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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 성녀 축일 기념일등

+++ 리프니카의 성 시몬 사제 / 세니의 성 브르노 주교 기념일 +++





축일 7월18일
리프니카의 성 시몬 사제,Observants
San Simone da Lipnica Sacerdote
Lipnica, Polonia, 1435/1440 – Cracovia, Polonia, 18 luglio 1482
Saint Simon of Lipnicza
Also known as : Szymon of Lipnica
Born : c.1437 in Lipnica Murowana, Malopolskie, Poland
Died : 18 July 1482 in Kraków, Malopolskie, Poland during a plague epidemic
Beatified : 24 February 1685 (cultus confirmed) by Blessed Pope Innocent XI
re-confirmed on 20 December 2005 by Pope Benedict XVI
Canonized : 3 June 2007 by Pope Benedict XVI at Saint Peter's Basilica, Rome, Italy
Representation : Franciscan giving food to a poor man


Den hellige Simon av Lipnicza (~1440-1482)

 

폴란드의 크라쿠프(Krakow)에서 멀지 않는 리프닉차 출신인 시몬은 그 도시의 대학교에서 공부한 뒤,

1453년에 성 요한 카피스트라노의 설교에 감명을 받고 그의 첫 제자가 되었다.

그래서 시몬은 프란치스코 회원이 되어 그의 스승과 함께 설교하면서 활동하였다.

성 시몬은 프란치스코회 설교자들이 큰 활약을 하던 시기의 주요 인물이었다.

또한 그는 성 베르나르디노와 함께 ‘예수 성명’ 신심을 보급하는데 주력하였다.

크라쿠프에 페스트가 유행하여 큰 재난을 당할 때 그는 정열적으로 활동하다가 자신도 병에 걸려 운명하였다.

그는 1685년 교황 인노켄티우스 11세(Innocentius XI)에 의해 복자품에 올랐다.

(가톨릭홈에서)



성 시몬은 1435-1440년 사이에 폴란드 남부의 리프니카 무로바나(Lipnica Murowana)에서 태어났다. 그의 부모인 그레고리우스(Gregorius)와 안나(Anna)는 그리스도교 신앙의 가치를 반영한 좋은 교육을 어떻게 그에게 해줄 수 있는지 알고 있었다. 그들은 넉넉지 않은 가정 형편에도 불구하고 시몬을 안전하게 돌보고 적절한 교양을 쌓을 수 있도록 했다. 시몬은 신앙심 깊고 책임감 있는 본성을 갖고 성장했고, 타고난 성품의 풍요로움은 기도 생활과 하느님의 어머니에 대한 사랑으로 기울도록 했다.


그는 1454년 유명한 야기엘로니아(Jagiellonia) 대학에 다니기 위해 고향에서 멀지 않은 크라쿠프(Krakow)로 갔다. 바로 그 해에 카피스트라노(Capistrano)의 성 요한(Joannes, 10월 23일)이 크라쿠프에 와서 성덕과 열정적인 설교로 시민들을 감동시켰고, 젊은이들의 마음을 움직여 많은 이들을 작은 형제회의 성소자로 불러들였다. 1453년 9월 8일 카피스트라노의 성 요한은 3년 전에 시성된 시에나의 성 베르나르디누스(Bernardinus, 5월 20일)의 이름을 따서 크라쿠프에 첫 번째 엄률 수도원을 설립하였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 수도원에 사는 작은 형제회 수사들을 ‘베르나르디니’(Bernardini)라고 불렀다.



1457년 젊은 청년 시몬은 작은 형제회의 이상에 매혹되어 복음서에서 언급된 가장 값진 진주를 얻기 위해 성공과 부유한 미래의 가능성을 뒤로하고 수도생활을 선택하였다. 그는 다른 10명의 동료 학생들과 함께 크라쿠프의 스타라돔(Stradom) 지구에 있는 성 베르나르디누스 수도원에 입회를 청했다. 가르침과 성덕에 있어서 높은 명성을 지닌 바레세(Varese)의 크리스토포루스(Christophorus) 수련장 수사의 현명한 지도하에 시몬은 작은 형제회의 겸손하고 가난한 삶을 기꺼이 받아들였다. 그리고 1460년경에 사제로 서품되었다.


시몬 수사신부는 폴란드 남동부 타르누프(Tarnuw)에서 첫 번째 사도직을 수행하였다. 그 후 그는 크라쿠프의 스트라돔 지구에서 명백한 말씀으로 설교하고 충만한 열정과 신앙과 지혜를 가지고 끊임없이 자신을 헌신하여 확실히 자리를 잡았다. 이 모든 것은 하느님과의 깊은 일치와 성경에 대한 오랜 연구를 통해 가능했다. 시에나의 성 베르나르디누스와 카피스트라노의 성 요한과 같이 시몬 형제는 ‘예수 성명’(Holy Name) 신심을 전파하는데 주력하여 셀 수 없이 많은 죄인들의 회개를 가져왔다. 그는 1463년에 작은 형제회에서는 처음으로 바벨(Wawel) 주교좌성당에서 설교할 수 있는 직분을 받았다. 복음을 설교하는 그의 헌신적인 노력으로 인해 옛 자료들은 그에게 ‘가장 열렬한 설교자’(praedicator ferventissimus)라는 칭호를 부여하였다.


시몬 형제는 자신의 설교에 영감을 주었던 시에나의 성 베르나르디누스를 존경하는 열망으로 몇몇 폴란드 동료들과 함께 1472년 5월 17일 성인의 이름으로 설립된 새 성당에 성인의 유해를 장엄하게 이장하는 행렬에 참가하기 위해 이탈리아의 아퀼라(Aquila)를 방문했다. 그리고 1478년에 파비아(Pavia)에서 열린 총회에 참석하기 위해 다시 이탈리아를 찾았다. 회의를 마친 다음 그는 로마(Roma)로 가서 사도들의 무덤을 방문함으로써 자신의 가장 깊은 열망을 만족시킬 수 있었고, 이어서 예루살렘 성지로 자신의 순례를 연장하였다. 시몬 형제는 만약 하느님께서 기뻐하신다면 영혼 구원을 위해 자신의 피를 흘리고 싶다는 열망을 간직한 채 참회의 정신과 그리스도의 수난에 대한 진정한 사랑으로 순례에 나섰다. 그는 성지에 대한 사랑에 있어서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Franciscus, 10월 4일)를 본받고자 했다.


하느님의 백성에 대한 시몬 형제의 사랑은 그의 생애 마지막 해에 크라쿠프에 유행성 전염병이 발발했을 때 비범한 방법으로 분명히 드러났다. 크라쿠프는 1482년 7월부터 1483년 1월 6일까지 유행성 전염병의 대재난에 처했었다. 성 베르나르디누스 수도원의 작은 형제회 수사들은 진정한 위로의 천사로서 병자들을 돌보기 위해 쉼 없이 자신들이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했다. 시몬 형제는 애덕을 실천하고 봉헌된 삶을 완성할 수 있는 좋은 시간을 잡았다고 생각했다. 그는 어느 곳이든 찾아가서 병자들을 위로하고 구호하며 성사를 집전하고 죽어가는 이들에게 하느님의 위로의 말씀을 전하였다. 결국 그 역시 전염병에 감염되고 말았다. 그는 놀라운 인내로써 질병의 고통을 견디어냈고, 마지막에 임박해서는 모든 이들이 자신을 밟고 지나갈 수 있도록 성당 문지방 아래 묻어달라는 소망을 표현하였다. 1482년 7월 18일, 전염병에 감염된 지 6일째 되던 날 그는 죽음의 두려움도 없이 자신의 눈을 십자고상에 고정한 채 하느님께 자신의 영혼을 돌려드렸다.


시몬 형제에 대한 공적인 공경은 1685년 2월 24일 교황 복자 인노켄티우스 11세(Innocentius XI)에 의해 승인되었고, 공식적인 시성 절차는 1948년 6월 25일 교황 비오 12세(Pius XII) 때 시작되었다. 그의 영웅적인 덕행과 전구를 통해 1943년 크라쿠프에서 일어났던 기적적인 치유가 사실로 드러나자 2005년 12월 19일과 2006년 12월 16일에 교황 베네딕투스 16세(Benedictus XVI)는 이를 공식적으로 확인하였다. 그리고 2007년 6월 3일 바티칸의 성 베드로 광장에서 다른 세 명의 복자들과 함께 시성식을 갖고 성인으로 선포하였다.
(가톨릭홈에서)




* 성 요한 카피스트라노 사제 축일:10월23일
* 시에나의 성 베르나르디노 사제 축일:5월20일
* 예수 성명 축일:1월3일

 

 

 

 

 

 

완전한 사람은 없다. 성인이라 해도 마찬가지다.

당대 최고의 성서 학자였던 성 브루노도 실수를 한 적이 있다.

 

그는 교회의 물건을 사고 파는 것도 ’성물 매매죄’에 해당되며

그 죄를 지은 사제는 미사를 집전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다시 말해 교회의 물건(사무실)을 판 사제는 미사를 드릴 수도, 세례를 줄 수도 없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교회의 물건(사무실)을 판 행위는 잘못일 수 있지만

그렇다고 서품 자체가 무효가 되어 성사를 집행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실수는 말 그대로 실수일 뿐 그 이상의 의미는 없다.

실수하고 싶은 사람은 아무도 없지만 누구나 가끔은 실수를 하게 마련이다.

한 번 실수했다고 해서 마치 이 세상이 끝난 것처럼 비관할 필요는 없다.

어쩔 수 없이 실수를 했을 때 그것을 바로잡을 수 있다면 바로 잡아 보려고 최대한 노력해야겠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라면 단순하게 받아들이는 것이 최선이다.

 

자신을 꾸짖고 회한에 젖는다고 이미 저지른 실수를 돌이킬 수는 없다.

만약 실수를 저질렀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면, 잠깐 쉬면서 호흡을 가다듬어라.

그리고 당신 역시 실수를 저지를 수 있는 인간이라는 것을 기억하라.

(꼰벤뚜알프란치스코회홈에서 www.ofmconv.or.kr)

 

 

 

 

 

 

 

 

*카르투시안 수도회 창설자

*성 브루노 사제 축일: 10월6일

*성교회의 보석. 카르투시안 수도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