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 2주 월 요한 3,1-8(15.4.13)
Jesus and Nicodemus
♣ 영으로 태어나기 위해 ♣
니코데모는 최고의회의 일원이었고 부자였으며 (요한 19,34-40), 학식을 겸비한 지도자였다.
그는 밤에 예수님을 찾아와 행하신 표징들을(요한 2,23-25) 보아 ‘하느님에게서 오신 스승님’이라고 고백한다.
아마도 그는 사회적 이목이 두려워서 또는 종교 질서에 관한 문제들의 논의와 연구는 밤에 하였던 랍비들의 관습을 따라 ‘밤에’ 예수님을 찾아왔을 것이다.
요한의 관점에서 낮과 밤을 대비하여 말한 것일 수도 있다. 밤은 예수님의 체포 순간처럼 죽음과 죄악의 세계요 육의 영에 매인 상태라 할 수 있다.
니코데모는 예수님이 오신 기원은 알아보았으나 여전히 어둠 속, 육의 질서 안에 머물고 있었다고 할 수 있다. 구약 성서의 계시를 이어받아 그것을 완성시키고 있다는 사실을 역설하신다.
예수님께서 니코데모에게 “누구든지 위로부터 태어나지 않으면 하느님의 나라를 볼 수 없다”(3,3)고 말씀하신다.
‘위로부터’는 ‘다시’의 뜻도 있다. 한편 요한에게 있어 ‘본다’는 것은 안다, 믿는다, 사랑한다, 고백한다 등과 통하는 개념이다. 곧 생각과 마음이 바뀌지 않으면 하느님을 알아 믿을 수도 없고 사랑할 수도 없다는 말씀이다. 이제는 ‘위로부터 태어나다’(3절)를 ‘물과 성령으로 태어나다’(5절)로,
‘하느님의 나라를 보다’를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다’(5절)로 좀 더 상세히 풀어서 답해 주신다.
여기서 ‘물로 태어남’은 세례성사로 새롭게 태어남를 뜻하며, 성령으로 태어난다는 것은 성자를 통해 인간을 새롭게 하고 그에게 새로운 생명을 열어주며 그가 자신의 새로운 존재를 의식할 수단인 신앙을 불어넣어주는 성령의 작용 안에서 살아가게 된다는 것이다.
이렇게 전인격적이며 전존재적인 변화를 통해 하느님의 나라에 들어가게 되고 영의 세계에서 살아가게 되는 것이다. “육에서 태어난 것은 육이고 영에서 태어난 것은 영이다.”(3,6)고 말씀하신다.
요한복음에서 ‘육’은 연약하고 허약한 인간을 뜻하며, 자연적인 인간 조건, 고립되어 있는 인간성, 하느님과 동떨어진 인간성, 죽음에 부쳐진 인간성을 의미한다.
한편 ‘영’은 앞 구절들과 관련시켜 볼 때 분명 ‘성령’을 가리킨다.
인간은 육의 영역과 자연질서에 속하여 머무르려는 경향이 있기에 하느님 나라의 일원이 되려면 다시 태어나야 한다.
이는 성령께서 하시는 일이며 성령의 온전한 선물이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니코데모가 어둠과 두려움을 극복하고 차츰 이런 ‘영의 질서’를 받아들이도록 이끌어주셨다. 곧 ‘영의 질서’와 ‘하느님의 주도권’을 망각하고 육의 영에 매여 살고 있는 또 한사람의 니코데모가 아닐까?
우리도 니코데모처럼 표징을 보고 예수님을 하느님에게서 오신 분으로 믿긴 하지만 정작 내면의 근본적인 변화에는 소홀한 것은 아닌지 돌아볼 일이다.
또 영적으로 아둔하면서도 예수님께 물음으로써 서서히 성령의 이끄심에 자신을 내맡겼던 니코데모와 같은 영적 열망과 갈증조차 없이 살아가는 건 아닌가?
혹시 나는 굳어진 사고의 틀과 시선, 습관화된 정서적 반응과 같은 육의 작용에 휩쓸려 성령의 활동에 마음을 닫고 살아가는 것은 아닌지.
하느님 체험이란 규칙의 준수나 일정한 틀 속의 활동이 아니라 겸손되이 하느님의 권능을 인정하는 태도임을 명심할 일이다.
오늘 하루만이라도 마음의 대문을 활짝 열어젖히고 생각의 끈과 애착의 끈끈함을 내려놓고 영의 소리에 귀 기울여보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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