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의 제자들은 벙어리 영이 들린 아이를 고쳐주는 것에 실패합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그러한 것은 기도가 아니면 다른 어떤 방법으로도 나가게 할 수 없다.”(19,29)고 하시면서 실패의 원인이 기도하지 않은 데 있음을 지적하십니다.
한편 마태오 복음은 실패 이유를 “믿음이 약한 탓”(17,20)이라고 전하는데 같은 맥락이라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기도가 아니고서는 다른 어떤 방법으로도 할 수 없다"고 하신 말씀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제자들이 벙어리 영이 들린 아이를 고치지 못한 까닭은 단지 기도 몇 시간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 아닙니다.
기도를 통해 고칠 수 있다는 것은 생명의 주인이신 하느님이 아니시면 고칠 수 없다는 뜻입니다.
다시 말해 하느님과의 깊이 일치를 이루지 않고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사랑의 만남인 기도는 하느님께 대한 믿음과 사랑이 없이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따라서 기도한다는 것은 사랑 안에서 생명의 주인이신 하느님을 내 안으로 모시는 것을 말합니다.
그럴 때 내 안에 오신 주님께서 나를 도구 삼아 사랑을 드러내고 병을 고쳐주시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벙어리 영에 들린 아들을 둔 아버지에게 “‘하실 수 있으면’이 무슨 말이냐? 믿는 이에게는 모든 것이 가능하다.”(9,23) 하고 말씀하십니다.
그러자 그 아이 아버지가 곧바로, “저는 믿습니다. 믿음이 없는 저를 도와주십시오" 하고 외칩니다(9,24).
이처럼 믿음에 기초한 예수님과의 대화가 바로 기도입니다.
병을 고쳐주시며, 온갖 불의를 물리치시고 해방으로 이끄시는 주님께 대한 확고한 믿음과, 자신의 믿음의 부족함을 겸손되이 고백하며 도와달라는 간절한 청원, 그리고 온 존재를 고스란히 맡겨드리는 의탁, 이것이야말로 우리가 하느님께 드리는 기도의 올바른 자세라고 할 것입니다.
오늘 복음의 아이 아버지의 대답은 이미 간절한 기도였고, 그 기도는 이미 하늘에 다다랐으며, 구름을 꿰뚫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저는 믿습니다. 믿음이 없는 저를 도와주십시오.”(9,24)라는 아이 아버지의 간절한 기도를 진실한 신앙고백으로 기쁘게 받아들이시어 그 아들을 고쳐주십니다.
믿음은 사랑을 부르고, 그 사랑으로 아이의 병이 나은 것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믿음도 사랑도 부족했기에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벙어리 영이 들린 아이를 고치지 못한 까닭은 믿음이 약한 탓이고, 기도하지 않은 탓이었습니다.
오늘 다시 우리의 믿음과 사랑을 재확인해보았으면 합니다.
나는 과연 무슨 일을 할 때나 누군가를 만날 때, 특히 고통과 시련, 사회적 불평등과 불의 앞에서 하느님께 대한 강한 믿음으로 끝까지 견디어본 적이 있는지 돌아봅니다.
예수님의 제자로서 자유와 해방, 몸과 마음의 치유을 바란다면 그만큼 더 강한 믿음과 사랑을 지녀야 할 것입니다.
기경호 프란치스코 신부 작은형제회(프란치스코회) 강론채널 주소 : story.kakao.com/ch/francesco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