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고르쿤의 순교자들 (Martyrs of Gorkum)
작가 : 체사레 프라카시니 (Cessare Fracassini :1838- 1888)
소재지 : 바티칸 미술관
1517년 10월 31일 독일 아우구스티노 수도회 신부였던 마르틴 루터 는 자기가 몸담고 있는 가톨릭교회가
더 없이 부패한 것에 통분하며 교회의 개혁을 위해 비텐베르크 성당에 95개의 반박문을 계시하면서 종교개혁을 일으켰는데,
그 뒤를 이어 프랑스의 쟌 칼뱅과 스위스의 츠빙글리가 합세하면서 유럽 역사를 바꾼 거대한 사건을 만들었다.
내년은 루터의 종교개혁 500주년 기념의 해이기에 뜻있는 개신교 신자들은 가톨릭의 부패했던 모습을 상기시키기보다
자기들의 현실을 점검하는 겸허한 시간을 준비하고 있다.
지난10월 12일 프란치스코 교종께서는 로마를 순례 온 루터교 순례단을 특별히 접견하고 환영의 뜻을 표했으며
지난 50년 동안 가톨릭과 루터교 사이에 계속 이어져온 일치 운동에 대해 대단한 의미성을 부여하시며 오는 10월 31일
종교개혁 기념일에 스웨덴에서 열리는 종교개혁 기념행사에 참석하셔서 형제적인 우정을 표시하시겠다는 약속도 하셨다.
오늘 깨어있는 개신교 신자나 가톨릭 신자나 할 것 없이 이 사건을 상호비방이나 변명 방어가 아닌
복음적 차원으로 접근함으로서 일치를 겨냥한 종교의 향기를 풍기고 있다.
그런데 종교개혁을 이야기하면 주원인 제공인 가톨릭의 부패와 함께 교황과 종교재판으로 이어지는 가톨릭교회의
종교박해를 이야기하는 것이 보통이나, 종교개혁의 실상은 이것 보다 훨씬 더 개신교에도 같은 잘못이 반복되었던 것이다.
결과적으로 가톨릭 개신교 모두가 가해자와 피해자의 역할을 반복함으로서 상호성찰의 원인 제공을 하였음을
깨닫기 시작했다.
이 작품은 네델란드에서 개신교가 가톨릭 수도자들과 평신자들을 박해했던 역사의 기록이다.
1572년 가톨릭 지역이었던 고쿤지역이 칼뱅교도 들에게 점령당하면서 19명의 가톨릭 신자들이 순교하게 된다.
여기에는 7명의 프란치스칸들과 몇 명의 교구 사제들 도미니꼬회 회원들 아우구스티노회 수녀를 포함해서 19명인데,
이들은 개신교도들이 믿는 신조와 다른 것을 믿는 다는 이유 하나로 체포 투옥되었다.
종교가 편협해지면 얼마나 좁고 광신에 빠질 수 있는 지를 보여주는 좋은 예이다.
이들은 개신교도들로부터 성사와 교황의 수위권에 대한 교리를 부정하라는 강압을 받았으나,
이것을 거부함으로서 교수형을 당하게 되었다.
아무런 잘못도 없는데, 원수까지 사랑하라는 예수의 가르침을 따르는 크리스천들이 자기들과 다르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죽일만한 증오의 대상이 된다.
로마에서 태어난 작가는 일생을 신화와 종교를 주제로 한 많은 작품들을 작품을 많이 남겼다.
19명은 모진 고문과 회유 협박을 당했으나 한 치의 미동도 없이 꿋꿋하고 떳떳하게 교수대에 매달려
주님께 마지막 영광을 드렸다.
프란치스칸 한 명이 먼저 교수대에 달린 다른 순교자들처럼 그에게 올가미를 걸고자 하는 형리의 손을 바라보고 있다.
자기에게 닥칠 최고의 위협인 교수대에 목이 걸릴 상상의 순간에도 그는 너무도 의연하다.
그에게 일말의 불안도 없기에 그는 당당히 자기 못에 올가미를 씌울 형리를 바라보고 있다.
그는 수도생활을 통해 순교란 하느님의 사랑을 증거 할 수 있는 최고의 결단이란 것을 알았기에 기다리던 것이 온 것처럼
의연하면서도 흔쾌히 받아들이고 있다.
수도생활의 이상은 하느님을 극단으로 선택하는 것이었다, 초세기 교회가 박해를 받을 때 수도생활은 없었다.
그러나 교회가 종교 자유를 얻어 박해받는 처지에서 기득권자가 되자, 신앙의 이완 현상이 일어나면서
여기에 대한 반발로 수도생활이 생겼다.
그러기에 수도자는 순교의 이상을 목숨을 바침으로서가 아니라, 삶으로 증거하는 것임을 알며 살아왔기에
개신교도들이 배교의 도구로 준비한 교수형 따위는 어떤 두려움의 대상이 될 수 없었기에 당당한 모습이다.
이 프란치스칸에 있어 형리들이 공포의 도구로 연출하는 교수대에 달린 여러 수도자들과 너도 배교치 않으면
저런 끔찍한 상태가 된다는 위협은 전혀 다른 의미를 지니게 된다.
프란치스칸 수도자에 있어 이 공포의 장면은 천국 입성의 시작이며
그토록 믿고 기다리던 하느님을 만나는 것이란 신념이 정착되었기에 가해자들이 원하던 고통에 패배한 자의
불안하고 당황해하는 모습과 거리가 먼 승리를 기다리는 장한 모습이다.
교회는 1887년 이들을 시성했고, 이들이 순교의 중요 동기가 교황의 수위권을 인정하는 것이었기에 성청은
이 작품을 바티칸 미술관에 보관하고 있다.
삼 천 년대를 시작하면서 요한 바오로 2세 교종은 온 세계를 향해 이천년 교회 역사에서 저지른 과오들,
십자군 전쟁, 가톨릭 교리와 다른 것을 믿는 크리스천들을 이단으로 단죄한 것에 대해 공개 사과를 하셨다.
이것은 이천년 교회 역사에서 가톨릭교회가 저지른 큰 잘못임에는 틀림이 없으나
개신교 역시 이 작품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가톨릭교회와 다름없는 잘못을 저질렀다.
마르틴 루터는 가톨릭교회의 부패에 반기를 들었으나, 그는 자기주장을 관철하기 위해 백성들의 협조를 얻기 위해
농민들을 끌어들였다가 그들의 반란이 제후들의 미움을 받게 되는 것을 보자,
제후들의 편을 들었으므로 농민들에게 끔직한 실망과 상처를 주었다.
칼뱅은 점령한 스위스의 쥬네브 시에 신정정치라는 종교재판으로 시민들을 공포에 빠트렸으며,
자기 신조와 다른 사람들을 무자비하게 고문하고 살해했다.
유일신을 믿는 종교는 유대교 그리스도교 이슬람인데, 이들의 공통적인 특징은
자기들이 믿는 것과 다른 것을 용납하지 못하는 편협한 증오심이다.
예수님이 바로 유대교로부터 살해된 것으로부터 이 역사는 시작되면서 가톨릭과 이슬람, 가톨릭과 동방교회,
개신교는 가톨릭과 동방 교회 뿐 아니라 자기끼리도 서로 다른 신조를 용납하지 못하는 편협한 증오심을 보이고 있다.
유일신을 믿는 크리스천들은 자기들의 신앙고백 안에서 자기와 다른 신조를 믿는 사람들에 대한
상호존중과 관용의 태도를 배우는 것이 뭣보다 중요한 것이며 인격적 표현의 중요성의 가치를 익힌
현대인들에게 크리스천의 매력으로 다가올 것이다.
이 면에서 근래 우리 교회는 자랑스러운 많은 전통이 비록 지도층 수준에서 이루어지는
행사적 차원과 같은 아쉬움이 있으나, 종교인 연합이나 크리스천들 안에서 교회 일치 운동에
복음적 관용성을 보이고 있는 것은 참으로 자랑스럽고 다행한 일이다.
특히 우리 사회 일각에 아직도 호전적이며 폐쇄적인 크리스천 집단이 존재하는 곳에서 더 없이 예언적 역할을 하고 있다.
루터 종교 개혁 500주년을 맞은 시점에 뜻있는 개신교도들은 오늘 자기들의 처지가 마르틴 루터가 반기를 들게 된
부패했던 가톨릭교회의 추한 모습을 보이고 있지 않는지 반성과 자성의 모습을 보이는 것 역시 아름다운 모습이다.
종교 개혁의 진원지였던 독일에서 가톨릭과 루터교의 관계는 서로의 잘못을 인정하고 상호존중과 이해를 보이고 있다.
매년 10월 31일 종교 개혁 기념일이면 루터가 가톨릭교회의 부패에 반발해서 95개의 조항을 제시했던
비텐베르크 교회에선 뜻있는 가톨릭 신자들과 개신교도들이 모여 기도모임을 열고 있다.
기도모임이 끝나고 헤어지면서 그들은 서로의 손을 잡고 다음과 같은 격려의 인사를 나눈다.
“여러분은 세상의 빛이 되십시오.”
이 인사를 받은 사람은 “여러분은 세상의 소금이 되십시오.” 라는 격려의 말로 다음 해의 만남을 약속하며 헤어진다.
- 이종한(요한)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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