의 뜻을 헤아리기 위한 고민이 아니라
하느님의 뜻을 피하려는 잔꾀에 불과했기에
떳떳치 못하고
비굴하고
간사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우리끼리
그리스도인끼리
모여 궁리하는 일이
하느님의 뜻을 알리고 전하기 위한 것이 아닐 때
아무 소용없는 추잡할 수 있다는 사실을 말해줍니다.
그날
주님 앞에서는
“모르겠소”라고 답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세상이 창조된 때부터, 하느님의 보이지 않는 본성
곧 그분의 영원한 힘과 신성을 조물을 통하여 알아보고
깨달을 수 있게“(로마1,20)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분께 얻은 지혜로
그분의 뜻에 ‘예’하고
세상에 ‘아니오’라 답하는 사람이 그리스도인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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