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8주 월 마르 10,17-27(16.5.23)
“가진 것을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주고 나를 따라라.”(마르 10,21)
Jesus and the Rich Young Man
♣ 행복으로 이끄는 가난과 의탁 ♣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을 향해 가고 있을 때 어떤 부자가 예수님께 최대의 존경심을 드러내면서 “영원한 생명을 받으려면 무엇을 해야 합니까?”(10,17)라고 묻습니다. 그 부자는 하느님 나라(마르 9,43-47 참조) 곧 종말 구원을 원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에게 모든 사람이 지켜야 할 하느님의 계명 외에 다른 조건을 내세웁니다 (10,19-21). 곧 예수님을 추종하려면 먼저 재산을 포기하고 가난한 자들에게 아낌없이 나눠주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 부자에게 하느님의 뜻을 열어주는 아주 새로운 것이었습니다. 곧 소유의 포기가 예수님을 추종하기 위한 조건으로 제시된 것입니다. 예수님의 제자가 된다는 것은 계명을 실천하는 것(행위)만으로는 부족하며, 가진 것을 다 팔아(무소유의 상태) 가난한 이들에게 나누어준 다음에야 가능한 것이지요. 지상의 소유에 위안을 기대하지 않고 오로지 십자가를 향해 나아가는 예수 자신과의 인격적인 유대를 맺어야만 합니다 (8,34-38 참조). 그런데 그 부자는 예수를 추종하느냐 아니면 재물을 소유하느냐의 갈등 속에서 결국 추종을 거부하고 재물을 택했습니다 (10,22). 삶의 기반, 자신을 지지해주는 기반을 하느님께 두지 않은 것입니다.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고야 맙니다. 그의 선택은 명백한 방향착오였슺니다. 그는 존재가 아닌 소유를 선택함으로써 결국 예수님을 떠나게 되고 이는 하느님과의 단절을 초래하고야 만 것입니다. 우리도 종종 이런 방향착오를 하는 것은 아닐까요? 얼마나 어려운가를 거듭 강조하십니다 (10,23-24). 그분께서는 재물 속에 구원을 가로막는 위험이 도사리고 있음을 재확인시켜 주십니다. 그런데 부자가 구원받기는 낙타가 바늘귀로 빠져나가는 것보다도 더 불가능하다고까지 하십니다. 물론 재물 말고도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데 걸림돌이 되는 것들은 많지요. 그런가 하면 어떻게 존재하느냐에 삶의 이유를 두기에 사랑하고 나누며 사는 이들도 있습니다. 나는 어디를 향해 가고 있을까요? 오늘 복음에서 잘 알 수 있듯이 영원 생명, 곧 행복에 이르려면 무엇을 행하는 것만으로 충분하지 않습니다. 그보다는 하느님 앞에 어떻게 존재하느냐가 더 중요합니다. 영원한 생명, 구원, 행복은 무엇을 행하여 얻는 것으로 성취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하느님 앞에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무엇을 하기에 앞서 어떻게 있을지를 먼저 생각하는 것이야말로 행복의 열쇠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가진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줌으로써’ 하느님께 절대적으로 의존하는 가난한 마음이 행복을 부를 것입니다. 언제 어디서나 하느님께 의탁하며, 가진 것을 나누는 사랑과 친교임을 기억했으면 합니다. 내가 소유하고자 애쓰는 것들이 결국은 나를 넘어뜨려 영혼을 가르고 어둠에 빠뜨려 불행하게 함을 상기하며 사랑으로 하느님 앞에 존재하는 우리이길 기도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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