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소서, 성령님.
주님의 빛, 그 빛살을 하늘에서 내려소서.
오소서, 가난한 이들의 아버지.
오소서, 은총 주님.
오소서, 마음의 빛, 가장 좋은 위로자
영혼의 기쁜 손님, 저희 생기 돋우소서.
일할 때에 휴식을, 무더위에 시원함을
슬플 때에 위로를.
영원하신 행복의 빛
저희 마음 깊은 곳을 가득히 채우소서.
주님 도움 없으시면
저희 삶의 그 모든 것, 해로운 것뿐이리라.
허물은 씻어주고, 메마른 땅 물 주시고
병든 것을 고치소서.
굳은 마음 풀어주고, 차디찬 맘 데우시고
빗나간 길 바루소서.
성령님을 굳게 믿고 의지하는 이들에게
성령 칠은 베푸소서.
덕행 공로 쌓게 하고 구원의 문 활짝 열어
영원 복락 주옵소서.
사실 성령 송가를 묵상하는 것은
우리 시대의 위기와 많은 개인적 위기에 대한 적절한 답이 아닌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과거에 그리스도인들은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를 때면 늘 성령송가나 성령 찬미가를 불렀다.
그리스도인들이 외적,
내적 상황으로 어려움을 겪을 때나
위기에서 빠져나갈 출구를 찾지 못할 때
성령 송가는 도움이 되었다.
성령 송가나 성령 찬미가를 묵상하는 것이
위기에 대처하는 구체적 행동 지침은 아닐지라도
초대교회
그리스도인들은
이를 묵상하는 가운데
삶의 도전에 맞서기 위한 도움과 용기를 체험했다.
성령 송가 '오소서,
성령님'은 1200년경 스테판 랭턴이 지었다.
그는 1150년
영국 귀족 가문에서 태어나
오랫동안 파리에서 신학교수로 일하다
1207년 캔터베리 대주교가 되었고 1228년에 세상을 떠났다.
이 기도에 가락을 붙여
노래하기 시작한 것도 1200년이었으며
후기 그레고리오 성가에서 가장 유명한 가락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
이제 안셀름 그륀은
알프레드 델프(Alfred Delp)가 1944년 베를린 테겔 감옥에서
이 아름다운
기도문을 묵상하면서
정리했던 사상을 깊이 음미하고
그의 해석을 우리 시대에 알맞게 소개한다.
알프레드 델프는
1944년 7월 29일 아침,
미사 봉헌 후 곧바로 뮌헨의 보겐하우스에서 체포되었다.
그는 자신이 속해 있던
수도원의 동의를 얻어 저항조직 크라이자우어에 가입했는데
히틀러 암살기도 명단에
그의 이름도 있었던 것이다.
알프레드 델프는
처음엔 뮌헨의 비밀경찰청에
구금되어있다 9월 7일 베를린으로 압송되었다.
거기서 감옥생활을 하다 베를린 테겔로,
마지막으로 플뢰텐제로 이송되어 1945년 2월 2일 처형되었다.
정치범인 그는
감옥에서 특별히 더 어려운 생활을 했다.
밤낮으로
수갑을 차고 있어야 했던 그는
묶인 손으로 간수를 통해 외부에서
얻은 작은 종이에 친구에게 보내는 편지를 쓰고
교회 축일에 대한 영적 묵상을 기록했는데
그 결과 대림절, 성탄절, 공현축일에 대한 글이 보존되었다.
그가 성령강림 대축일을
감옥에서 맞이하지 않았는데도
성령 송가에 대한 묵상을 기록한 이유는
그가 마지막으로 살았던
보겐하우젠의 작은 공동체에서 애송하던 기도였기 때문이고,
다른 한편 감옥에서
매우 힘든 주간에 끊임없는
불확실 상태에서 힘을 얻기 위해서였다.
이 묵상은
알프레드 델프가
구금되고 단죄를 받는
실존적 위기상황에서
용기를 잃지 않는 원천이 되었다.
그는 히틀러 이후
독일에 축복을 가져다 줄
새로운 정치질서를 구축하려 애썼다.
이 때문에
그는 나치에게
처형될 것을 예상해야 했다.
그는 한 민족 전체를
열광의 도가니에 몰아넣고
온 세상을 저주하는 자기 시대의 악령을 느꼈다.
이런 상황에서
그는 성령께 모든 희망을 두었다.
성령은 악령을 쫓아내시고,
거룩하고 치유하는 영으로 세상을 가득 채우실 수 있다.
따라서 성령 송가에 대한
그의 묵상은 우리 시대에도 시사하는 점이 많다.
감옥에 갇힌 그는
늘 희망과 절망 사이에서
흔들렸지만 성령 송가 묵상은 희망을 더욱 북돋아 주었다.
그는 묵상을 통해
비인간적 세계에서 다른 세계를 향해
나아갈 수 있었다.
그것은 감옥에서
환상의 세계로 피신하는 도피가 아니라
감옥과 비인간적이고 부당한 심문의 세계를
견뎌내기 위해 성령의 세계에 깊이 잠기는 것이었다.
<위기는 선물이다 --안셀름 그륀> 중의 내용입니다.
오소서, 성령님
성령께 드리는 참된 간청은
우리 가운데 오십사 청하는 것이다.
우리는 하느님의
영이 언제나 우리 안에 계시다고 믿는다.
그러나 우리가 그분곁에
머물지 않기에 성령께서 오셔서
우리가 그분의 오심을 체험하게 해 달라고 기도해야 한다.
성령은 늘 움직이신다.
성령은 이미 우리 안에
계시지만 언제나 더 가까이 오시어 당신 사랑으로,
변화시키고 재촉하시는 당신 권능으로 우리를 완전히 사로잡기를 바라신다.
라틴어 '스피리투스spiritus'는
영뿐 아니라 바람과 숨결을 의미하기에
'오소서veni' 라는 단어가 성령과 더 잘 어울린다.
바람이신 성령께서는
늘 움직이시고 언제나 오시는 분,
살랑거리며 부는 바람과 같으신 분이다.
성령의 오심을 기도하는 것은
우리 자신도 언제나 움직이게 해 달라는 간청이기도 하다.
곧 우리가 신심에
갇혀 경직되는 것이 아니라
치유하고 해방하시는 하느님의 업적을
이 세상에서 생생하게
증언할 수 있기 해 달라고 간청하는 것과 같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막막한 상황에서 성령께서 오시어
당신 권능으로 우리를 충만하게
해 달라고 기도하는 것보다 좋은 것이 어디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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