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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경호(프란치스코) OFM

~ 2015 년도 12월 07일 월요일 성 암브로시오 주교 사제 학자 기념일 / 기경호 신부님 ~




성 암브로시오 축일 루카 5,17-26(15.12.7)



우리가 오늘 신기한 일을 보았다.”(루카 5,26)



The healing of a paralytic



 


 광야에서 행복을 찾는 길


오늘 복음은 극명하게 대비되는 두 부류의 사람들의 태도를 통해

 주님을 만날 수 있는 행복의 터인 광야로 가는 길을 알려줍니다.

첫 부류는 중풍병자의 친구들입니다.


그들은 군중 때문에 중풍병자인 친구를 예수님이 계시는 안으로 들일 수 없자

 지붕으로 올라가 기와를 벗겨내고 예수님 앞 한가운데로 내려 보냅니다

(5,18-19).


그들은 주님께 대한 확고한 믿음 안에서 연대하여 벗의 치유와 해방을 위해

 진지하고도 끈기 있는 노력을 합니다.


그들이 친구를 데려간 곳은

 '예수님 앞 한가운데', 곧 자유와 행복의 한복판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병자에게

 ‘너는 죄를 용서받았다’고 하시며 고쳐주십니다

(5,20).


결국 중풍병자는 친구들의 도움 덕분에 병과 죄

모두에서 해방되는 기쁨을 맛보게 됩니다.


 우리는 누군가의 기도와 도움, 눈에 드러나지 않는 숨은 배려 속에

 하느님께 나아가고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나아가 이웃과 이 사회의 고통과 시련,

하느님 부재(不在)의 현실을 보며

모두 안에 하느님 나라가 오도록 기도하고 연대해야겠습니다.


영원한 생명은 자신의 힘만으로는 얻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연대는 사랑의 적극적인 표현입니다.


 우리가 추구해야 할 연대는

이득을 얻고 기득권과 재물을 지키기 위한 것이 아니라

 존엄한 인간을 살리기 위한 것입니다.

다른 부류는 당대의 종교지도자요 사회 지도층인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입니다.


 이들은 예수님께서 중풍병자의 죄를 사해주시자 의아하게 생각합니다.

 예수님을 통해 드러나는 구원과 해방을 의심한 것입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신념과 고정된 습관, 안전장치인 제도에 기대어

 행복의 땅, 광야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들이 보는 앞에서 중풍병에 걸린 이에게

 “일어나 네 평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거라.” 하시자

그는 즉시 일어나 하느님을 찬양하며 집으로 돌아갑니다

(5,24-25).


이에 모든 사람이 크게 놀라 하느님을 찬양하였고

두려움에 차서 “오늘 신기한 일을 보았다.” 하고 말합니다

(5,26).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병만 고치신 것이 아니라

죄까지 용서해주신 것을 신기하게 여겼을 것입니다.


그러나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은 마음이 굳고

눈이 멀어 놀라지도 두려워하지도 않습니다.

삶의 매순간은 우리를 신앙의 선택과 결단으로 내몹니다.

눈앞에 펼쳐지는 사회적 불의와 불공평, 무관심과 차별,

다른 이들의 아픔을 보며

나는 어떤 태도를 취하고 있는지 성찰해 봐야겠습니다.


중풍병자와 그 친구들처럼 확고한 믿음과 인내 가운데 연대하고 있습니까?


아니면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처럼 자신의 틀에 박혀

하느님의 손길을 의심하고 익숙한 삶의 자리에 안주하고 있습니까?

암브로시오 성인은 아리우스 이단에 맞서 정통 그리스도교를 옹호하였고,

전례와 성직의 개혁을 꾸준히 실행하는 한편,

황제의 권위에 대항하여 교회의 독립과 자주성을 옹호하였습니다.


 우리도 확고한 신앙과 불타는 열정으로

하느님의 뜻을 실행했던 이 성인을 본받아야겠습니다.

오늘도 믿음과 인내로 서로 연대하며,

복음적 불안정의 광야에서 안주하지 않고

순수한 눈길로 하느님을 알아보는 경이로운 날이었으면 합니다.




기경호 프란치스코 신부 작은형제회(프란치스코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