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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승국(스테파노) 신부님 말씀 강

~ 음산한 성지에서,,, / 양승국 신부님 ~

                                                                            

 

 

                                  음산한 성지에서

 

 

  유학생 시절의 일입니다. 긴 여름방학을 이용해서 유럽의 한 작은 성지에 몇 달간 머무른 적이 있습니다.

성지 담당 신부님은 제게 매일 미사와 고해성사라는 간단한 '알바'를 맡기고 장기 휴가를 떠났지요.

나중에 알고 보니 그 신부님은 꽤난 유명세를 타고 있는 신부님이었습니다.

정식으로 구마 활동을 할 수 있는 자격을 부여받은 심리학과 영성신학의 대가였습니다.

그러다 보니 평소에도 정신적, 신앙적 어려움을 겪는 분들이 멀리서부터 찾아와 도움을 받곤 했습니다.

 

 문제는 신부님이 휴가를 떠나고 난 후였습니다. 저 홀로 그 '음산한' 성지를 지켜야만 했습니다.

그뿐만 아니었습니다. 신부님이 장기 휴가를 떠난다고 공지를 했음에도 많은 사람이 찾아 왔습니다.

그리고 제게 구마 예식을 부탁했습니다. 저는 말도 아직 서투를뿐더러 자격이 없다고 했지만,

워낙 멀리서 찾아온 분들이라 막무가내였습니다.

 

 저는 그때 말로만 듣던 '마귀 들린 사람들'의 실체를 어렴풋이나마 보게 되었습니다.

무섭기도 무서웠지만 그보다 너무나 안타까웠습니다. 그들은 스스로 서지 못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독립적인 삶을 살아 내지 못했습니다. 자신을 하나로 통합하지 못했습니다.

 

 태도가 이랬다저랬다, 증세가 완화되었다가 악화되었다가, 단일한 한 존재임에도 자신 안에

여러 사람이 들어 있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한 존재가 사분오열된 것입니다. 늘 누군가에게 시달렸습니다.

잠시 평상심을 회복했을 때의 그 비참함, 자괴감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었습니다.

 

 내면이 안정되지 못하고 늘 불안하다 보니 외모에 신경 쓸 겨를도 없게 됩니다.

영혼과 육신 모두가 피폐해질 대로 피폐해진 그들에게 아무것도 해 줄 수 없는 저 자신이 너무나 미웠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초보 사제'였던 저는 일단 너무나 무서워서 그들을 대면한 자신조차 생기지 않았습니다.

 

 복음서에 등장하는 예수님께서는 자주 마귀 들린 사람들을 만나셨습니다.

형편없이 망가진 그들의 모습 앞에서도 조금도 위축되지 않으십니다.

도저히 용납하기 힘든 그들의 행동, 기괴한 언행 앞에서도 흔들리지 않으십니다.

그들 내면에 잠재되어 있는 악의 기운에 영향을 받지도 않으십니다.

 

 그보다는 태초부터 그들의 내면에 아로새겨진 하느님의 선을 눈여겨보십니다.

아주 작은 가능성 하나를 놓치지 않으십니다. 아직까지 그들에게 남아 있는 마지막 희망을 눈여겨보십니다.

마귀 들린 사람 입장에서 예수님은 그야말로 '마지막 끈'이었습니다.

그들이 오랜 세월 세상 사람들로부터 받아 왔던 따돌림, 눈총, 수군거림, 악담, 저주는 안 그래도

힘겨운 그들의 삶을 더 깊은 나락으로 밀어 넣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런 그들에게 따뜻한 사랑의 눈길을 보내셨습니다.

이렇게 갈 데까지 간 그들을 향한 희망을 버리지 않으셨습니다.

다들 그들이 나타나면 혼비백산해서 도망갔는데 예수님께서는 그들 가까이 다가가셨습니다.

그들의 빰에 당신 빰을 갖다 대시면서 그들의 인생 안으로 들어가셨습니다.

그리고는 이런 말씀으로 그들을 구원하셨습니다.

 "안심하거라. 아들아, 넌 일어설 수 있어. 자, 그럼 내손을 잡고 한번 일어나 볼래?"

 

 예수님께서는 오늘 우리에게도 똑같은 방식으로 다가오십니다.

 "아들아, 너 스스로를 좀 더 사랑해 보지 않겠지?

왜냐하면 넌 내눈에 넣어도 전혀 아프지 않을 내 귀염둥이란다.

네 인생은 내게 소중하단다. 너 자체가 내겐 가장 귀중한 보물이란다."

 

 

                                                     < 축복의 달인 >

                                              양승국 신부의 영성 스토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