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 속의 울보
아동보육시설 책임자로 있을 때 같이 살았던 한 아이가 제 기억 속에 늘 남아 있습니다.
좋은 가정에서 아쉬울 것 하나 없이 지내던 아이였는데, 어느 날 갑자기 부모님이 잠적해 버렸습니다.
갑작스러운 사업 실패로 순식간에 가정이 공중 분해되어 버렸습니다.
갈 곳이 없어진 아이를 친척집에서도 나 몰라라 했습니다. 평소에 그렇게 잘 대해 주던 이웃들도
고개를 돌렸습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저희 시설로 오게 된 것입니다.
아이가 받은 상처와 충격이 엄청났던가 봅니다. 아니는 처음 만날 때부터 울기 시작해서
데려오는 차 안에서도 계속 울었습니다. 저희 집에 도착해서도 계속 서럽게 울어 대는데
정말 속수무책이었습니다. 식음을 전폐하고 만 사흘을 내리 울었습니다.
저는 별의별 방법을 다 동원해 아이의 울음을 멈춰 보려고 노력했습니다.
별별 표정을 다 지으면서 웃겨 보려고도 노력해 봤습니다.
하지만 괜히 아이 얼굴 바로 앞에서 생쇼를 하다가 주먹으로 세게 한 대 얻어맞기만 했습니다.
나중에는 포기하고 우는 아이 옆에 드러누웠습니다.
그러고는 만화책을 보다 잠이 들다 그렇게 하루를 보냈습니다.
나중에는 슬슬 걱정되기 시작하더군요. 왜냐하면 밥도 안 먹고 계속 울기만 하니까요.
이러다 응급실로 실려 가는 거 아닌가 점점 걱정이 커져 갔습니다.
흘끔 쳐다봤더니 아이는 목이 다 쉬어 꺼이꺼이 하고 있었습니다.
어찌나 울었는지 눈물은 마를 대로 다 말라 더 이상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사흘째 되는 날 아이의 울음소리가 잦아들기 시작했습니다.
특별한 이유가 있어서라기보다 제풀에 지친 듯 했습니다.
눈물에는 사람의 마음을 진정시키고 상처를 치유하는 특별한 효과가 있다고 하지요.
울만큼 운 아이는 어느 순간 슬그머니 울음을 그쳤습니다.
어쩔 수 없는 현실을 인정하는 듯 드디어 제게 말문을 열기 시작했습니다.
세월이 흘러 이젠 의젓한 성인이 된 그 친구를 얼마 전에 만났습니다. 얼마나 잘 컸는지 모릅니다.
그런대로 괜찮은 건설회사에 다니고 있습니다. 적금도 잘 붓고 있고 중고차도 하나 장만했습니다.
단둘이 마주 앉아 술을 한잔하게 되었는데 제게 그러더군요.
"신부님, 아세요? 제가 사흘 내리 울 때 옆에 계셔 준 것 평생 잊지 못해요.
제게 얼마나 큰 힘이 되었는지 몰라요. 부모님은 아무도 모르게 사라지고,
친척들도 다들 절 나 몰라라 하고, 다들 날 버렸는데, 다들 그렇게 절 내쳤는데,
그래서 더 이상 살고 싶지 않았는데……. 그때 신부님이 그냥 그렇게 옆에 계셔 주셨잖아요."
임종 환자들에게 가장 큰 고통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아직 한 번도 가 보지 못한 길을 향해 홀로 떠나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생각할 때 임종 환자들은 호흡도 곤란하고 의식도 혼미해서 거의 죽은 목숨이나 다름없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그렇지 않습니다.숨이 떨어지기 일보 직전까지 또렷하게 의식하는 임종 환자들도 많습니다.
그분들에게 세상 떠나는 순간 옆에 아무도 없다는 것, 그것처럼 쓸쓸하고 허전하고 괴로운 일은
다시 또 없을 것입니다. 마지막 순간인 그때 누군가가 옆에 있어 주는 것이 얼마나 큰 위로가 되겠습니까?
누군가가 옆에 있다는 것은 사랑, 삶, 죽음의 순간에 가장 중요한 일입니다.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보이겠지만 힘든 순간 함께 걸어 주는 것, 손 한 번 잡아 주는 것,
같이 눈물 흘려 주는 것, 그것은 사랑 중의 사랑입니다. 구원 중의 구원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이유는 하느님 아버지의 명을 따라 우리를 위로해 주시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런데 우리를 어떻게 위로해 주셨습니까? 우리와 함께 머무르심으로써 우리를 위로해 주셨습니다.
우리와 똑같이 되심으로써 우리를 위로해 주셨습니다. 우리의 고통에 참여하시고
우리의 끝도 없는 슬픔과 방황에 동반해 주심으로써 우리를 위로해 주셨습니다.
< 축복의 달인 >
양승국 신부의 영성 스토리
'양승국(스테파노) 신부님 말씀 강' 카테고리의 다른 글
~ 다 죽었어 / 양승국 신부님 ~ (0) | 2015.11.25 |
---|---|
~ 참된 성전 건립 / 양승국 신부님 ~ (0) | 2015.11.24 |
~ 위대한 어머니 / 양승국 신부님 ~ (0) | 2015.11.19 |
~ 눈물겨운 예수님의 자비 / 양승국 신부님 ~ (0) | 2015.11.16 |
~ 마치 곡예라도 하듯이 / 양승국 신부님 ~ (0) | 2015.11.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