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무한한 충만
젊은 시인
프리드리히 폰 하르덴베르크는
필명으로
'새로운 땅을 개간하는 사람'
이라는 뜻의
'노발리스'라는
이름을 사용했다.
낭만주의의 상징이 된
'파란 꽃'의 창시자이며,
29세의 나이로
너무 일찍 세상을 떠난
시인의 문학에는
독특한 광채가 있다.
25세의 노발리스는
어린 약혼녀가 세상을 뜨자,
내면에서
이 세상과 이별을 고하고
애인을 따라 죽으려고 했다.
그의 문학에는 다른 세계에 대한
이러한 동경이 각인되어 있다.
아무리
무감각한 자일지라도
단 한 번만 이 맛을 보면,
모든 것을 버리고
우리에게로 와.
결코 비지 않게 될
동경의 식탁에 앉았다.
그들은 사랑의
무한한 충만을 인식했고,
삶과 피의
양식을 칭송했다
노발리스는
독자를 동경의
식탁으로 초대한다.
독자들은 동경의 식탁에서,
우리의 삶에 진정한 광채를
선사하는 사랑의 무한한
충만을 인식한다.
이 사랑의 맛을 본 사람은
모든 외적인 것,
즉 직업이나
재산 따위를 뒤로하고
동경의 식탁에 앉는다.
노발리스의 시와
미완성 소설을 읽는 독자는
그가 차려놓은 동경의
식탁에 앉는 셈이다.
그곳에서 우리를
무한한 사랑의 왕국으로
인도할 사랑의 동경에
참여하는 것이다.
사랑에 대한 동경은
노발리스의 단장(斷章,
독일 낭만주의의 문학 장르
에서도 울려퍼진다.
노발리스는 말한다.
"모든 동화는 도처에 있고
아무 데도 없는 고향에 대한
꿈일 뿐이다."
고향,
그곳은
사랑의 세계이다.
인간의 사랑에서는
신의 사랑이 빛난다.
신의 사랑이
인간의 사랑 속에서
빛나는 오직 그곳에
고향이 있다.
우리는 동화를 읽으며
고향에 대한 꿈을 꾼다.
고향은 도처에 있고
아무 데도 없다.
고향은
우리가 있는 그곳이다.
동화를 읽을 때 우리 삶은
고향이 된다.
그러나 고향은
동시에 그 어디에도 없다.
우리는
고향을 잡아 둘 수 없다.
고향은 항상 우리의 손에서
빠져나가 사라진다.
노발리스는
시인일 뿐만 아니라
낭만주의
철학자이기도 하다.
문학과 마찬가지로
철학도 고향에 대한
향수로 채워져 있다.
노발리스는
"철학은 본래 향수
어디에서든
집을 찾고자 하는
충동이다"라고 말한다.
내 생각 속에서
비밀이 열리는 그곳에
고향이 있다.
비밀이 살고 있는
그곳만이 고향일 수
있기 때문이다.
(동경)
안셀름그륀 지음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안셀름 그륀'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사람들은 곧 나의 천사다 / 안셀름 그륀 신부님 ~ (0) | 2016.04.10 |
---|---|
~ 우리의 몸은 거룩한 성전이다. / 안셀름 그륀 신부님 ~ (0) | 2016.04.03 |
~ 영혼의 밤 / 안셀름 그륀 신부님 ~ (0) | 2016.03.21 |
~ 동경은 밤에 자란다 / 안셀름 그륀 신부님 ~ (0) | 2016.03.18 |
~ 마음 깊은 곳에서 민나다 / 안셀름 그륀 신부님 ~ (0) | 2016.03.1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