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리사이들은 율법을 철저히 지킴으로써 다가올
하느님의 나라를 앞당길 수 있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기원전 4-5세기 전부터 율법학자들이 등장하여
모세오경의 윤리규범들을 실생활에 적용할 수많은 규칙을 만들어냈습니다.
바리사이들은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그것을 지키게 했고,
자신들도 열심히 실행하였습니다.
바리사이들과 율법학자들은
예수님의 제자들이 씻는 인습을 지키지 않자 비난합니다.
이에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세 가지 잘못을 지적하십니다.
오늘 우리 또한 바리사이들과 율법학자들의
잘못을 되풀이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바리사이들의 첫 번째 잘못은
마음 없이 입으로만 하느님을 공경하는 것이었습니다
(7,7).
우리도 숨 돌릴 겨를조차 없이 빠르게 흘러가는 세상살이에 파묻혀
자신도 모르게 딴데 마음을 두고 ‘영혼 없이 입술의 움직임만으로’
하느님을 공경하는 것은 아닌지 돌아봤으면 합니다.
형식적 예배, 의무적 규범 준수, 행동이 따르지 않는 공허한 말이 아니라
순수한 마음과 실천으로 주님을 섬겨야겠습니다.
다음으로 인간이 만든 이론의 틀 안에 하느님을 가두고
헛되이 섬기는 것도 문제였습니다
(7,7).
우리는 신학이론, 교리, 교도권의 가르침을 중시하며 존중합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말씀이 아닌 그런 것들은 시대를 달리 하고
인간의 깨우침의 폭이 달라져가면서 바뀌거나 폐기되기도 합니다.
예컨대 제2차 바티칸 공의회 문헌에서는 ‘재속성’을
교회의 본성으로 이해하지만 ‘세상’을 원수로 이해하던 때도 있었습니다.
또한 교회를 ‘완전사회’로 이해하여 비그리스도교인들을 원수로 여기고,
성(聖)과 속(俗)을 엄격히 구분하는 이원론적 사고가 지배하던 때도 있었습니다.
하느님에 대한 각자의 생각도 천차만별입니다.
인간의 하느님 이해나 영성, 신앙, 구원에 관한 이론은
절대적일 수 없고, 그것이 제아무리 탁월하다 하여도
한계를 지닌 인간에게서 나온 제한된 것입니다.
그런 이론들이 하느님을 체험을 깊게 하고
넓혀가도록 도움을 주는 것이 사실이지만, 하느님을 그 틀에
가두려 하거나 스스로 갇혀서는 안 될 것입니다.
끝으로 그들의 잘못은 사람의 전통을 우선시하여
하느님의 말씀을 무시하고, 하느님의 계명을 핑계 삼아
오히려 하느님의 자비의 정신을 외면한 것입니다
(7,8).
우리는 하느님을 자신의 도구로 삼지 말아야겠습니다.
또한 전통과 인습을 우상처럼 섬김으로써 하느님을 보지 못하거나
인간을 소홀히 여기는 일이 없어야 합니다.
오늘 하루 바리사이들과 율법학자들처럼 하느님을 행동 없이
공허하게 공경하고, 관념 속에 가두며, 익숙한 나의 틀과 습관에 매여
하느님을 보지 못하고, 사람의 계명을 하느님의 것인 양
생각하며 살지는 않은지 돌아보았으면 합니다.
피조물과 형제들 안에 계시는 창조의 하느님을 무시하고
내가 만들어낸 하느님 상을 헛되이 섬기고 있지는 않은지
살펴보았으면 합니다.
기경호 프란치스코 신부 작은형제회(프란치스코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