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예수님의 권위에 대한 논쟁 †
-박상대 신부-
역사적 사건의 측면에서 볼 때, 세례자 요한의 선구자적 역할은 메시아 예수의 공생활로 말미암은 신약의 시작으로 끝나며, 신약은 그리스도 예수의 메시아적 역할, 즉 공생활, 수난, 죽음, 부활로 끝이 납니다. 그러나 구세사적 측면에서 볼 때, 요한과 예수의 역할은 그리스도의 재림 때까지 지속된다는 것이고, 이렇게 시공을 초월할 수 있는 두 분의 역할은 하느님 아버지의 구원경륜 속에 하느님 스스로가 세례자 요한과 아들 예수에게 부여한 사명과 권한 때문입니다. 이 사명과 권한이 두 분의 역할과 활동을 인간구원과 관련하여 정당화시키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이 바로 그 권위에 관한 문제를 다루고 있는데, 예수의 권위에 대한 예수와 백성의 지도자들 사이에 벌어진 논쟁의 정확한 시점은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 후 사흘째 되는 날입니다. 논쟁의 원인이 되는 '이런 일'이란 예수께서 입성 직후 행하신 성전정화사건을 말하지만 지금까지 행하신 예수님의 전체 행적으로 보는 것이 옳을 것입니다.
예수님의 권한이야 두말할 필요도 없이 하느님으로부터의 권한입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직접적인 답변을 회피하시고, 그들이 알아듣기 훨씬 쉬운 방법을 택하시는데, 그것은 바로 세례자 요한의 권한에 대한 반문이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세례자 요한을 믿고 회개의 세례를 받았지만 백성의 지도자들과 대사제들은 요한의 말을 믿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의 반문이 그들을 진퇴양난에 빠트려 '모르겠다.'는 대답을 얻어냈지만, 사실상 그들은 속으로 세례자 요한을 불신함으로써 예수까지도 불신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모르겠다.'는 대답은 사실상 직무유기에 해당합니다. 대사제들과 백성의 지도자들은 무엇이 하느님의 일이고 무엇이 아닌지를 분별하여 백성들에게 제시해야 하는 임무를 가진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그들이 세례자 요한의 권한에 대하여 아무 것도 모른다고 함으로써 자신들의 직무를 다하지 못함은 물론, 예수가 누구이며, 어떤 권한으로 지금까지 놀라운 행적을 해왔는지에 대하여 알 수 있는 기회를 놓치게 됩니다. 이렇듯 믿지않는 이들에게는 예수님의 참된 정체성은 유보됩니다.
예수님의 대답은 적어도 말씀을 들으려 하고 받아들이려 하는 사람에게만 주어집니다. 이에 선행되어야 할 일이 있으니, 그것이 바로 세례자 요한에 대한 신뢰입니다. 세례자 요한을 통하여 일어나는 하느님의 사건에 대한 믿음 없이 예수께 대한 믿음을 얻기란 힘이 듭니다. 우리 중에 세례자 요한에 대하여 모른다고 말할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오늘날 세례자 요한이라는 인물과 그의 선구자적 역할과 활동을 신뢰한다는 것은 곧 메시아의 재림을 준비하는 회개와 쇄신의 삶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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