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일:9월1일(8월16일) 실바의 성녀 베아트리체 Santa Beatrice de Silva Meneses Fondatrice
베아트리체(1424 - l490)는 모로코 쎄우타티에서 포르투갈 귀족 집안의 딸로서 태어났다.
그녀는 깊은 신앙심과 더불어 빼어난 미모가 유명했는데, 카스틸랴 왕의 구애 때문에 왕비의 시샘으로 박해를 받고 투옥되는 등 불행을 겪었다.
복되신 동정녀의 도움으로 기적적으로 석방되어 톨레도로 갔다. 여기서 40 년 동안 씨스떼르치안(cistercense) 수녀들과 함께 관상 생활을 하였다.
1489년 "원죄없으신 잉태의 성모"를 주보로 수도회 설립에 대한 교황 인노첸시오 8세의 인가를 받았다. 이 수도회는 "원죄없으신 잉태의 성모 수녀회"로서 프란치스칸 가족 제2회에 편입되었다. *작은형제회(프란치스코회)www.ofm.or.kr
Conceptionist 이들은 포르투갈 출신 성녀 Beatrice de Silva(+1492)에 의해 설립되었다. 1489년 그녀는 인노첸시오 8세로 부터 Toledo에 원죄없이 잉태되신 동정녀 마리아께 봉헌된 수도원을 설립할 권한을 부여받았다. 그녀가 죽은 후 Ximenes de Cisneros 대주교는 그 수도원을 성녀 글라라의 회칙을 따르는 수도원으로 정하였다. 1511년 율리우스 2세는 Francisco Quinones 가 준비한 새로운 회칙과 회헌을 인준해 주었다. Conceptionist 개혁은 스페인과 남미쪽으로 퍼져 나갔다. 멕시코 시에는 Conceptionist 들이 1540년에 진출하였다. (강의록 '간추린 프란치스칸 역사' 79쪽에서)
이탈리아: 아매디테(Amaeditae)
이탈리아에서는 아매디테 개혁이 큰 명성을 얻었다. 그 이름은 창립자인 포르투갈의 귀족 실바의 아마데오 메네시스(+1482)에서 나온 것인데, 그는 무염시태 수녀원의 창립자인 성녀 실바의 베아트리체의 남동생이다.
아마데오는 아시시의 본부 수도원에서 착복했으며 밀라노 관구로 이적했으나, 더 엄격한 회칙 준수를 원해서 1457년에 몇몇 동료들과 함께 산 프란체스코 디 마리아노로, 그 후에는 오레노의 은둔소로 갈 허락을 얻었다. 그의 성덕에 대한 명성과 힘있는 인품은 많은 제자들을 모아들였다.
1461년에 그는 브레싸노로의 성마리아 수도원을 세웠는데, 이곳이 그의 개혁운동의 중심지가 되었다. 그가 세운 수도원들은 총장의 재치권 밑에 있는 한 속관구를 형성하였고, 롬바르디아,토스카나,베네치아의 넓은 지역을 흡수하게 되었다. 옵세르반테스의 요구를 받아들여 바오로 2세는 1470년에 그 속관구를 폐지하였다. 그리고 아메디테를 총장과 꼰벤뚜알 관구장들의 직속으로 두었다.
식스토 4세는 아마데오에게 자신의 수도원들에 대한 전적인 자치권을 주었으며, 그를 개인 고백신부로 삼고, 몬토리노의 성 베드로 수도원을 그에게 주었다. 창립자가 사망한 후에도 이 개혁운동은 교황의 후원에 힘입어 이탈리아 북부와 중부 전역에서 계속 퍼져나갔다. 1500년에는 알렉산델 6세가 아메디테의 속관구장에게 총회에서의 투표권을 주었다. (강의록 '간추린 프란치스칸 역사' 57-58쪽에서)
베아트리체는 포르투갈에서 브리트(brites)로 알려진 분인데,
(성바오로수도회홈에서)
♬Ave Maria - Anthony Way
“원죄 없이 잉태되신 마리아여. 당신께 의탁하는 우리를 위하여 빌으소서”
12월8일: 한국 교회의 수호자. 복되신 동정 마리아 원죄 없으신 잉태 대축일(게시판791번,775번,1511번) The Immaculate Conception, Mary’s Immaculate Conception
축일:9월1일 성 에지디오(질스)아빠스 Sant’ Egidio Abate ST. Egidio(Aegidius) or GILES St. GILES (sec. VI-VII ) Born:at Athens, Greece Died:c.710-724 in France Egidio = figlio di Egeo, nato sull'Egeo, dal greco 불구자와 걸인들의 수호성인
그는 중세 서방교회에서 널리 공경받던 성인 중의 한 분이지만, 그의 생애는 별로 알려진게 없다. 부모님이 물려 준 많은 재산을 빈민들에게 나누어 주고 자신은 거지 행세를 하며 오직 기도 생활에만 전념하였다고 한다. 그는 아테네 사람인데 자신이 행한 기적을 보고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들므로 아테네를 떠나 마르세이유로 피신하였다. 그는 2년 동안 아를르에서 성 체사리오와 함께 지냈고, 론강 하구에서 은수자 생활을 하였다. 그는 사슴의 젖을 먹고 살았다고 한다.
한 번은 플라비우스왕이 일행을 이끌고 사냥을 나갔는데, 어느 포수가 사슴을 명중시키고 달려가보니 질스가 화살을 맞고 쓰러져 있었다고 한다. 왕은 이를 애통히 여기고 그를 위한 수도원을 짓고 원장으로 임명하였다. 그의 높은 덕을 흠모한 국왕까지 그에게 고해성사를 받을 정도로 명성이 날로 높아만 갔다. 질스는 불구자와 걸인들의 수호성인이다.
성 에지디오는 640년 경 그리스의 아테네에서 태어났다. 부모는 다 신앙심이 두터운 분들이었으나, 일찍이 세상을 떠나고 에지디오에게 상당한 재산을 남겨 주었다. 에지디오는 어려서부터 하느님만을 위해서 살겠다는 생각을 가졌었다. 그래서 전 유산을 다 처분해 빈민에게 나누어 주고 자신은 거지 행세를 하며 이탈리아를 거쳐 프랑스에 와서 기도에 전념할 수있는 조용한 곳을 찾아다녔다. 그때 그의 나이 26세였다.
에지디오는 아를르에 도착해 그곳 주교의 승낙을 얻어 2년간을 그곳에 머물렀다. 주교는 그의 성품을 알고 그를 보내려 하지 않았으나, 그는 고독한 곳을 동경한 나머지 밤에 몰래 집을 나와 인기척 없는 조용한 곳에 보잘 것없는 초막을 짓고 그곳에서 지냈다. 그러나 그 은밀한 장소까지 나중에는 발견되고야 말았다. 부근의 사람들은 그의 성스러운 생활 태도를 보고 그에게 지도를 청하러 왔으나 고독을 즐기는 그는 번잡한 것이 싫어졌다. 그래서 그는 산림이 울창한 더 깊은 산속으로 들어가 어느 샘물 가까이 있는 동굴을 발견하고 그곳을 거처로 삼았다. 그는 이 곳에서 기도와 묵상으로 수년을 지냈다. 그의 음식은 물과 풀부리와 나무 껍질뿐이었다.
The Death of St Giles - MASTER THOMAS de Coloswar 1427.Tempera on pine wood, 89,5 x 69 cm .Christian Museum, Esztergom
그에게 대해 다음과 같은 전설이 있다. 그 굴에 매일 사슴 한 마리가 와서 그에게 젖을 먹여 주었다. 이것이 사람들에게 발견되는 실마리가 되었다. 즉 어느 날 수많은 부하를 거느린 왕이 그 숲속에 사냥하러 왔을 때 한 사슴이 에지디오의 동굴로 뛰어갔다. 왕이 따라 와서 보니, 개는 우뚝서서 그 굴 근처에 가질 못했다.
왕과 신하들은 그것을 신기하게 여겨 그 개에게 명령해 동굴 속으로 들어가도록 했으나 아무 효과가 없었다. 사슴은 성인이 발 밑에 웅크리고 앉았고, 에지디오는 그 사슴을 끌어안고 화살이 손을 맞추어 그 상처에서 붉은 피가 흘러 그의 옷을 물들였다.
왕은 그 자리에서 꿇어 이 은수자에게 용서를 청하고 대신 많은 선물을 보내주려 했다. 그러나 은수자는 그런것은 도무지 생각하지 않고 "나는 그런 것이 필요치 않습니다"하며 끝끝내 사양했다. 그리고 "이런 상처는 좋은 보속의 재료가 됩니다."하며 붕대를 감을 생각도 안했다고 한다.
그때부터 왕은 가끔 이 동굴에 와서 에지디오와 좋은 담화를 나누었다. 그리고 때로는 선물을 보냈으나 그는 한번도 받은 일이 없었다. 그래도 왕이 한 번 만은 받아주기를 간청하자, 그는 "만일 하느님을 위해 하시고 싶은 생각이 계시다면 수도원을 세우는 것이 어떻습니까? 그렇게 하시면 그 수도원에 사는 수도자들이 매일같이 당신을 위해 기도할 것입니다"하고 대답했다. 왕은 "당신이 그 수도원장이 되킴摸?기쁜 마음으로 지어 드리지요"라고 했다. 이 말에 에지디오는 깜짝 놀라며 처음은 거절했으나, 곧 하느님의 뜻이 있음을 깨달았음인지 원장이 될 것을 승낙했다.
수도원은 그가 살고 있던 바로 그곳에 건축되었다. 순식간에 다수의 청년들이 모여들어 수사가 되었다. 에지디오는 베네딕토회의 규율로써 그 수도원을 잘 다스렸다.
*성 베네딕토 아빠스 축일:7월11일.인창동성당게시판1267번
그의 훌륭한 행실은 무엇보다도 수사들에게 교훈이 되었다 왕은 그 수도원의 생활비 등을 보조했으며, 교황은 에지디오에게 호의로써 여러 가지 조언을 베풀어 주었다.
그런데 에지디오의 예언대로 2,3년이 지나자 사라센 군대가 침입해 부근 일대는 말할 것도 없고 그 수도원까지 불타 폐허가 되버렸다. 에지디오는 수사들과 다른 곳에 피난하고 후에 2,3명의 수사와 더불어 오를레앙으로 향했다. 오를레앙에서 가장 유력한 가롤로 마르테르는 에디지오를 만나 그의 기도를 청했다.
사라센 군이 격퇴하자, 그 수도원은 복구되고 에지디오도 그곳으로 귀환했다. 그러나 얼마 안 되어 그는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아 조촐한 영혼을 주님의 손에 바쳤다. 때는 725년 9월 1일이었다.
그가 세상을 떠나자 사람들은 그를 성인으로 공경하기 시작했다. 그를 주보로 모시는 성전이나 수도원은 프랑스뿐만 아니라 그에 인접한 나라에도 많이 건축되었다. 그러므로 그는 14명의 구난(救難)성인 중의 한 사람으로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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