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김종오 신부님 말씀

~ 경청과 동반 / 양승국 신부님 ~



경청과 동반


저희 살레시오회 안에서 오랜 세월 전해져 내려오는 소중한 전통 하나가 있습니다. 매년 연초가 되면 총장 신부님께서는 전 세계 살레시오 가족들에게 세뱃돈 주시듯이, 한 해 동안 생활의 지표로 살아갈 덕담을 건네주시는 데, 이름하여 ‘스트렌나’(Strenna) 라고 합니다.

2018년도 생활지표에는 두 가지 핵심 주제어가 있는데, 바로 경청과 동반입니다. 오늘 이 시대 우리 모두에게 참으로 필요한 덕목이 아닐 수 없습니다.

암(癌)이라는 한자어의 구조를 유심히 살펴보다가, 왜 암에 쉽게 노출되는지를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암이라는 한자어 중심부에는 입 구(口)자가 세개가 있습니다. 바로 밑에는 산 산(山)자가 있습니다.

풀어보니 그렇군요. 입 세 개를 산에다가 파묻었습니다. 그리고 뚜껑까지 덮어버렸습니다. 하고 싶은 말을 마음에 담아놓고, 제때 제대로 말을 하지 못하니, 그리고 제대로 된 의사 소통의 부재로, 결국 경청을 통한 동반이 잘 이루어지지 않으니 암에 노출되는 것 같습니다.

경청과 동반 가만히 생각해보니, 하느님 자비의 또 다른 얼굴인 듯 합니다. 약자의 작은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주는 것, 그들의 지니고 있는 내면의 상처를 연민의 눈으로 바라보는 것, 그들의 깊은 슬픔에 공감해주는 것, 홀로 두지 말고 옆에서 나란히 함께 걸어주는 것, 바로 이 땅에 오신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경청과 동반의 모습이었습니다.

경청과 동반에 있어 돈보스코는 탁월한 귀재였습니다.

돈보스코는 수많은 일들과 만남 등 살인적인 하루 일정을 보내셨지만, 청소년들을 위해서는 언제나 마음의 문과 사무실 문을 활짝 열어놓고 계셨습니다. 때로 겪게 되는 그들의 무례한 행동 앞에서도 불편해하지 않으셨습니다. 자유롭게 질문하고 편안하게 자신을 표현하게 했습니다.

놀라운 사실 하나가 있습니다. 돈보스코는 아이들과 개별적으로 만날 때, 고위 관료나 저명한 사회 인사들을 대하는 것과 똑같은 존경심을 지녔습니다. 자신은 작은 의자에 않으면서 아이들에게 안락의자를 권했습니다. 그들이 말을 할 때면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내용인 듯, 최대한 주의를 집중했습니다.

이런 면에서 돈보스코는 참으로 시대를 앞서 살아가셨습니다. 아시는 바 처럼 돈보스코 시대 당시, 청소년들은 인간 취급도 못받았습니다. 굴뚝 청소의 도구처럼 활용되었고 때로 매매까지 되었습니다. 그런 아이들에게 돈보스코는 최선을 다해 환대했고, 그들의 하찮아보이는 말들을 경청했고, 따뜻하게 동반했습니다.

앞으로 아이들이 찾아오면 돈보스코처럼 극진히 환대해야겠습니다. 안에서 기다리고 있을 것이 아니라 밖에 나가서 기다리고 있어야겠습니다. 더없이 환한 얼굴로 예의바르게 인사해야겠습니다. 가장 좋은 자리를 권해야곘습니다. 자세를 바로 하고, 상대방과 눈을 맞추고, 고개를 끄덕이면서, 그의 마음을 읽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겠습니다.

경청한다는 것은 그저 듣기만 한다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경청은 상대방의 기쁨과 희망, 고통과 좌절에 대해 주의 깊은 관심을 기울이는 예술입니다. 듣는 데 그치지 않고 한 존재 전체에 대해 최대한의 예의를 갖추고 귀를 기울이는 노력입니다.

- 양승국 신부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