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유한 개별 인격체들이 하나가 된다는 것은 참 아름다운 일이고 좋은 일을 하기 위해 필요할 때도 많습니다.
그러나 그런 과정에서 갈등과 불화를 이루는 일도 많습니다.
또 어떤 동기와 지향으로 어디에 뿌리를 두고 하나가 되려고 하느냐 하는 것도 문제입니다.
오늘 복음을 통하여 행복으로 가는 일치의 원리를 찾아보았으면 합니다.
예수님의 첫 번째 제자들은 그분으로부터 직접 설교를 듣고서 그분의 사명을 이어받습니다.
예수님을 통해 세상에 들어온 말씀은 계속해서 활동합니다. 곧 제자들의 증언을 듣고 예수님을 믿는 이들이 계속 있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의 말을 듣고 당신을 믿는 이들을 위해 다음과 같이 기도하십니다.
“그들이 모두 하나가 되게 해 주십시오. 아버지, 아버지께서 제 안에 계시고 제가 아버지 안에 있듯이, 그들도 우리 안에 있게 해 주십시오.” (17,21)
하느님의 사랑 안에 머무는 이들에게 중요한 것은 한마음 한뜻이 되는 것입니다.
사랑의 본질적 특성의 하나가 바로 일치에 있습니다.
사랑안의 인격적 일치가 바로 제자 공동체의 조건이자 영적 토대입니다. 우리는 교회의 성장을 역할과 기능, 효율 등에서 찾는 착각에 빠지곤 합니다.
그러나 신앙 공동체에서는 합리성이나 정의가 우선이 아니라 사랑에 바탕을 둔 존재적 일치가 중요한 것이지요.
이 일치는 교계제도나 권위에 의해 강요될 수 없는 것으로서 모든 신자들에게 주어진 선물이자 영원한 목표인 셈입니다.
실제로 제자들은 세상 안에 있기에 하느님과 예수님 안에서 일치를 이루기가 쉽지 않습니다.
예수님께 속한 믿는 이들은 세상의 유혹과 도전을 늘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복음의 가치와 세상의 가치는 전적으로 다르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우리는 하나이며 분리되지 않은 하느님의 사랑만이 그리스도교 공동체가 존재할 수 있는 공간임을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17,23ㄴ).
공동체의 영적 토대인 하느님의 예수에 대한 사랑과 예수님의 제자들에 대한 사랑은 하나이며 같은 사랑입니다.
하느님의 사랑은 그리스도교인들의 마음속에 늘 근원적인 힘으로 작용합니다 (17,26).
우리 모두 신앙인답게 하느님의 사랑 안에 하나로 머물 때 새로운 창조의 지평이 열리며, 모든 관계 사이의 벽이 무너지고 생명이 흐르게 됨을 기억했으면 합니다.
하느님의 사랑 안에 하나됨이 바로 우리가 살아갈 힘이요, 우리가 가야 할 길입니다.
따라서 참 행복으로 가려면 ‘예수님’과 ‘하느님’을 일치의 원천으로 삼을 수밖에 없음을 명심해야 합니다.
오늘도 현세의 것들을 더 소유하기 위한 관계형성이나 인간의 인연에 집착한 만남, 이기적 목적을 추구하려는 담합을 하느님 안에서의 일치로 착각하지 않도록 깨어있는 하루이길 소망합니다.
기경호 프란치스코 신부 작은형제회(프란치스코회) 강론채널 주소 : story.kakao.com/ch/francesco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