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성 프란치스꼬 (1660년)
작가 : 프란체스코 데 수르바란( Francisco de Zurbaran : 1598-1664)
크기 캔버스 유채 : 65X 33cm
소재지 : 독일 뮌헨 고대 미술관 (Alte Pinakotek))
수행으로 다듬어진 성인
모든 예술 표현이 다 그렇듯 성화에 있어서도 그 시대성과 관람자의 취향이 큰 영향을 미치게 됨을 볼 수 있다. 마치 수도생활에 있어서 핵심인 가난의 강조가 시대에 따라 이완되었다가 다시 쇄신되는 것처럼 성미술에 있어서도 같은 영향이 드러나게 된다.
16세기부터 스페인 화풍은 유럽에서 두각을 드러내게 된다. 스페인이 네덜란드를 지배하면서 그곳의 화풍이 접목되어 스페인 화풍은 르네상스를 선도하던 이태리를 앞질러 유럽의 선두 주자가 되었다.
독일에서 일어난 종교개혁의 반대 세력으로 교회 쇄신과 개신교 세력의 차단을 목표로 등장한 반종교개혁 정신과 실천이 가장 강했던 곳이 바로 스페인이었기에, 부패로 추락된 교회의 위상을 회복할 수 있는 성인으로 사도 안드레아와 성 프란치스코가 등장하게 되었으며, 특히 성 프란치스코는 서민적이면서도 “제 2의 그리스도”라 불릴 만큼 투철한 복음을 사셨던 아름다운 생애 때문에 많은 작가들의 작품 소재가 되었다.
작가는 세빌리아(Seviglia) 출신으로 필립 4세의 총애를 받는 궁정화가였기에 화려한 인생을 살면서도 주로 성인들이나 고행자를 소재로 한 인물화를 많이 그리면서 여기에서 나름대로의 자신의 신앙과 염원을 작품을 통해 표현하고자 했다.(성화해설 5번 참조)
그런데 어느 시대나 다 그렇듯 이 시대 성화 역시 수도생활의 이완 현상의 모습처럼 영적인 활력이나 감동을 주는 성인 보다는 누구나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는 관상용 수준의 예쁘장한 모습의 성인이 많이 그려지게 되었다.
성인의 영웅적인 삶이나 희생의 내용은 이야기의 주제로서는 괜찮지만 이것을 실천으로 옮긴다는 것은 너무 부담스럽기에, 부담스럽지 않은 성인 상에 대한 세속적 갈망이 자라면서 여기에 대한 기대 부응의 차원에서 화가들도 사람들에게 인기를 끌 수 있는 성인상을 그리기 시작했다.
작가는 이런 면에서 시대적인 취향을 거슬러 작품을 제작한 신념있는 작가였다. 프란치스코를 골치 아픈 세상사를 초월한 천하태평형의 모델로 제시하면서 그의 낙천적 삶의 일방적 강조가 수행자로서의 그의 모습을 가리는 것에 안타까움을 느낀 작가는 이 작품에서 수행자로서의 모습을 강조하고자 했다.
그는 일생 동안 성 프란치스코에 대해 15개의 작품을 남길 만큼 성인을 사랑하고 심취했는데 다른 작가들이 흔히 그린 보기 좋은 성인 보다는 생전의 성인처럼 사람들에게 복음적 감동을 줄 수 있는 성인상을 부각시키고자 했다. 이 작품은 이런 면에서 너무나 단순하면서도 생전의 성인의 모습을 읽게 만들고 있다.
작가는 또한 반종교개혁을 위해 철저한 자기 개혁의 의지 표명과 함께 프로테스탄트 교도들이 공격한 가톨릭 교리에 대해 하나하나 분명히 규명하는 것을 목표로 개최된 트렌트 ( Trient :1545- 1563)공의회에 결정대로 모든 예술 작품을 신앙쇄신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결정하여 신비주의와 극기의 정신을 반영코자 했다.
성인은 밝은 채광에 의해 색이 분명히 드러나는 갈색의 수도복을 입고 있다. 갈색의 수도복은 프란치스칸의 상징이지만 다른 작품에서는 암갈색으로 표현된 것이 많아 특징이 드러나지 않았는데, 여기에선 갈색이 분명이 드러나는 것은 프란치스코야 말로 삶 자체로 복음을 산 “살아 있는 복음”임을 강조하기 위한 작가의 의도이다.
“하느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실 때 흙으로 만드시어 거기에 숨을 불어넣어 주셨다.”(창세기 1, 28-29)는 말씀처럼 흙은 바로 인간의 실상이며 이것은 무(無)와도 같다.
흙으로 빚어진 인간은 어떤 때 자신의 능력에 우쭐댈 수도 있고 하느님이 주신 능력을 마치 자기 것인 양 착각해서 과시하고픈 유혹을 받을 수 있으나 영적인 삶을 사는 사람은 인간의 실상은 흙덩이에 하느님의 영이 깃들인 것임을 알기에 항상 자기 안에 있는 하느님 영의 목소리를 듣고 살아야 한다는 뜻이다.
작가는 성 프란치스코야 말로 인간이 무엇임을 너무도 정확히 자기 삶으로 알린 성인임을 표시하기 위해 흙의 색인 갈색 수도복을 선명히 강조했다. 성인의 거친 질감의 수도복에는 십자가나 어떤 종교적인 표시도 없는데 이것은 “그리스도 외에는” 다른 어떤 것에도 관심이 없었던 그분의 순수한 열정의 삶을 사셨던 단순성을 제시하고 있다.
성인은 오른손을 자기 가슴에 두고 있는데 이것은 하느님을 모시는 그릇으로서의 인간 마음의 중요성을 제시하는 것이다. 성서에서 마음은 인간의 내면을 담는 그릇이다.
성서적 인간관에 의하면, 마음은 의식과 지성과 자유를 구비한 인격의 원천임과 동시에 인간이 결단을 내리는 곳, 즉 양심의 법이 기록된 곳 이며 하느님께서 신비로이 작용하시는 곳이다.
“그들의 양심이 증언하고 그들의 엇갈리는 생각들이 서로 고발하기도 하고 변호하기도 하면서 그들은 율법에서 요구하는 행위가 자기들의 마음에 쓰여 있음을 보여 줍니다.”(로마서 2, 15)
그러기에 하느님께서는 당신이 사랑하시는 백성인 인간들에게 “마음을 다해 그분을 찾을 것”을 강조하셨다. “ 너 이스라엘아 들어라. 우리 주 하느님은 한 분 뿐이시다. 마음을 다 기울이고 정성을 다 바치고 , 힘을 다 쏟아 너의 주 하느님을 사랑하여라.”(신명기 6, 4)
그러나 원죄로 상처받은 인간의 마음자리는 “부서지고 꺾인 마음”(시편 51, 19)이기에, 하느님께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깨끗한 마음이 되도록” (시편 51, 12) 끊임없이 자신을 정화해야 하며 이것이 바로 성 프란치스코 가르침의 핵심인 회개의 주제가 된다.
작가는 성인이 오른손으로 자기 가슴을 가리키는 자세에서 관객들로 하여금 예수의 마음으로 돌아가도록 초대하고 있다. 예수께서는 마음이 깨끗한 사람은 하느님을 뵙게 되리라고 약속하셨는데,(마태오 9, 2) 여기에서 깨끗한 마음이란 주님 자비에 의해 죄를 용서받은 사람의 마음을 말한다.
이것은 또한 성인이 회심하신 후 동굴에서 자주 바치셨던 성 다미아노 십자가 앞에서 바치시는 성인의 기도를 상기 시킨다.
“지극히 높으시고 영광스러운 하느님이시여
내 마음의 어두움을 밝혀 주소서.
주여, 당신의 거룩하고 진실한 뜻을 실행하도록
올바른 신앙과 확고한 희망과 완전한 사랑을 주시며,
지각과 인식을 주소서 . 아멘 ”
성인은 왼손을 해골위에 두고 계시는데, 해골은 작가가 성인을 그린 다른 작품에서도 많이 등장하고 있는 주제이다. 유명한 “묵상하시는 프란치스코”라는 작품에서도 해골을 응시하며 무릎을 꿇고 계신 성인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해골은 전통적으로 인생의 실상을 추구하는 묵상의 주제였다. 흙과 같은 보잘 것 없는 자신은 아직도 죄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한 죄인임을 통감하신 성인은 하느님의 사랑과 자비만이 자기를 구원할 수 있다는 극단의 겸손을 표현하셨다.
죄는 죽음의 상징이나 그리스도 죽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사람들이 죽음의 실패를 내딛고 승리해서 다시 부활한 생명을 되찾을 것임을 성인은 굳게 믿었다.
작가는 여기에서 프란치스코 성인의 삶에서 볼 수 있는 극단의 고행과 극기는 세상의 눈으로 보면 죽음의 표현과 같지만 이것을 사도 바울로의 세례 신학과 접목시켜 생명의 신학을 창출한다. “이와 같이 여러분 자신도 죄에서는 죽었지만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하느님을 위해 살고 있다고 생각하십시오.”(로마서 6, 11)
작가는 이처럼 “주님 육화와 수난의 사랑이 그를 사로잡아 다른 것은 생각하고 싶지도 않았던”( 1 첼라노 84) 성인의 모습을 성 바울로의 세례 신학과 연결시켰다.
이처럼 해골은 전통적 의미의 죽음의 상징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죽음이 가져온 생명의 상징이 되기도 한데 이 작품에서의 해골은 바로 죽음으로 이어지는 부활한 생명을 표현하고 있다.
작가는 스페인의 카라바죠( 성화해설 41번, 42번 참조)라 불리듯 명암의 극적인 효과를 한껏 활용했는데, 이 작품에서 어두움이 감싼 배경에 빛이 천상을 관조하는 성인의 얼굴과, 가슴을 가리키는 손과 해골의 머리위에 떨어지면서 성 프란치스코는 그리스도의 죽음과 생명의 신비를 자기 삶으로 체험한 “새로운 그리스도”임을 감동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이 작품을 바라보노라면 성 프란치스코 유언의 다음 구절이 생각나면서 벅찬 생명의 환희와 성덕에의 갈망에 빠지게 된다.
“우리는 큰 것을 약속했고, 우리에게는 더 큰 것이 약속되어 있습니다. 고통은 짧고 영광은 영원합니다.”
출처: 작은형제회, 이종한 요한 신부의 성화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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