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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경호(프란치스코) OFM

~ 성령 강림 대축일 / 기경호 신부님 ~



예수성심께 바치는 자비의 기도에 관하여 


다해 성령강림 대축일 요한 20,19-23 (16.5.15)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처럼 나도 너희를 보낸다. 성령을 받아라.”(요한 20,21-22)



Appearance to the Disciples








함께하려는 간절한 마음으로




오늘 복음에서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숨을 내 쉬시며”(22절) 성령을 주십니다.


성령의 파견으로 교회는 생명력 있는 교회로 등장하고, 온갖 역경 속에서도

구원의 복음을 생명의 말씀으로 전할 수 있었습니다

(사도 2,14 이하).


성령은 교회를 사랑의 공동체가 되게 하고 거룩하게 합니다.

성령강림 대축일을 맞으며, 우리도 초대교회 신자들처럼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의 의미, 그분 안에서의 참된 인생의 의미를

 모른 채 살고 있지는 않은지 성찰해볼 필요가 있을 것입니다.


 성령의 인도하심 안에서 살아간다는 것은

예수님의 얼, 곧 혼을 지니고 살아가는 삶을 말합니다.


 그렇다면 예수께서 직접 몸으로 보여주시고 가르쳐주셨던

그분의 얼은 무엇인가?


 그것은 사랑 외에 다른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전 생애가 참을 수 없는 사랑의 몸짓이었습니다.


탄생이 그러했고, 갈릴래아 선교 활동 중에 행하셨던 병자들의 치유,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에 대한 지극한 관심,

죄인들과 함께 식사하심,

라자로의 죽음으로 슬퍼하는 마르타와 마리아와 함께 머무심 등등

 모두가 사랑이었습니다.


사랑 때문에 걸으셨고, 사랑을 몸으로 가르치셨으며

사랑에 애타는 마음으로 사람들에게 다가가셨습니다.

예수께서는 결국 사랑 때문에 당신의 친구들인

우리 죄인들을 위하여 십자가상에서 죽음을 맞으셨습니다.


하느님의 죽음,

그것은 사랑 외에 달리 설명될 수가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부활하신 다음 곧 유다인들이 두려워

문을 닫아걸고 숨어있던 제자들에게 나타나시어

 “너희에게 평화!”(요한 20,19. 20. 26절) 하고 말씀하시며

그들에게 숨을 불어넣으셨습니다

(20,22).


그분의 얼인 ‘사랑’을 주신 것입니다.

그 사랑은 우리가 찾아나서기도 전에 먼저

우리 가운데 머무시기를 원하는 하느님의 마음이요,

 그분 자신이 비천한 우리를 찾아오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사랑은 벗을 위하여 생명을 건네주고 싶어

못 견디는 그런 사랑입니다.


함께 있고 싶어하고(마태 1,23; 28,20),

사막의 모래알이 물을 그리워하듯

그토록 타는 목마름의 사랑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이런 간절한 사랑, 애절히 저려오는 그리움으로

 인간이 되시어 우리를 찾아오신 것입니다.


그러한 사랑을 우리와 똑같은 인간의 모습을 지닌

예수님을 통해 거저주신 것이지요.


 이렇게 우리는 이제 그분의 성령을 가득히 받음으로써

 그분의 사랑 안에 머물게 되었습니다.


예수께서는 이 세상을 떠나가셨음에도 당신의 협조자 성령을 보내시어

영원히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성령강림은 구체적인 사랑을 살도록 우리를 부르는

 거절할 수 없는 주님의 초대장입니다.


주님의 얼에 잠겨 살라는 말씀이며,

 제정신으로 살아가라는 권고인 셈입니다.


 우리는 주님의 영을 호흡하고 그 안에 숨쉼으로써

온갖 형태의 소외와 갈등, 차별과 불평등,

빈곤과 고통을 사랑으로 끌어안고

모두의 행복을 위해 함께하는 사랑의 사람,

영의 사람이 되어야겠습니다.

주님은 가장 가까이 계시면서 우리에게 사랑을 주시고,

우리의 사랑을 받기를 기다리심을 기억했으면 합니다.


예수님의 우리를 향한 마음, 성령을 보내심으로써

 우리와 함께하고자 하는 애절한 하느님의 마음을 읽도록 힘써야겠습니다.


우리를 그리워하며 함께 있고 싶어하는 하느님께로

우리의 얼굴을 돌리는 것만이 제정신을 갖고 살아가는

 나다운 길일 것입니다.





기경호 프란치스코 신부 작은형제회(프란치스코회)



                                                     ♬ 아침 노래 - 김정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