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 1주 금, 마태 5,20ㄴ-26(16.2.19)
“먼저 형제를 찾아가 화해하여라.”(마태 5,24)
♣ 생명을 키우고 넓혀가는 길 ♣
에제키엘 예언자는 제1차 바빌론 유배를 전후하여 어려움 중에 있는 유다 백성을 향하여 스스로는 회개하지 않고 오직 하느님과 집단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잘못을 경고합니다. 다른 한편 “악인도 자기가 저지른 모든 죄를 버리고 돌아서서, 나의 모든 규정을 준수하고 공정과 정의를 실천하면, 죽지 않고 반드시 살 것이다.” (에제 18,21)라는 하느님의 자비를 전합니다. 의로움을 능가하지 않으면, 결코 하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할 것” (5,20)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곧 율법의 세목을 지키고 정해진 교리를 꼬박꼬박 지키는 것만으로는 신앙인의 도리를 다했다고 할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생명 존중의 의무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이라면 육신을 죽이지 않는 외적 행위 뿐 아니라, 성내거나 ‘바보’, ‘멍청이’라고 말함으로써 평화를 깨뜨리며 마음에 상처를 주는 내적 살인도 해서도 안 된다 하십니다. 이렇듯 예수님께서는 생명을 개별 목숨에 국한시키지 않으시고 관계 안에서 바라보십니다. 그래서 최대한을 요구하시고, ‘보다 더’를 요청하십니다.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입니다. 그래도 더 잘 응답하려면 무엇보다도 잠에서 깨어나 영적 감각을 되살려야 합니다. 말씀과 기도를 통해 늘 하느님 앞에 자신을 두고 온갖 피조물을 지극한 사랑으로 창조하시고 보살피시는 하느님의 마음을 지니는 것보다 중요한 건 없을 것입니다. 형제 자매들과의 관계에서도 분노, 폭언, 멸시, 관계 단절과 같은 평온과 일치를 깨뜨리는 행동을 그만 둘 것입니다. 아울러 형제와 ‘먼저’ 화해하지 않고는 참지 못할 것입니다. 영적 감각이 무디어지면 분노, 증오, 악의, 험담과 같은 반생명적인 것들을 대수롭지 않게 넘겨버립니다. 말 한마디가 사람을 죽음으로 몰 수도 있지 않습니까? "형제가 너에게 원망을 품고 있는 것이 생각나거든, 예물을 거기 제단 앞에 놓아두고 물러가 먼저 그 형제와 화해하고” (5,23-24), "고소를 당하면 법정으로 가는 도중에 마지막 한 닢까지 갚고 얼른 타협하라." 당리당략의 추구, 공정한 기회의 박탈, 금수저와 흙수저로 표현되는 신분 차별, 돈과 경쟁으로 숨쉬기 힘든 현실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신앙인들부터 대충주의와 안일함에서 벗어나야겠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마지막 한 닢까지 갚기 전에는 결코 감옥에서 나오지 못할 것"(5,26)이라 하십니다. 부정적인 언어와 움직임을 극복해야 한다는 뜻이겠지요. 이제 서로 존중하면서 애정어린 대화, 따뜻한 배려와 관대한 이해, 차별과 불화의 극복을 통해 자유롭게 생명의 관계를 넓혀가야 할 것입니다. ‘아직도 더’만 있을 뿐입니다. 오늘도 잠든 의식을 일깨워 어떤 상황이나 관계에서도 주님의 영을 품고 ‘더’, ‘먼저’, ‘서둘러’ 사랑하고 작은 것 하나도 소중히 여김으로써 생명을 키워가는 우리가 되었으면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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