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산자 부담의 원칙
-박상대신부-
예수께서 굶주린 이들에게 베푸신 빵과 물고기의 기적은 언제 들어도 신명나는 일이다. 빵과 물고기를 많게 하여 사람들을 먹이신 기적은 오늘 복음에서와 같이 마르코복음뿐 아니라 4복음서 모두가 전하고 있다.(마태 14,13-21; 마르 6,32-44; 루가 9,10-17; 요한 6,1-15) 이 기적에서 예수께서는 빵 5개와 물고기 2마리로 남자만도 5,000명을 먹이셨다. 그런데 마르코와 마태오는 또 다른 빵의 기적을 전하고 있다.(마르 8,1-9; 마태 15,32-39) 이 대목은 예수께서 빵 7개와 물고기 몇 마리로 4,000명 이상을 배불리 먹이셨다고 보도한다. 빵과 물고기의 숫자와 배불리 먹은 사람들의 숫자를 빼고는 두 기적사화가 거의 같은 내용을 담고 있다. 마지막 부분에 먹고 남은 조각들을 모두 모았더니, 첫 기적에서는 12광주리(마르 6,43)가 가득 찼고, 두 번째 기적에서는 7광주리(마르 8,8)가 가득 찼다고 한다. 가득 찼다고 하는 말은 하느님의 사랑과 자비가 넘치도록 풍성하다는 뜻일 것이다.
성서학자들 중에는 그 많은 사람들이 배불리 먹고도 남은 조각들을 모았더니 12광주리와 7광주리에 가득 찼다는 말에 의미를 두기도 한다. 12광주리는 이스라엘의 12지파(창세 35,23-26; 민수 1,5-49)를 가리키는 상징으로써 메시아이신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이스라엘이 온전히 재건됨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7광주리는 전성기 구약시대, 즉 여호수아가 점령한 약속의 땅을 이스라엘 12지파에게 나누어주고 난 뒤 평화로운 시대를 맞이하였을 당시에 이스라엘을 둘러싸고 있던 주변의 일곱 나라를 상징한다는 것이다. 일곱 나라가 정확히 어떤 나라인지는 알 수 없으나 전세계와 전인류를 상징하는 것으로서, 이 또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세상의 구원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마르코와 마태오복음이 빵의 기적을 두 번씩 보도하는 이유를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이스라엘뿐 아니라 온 세상이 구세주 그리스도를 통하여 실제적인 구원을 얻게 된다는 것이다. 구원의 실재(實在)는 예수님의 말씀과 기적으로 드러난다. 구원을 필요로 하는 인간에게 있어서 말씀은 영적(靈的)인 양식이요, 기적은 육적(肉的)인 양식이다. 육적인 양식으로서의 기적은 병자들의 치유와 일용할 양식으로 베풀어진다. 빵의 기적은 곧 우리가 필요로 하는 일용할 양식이 어떻게 베풀어지는 것인지를 가르쳐 준다. 예수님의 손에 올려진 양식은 성자(聖子)의 감사기도와 성부(聖父)의 축복으로 우리 인간에게 베풀어지는 것이다.
인간이 비록 일용할 양식을 자신의 힘으로 벌어먹는다고 하지만 원초적으로는 하느님께서 내리시는 선물이다. 일용할 양식은 곧 온 세상을 창조하신 하느님의 "생산자 부담"이라는 말이다.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너희가 먹을 것을 주어라"(37절)고 하셨지만 결국은 예수께서 기적을 베푸심으로써 "생산자 부담"의 원칙을 지키셨다. 되도록 "사용자 부담", "수신자 부담", 또는 "소비자 부담"에 익숙해 있는 우리 인간들은 오늘 복음을 통하여 "생산자 부담"의 원리를 배워야 할 것이다. 특히 오늘날 교회의 신자들에 대한 "생산자 부담"의 원칙은 그 어느 때보다 더욱 절실히 요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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