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일:3월20일
성 쿠트베르트 주교
St. Cuthbert, Bishop of Lindesfarne
San Cutberto di Lindisfarne Vescovo
Born:634 somewhere in the British Isles
Died:20 March 687 at Lindesfarne of natural causes;
body removed to Durham Cathedral, Lindesfarne; body incorrupt
Canonized:Pre-Congregation
어떤 사람들은 그가 아일랜드라고 하고, 또 다른 이들은 스코트인이라 하지만,
저명한 역사가인 성 베다(St. BEDE the Venerable)는 브리톤 출신이라고 증언하고 있다.
어린 아이였을 때 고아가 되었고, 얼마동안 목동 노릇을 하였으며, 메르시아족과 싸웠던 경험도 있다.
그는 멜로즈 수도원에서 수도자가 된 후,
성 에아따(Saint Aidan:축일:8월31일)를 수행하여 리폰 수도원으로 갔으나,
알크프리드 국왕이 이 수도원을 성 윌프리드에게 넘겨주자,
다음 해에 멜로즈로 돌아와서, 그곳의 원장이 되었다.
그는 주로 선교사의 임무를 수행하였다.
성 콜만이 로마 전례 거행을 결정한 휘트비 회의 결정을 수락하기를 거부하고,
린디스파른의 대부분의 수도자를 이끌고 아일랜드로 돌아가 버렸을 때,
성 에아따가 그의 후임 주교로 임명되고, 쿠트베르트는 린디스파른의 원장이 되었다.
그는 자신의 선교 활동을 재개했는데, 수많은 군중들이 몰려들어 성황을 이루었다.
이 일은 그가 은수자로 생활할 허가를 받을 때까지 계속되었다.
그러나 자신의 뜻과는 상관 없이, 헥섬의 주교로 선임되고 말았다.
그는 린디스파른의 주교가 된 것이다. 그는 2년 동안 자기 교구를 지도하였는데,
그 당시 교구 내에 유행하던 페스트 환자를 돌보는 일에 전념하였다.
그의 성덕은 너무나 뛰어나서 놀라운 치유 능력을 보였고, 수많은 기적이 일어났다고 한다.
더구나 그의 예언 늘력은 특히 돋보였다. 린디스파른에서 운명하였다.
(성바오로수도회홈에서)
*성 베다 사제 학자 축일:5월25일
*성 에이단 축일:8월31일
성 쿠베르토는 7세기 영국에서 태어난 사람이다.
당시 영국은 순전한 가톨릭 국가로서 국왕 자신이 솔선하여 교회를 위해 진력하던 상태였으므로
교세는 날로 번성할 뿐만 아니라 수많은 성인이 배출되어 타국에까지 전교하기 위해 가는 선교사도 다수에 달했다.
쿠베르토가 태어난 고향은 잉글랜드의 농촌이었지만,
그는 일찍이 수도원을 지망하여 651년에 멜로즈 수도원에 들어가서 이다
원장의 지도하에 열심히 덕을 닦으며 사제가 된 후 부원장에 선촐되어 그 수도원 수사들은 물론
인근의 신자들도 지도하며 존경을 받았다.
661년에 멜로즈에 흑사병이 발생하여 한창 성행할 때에 그는 손수 환자의 구제에 진력하고 그로 말미암아
자신도 병에 걸렸지만 하느님의 보호로 기적적으로 완쾌하고 그 후는 국내 각처를 순회하면서
교리를 설명하며 성사를 주고 사람들은 선으로 인도했다.
그동안 몇가지의 기적도 일어나서 성스러운 사제라는 평판이 점차 높아졌다.
3년후 그는 수도원장과 함께 멜로즈에서 린디스파르노(Lindisrarno)의 수도원에 이동하고
거기서도 다름없이 완덕의 모범으로 공경을 받았다.
그 동안에도 항시 의리(義理)만을 구하던 쿠베르토는 678년 원장의 승낙을 얻어
파르노라고 하는 섬에 홀로 들어가서 더 한층 기도와 고행에 힘쓰며 덕을 닦았다.
그 뒤 수도자, 평신도 구별없이 교훈을 청하며 기도를 청하는 사람들이 날이 갈수록 많이 모여 왔으므로
쿠베르토는 이와 같은 것으로 자기 마음이 산란해질까 두려워한 나머지 거처의 문을 굳게 닫고
다만 창문을 통해 사람들에게 하느님께 대해 말하며 영원한 행복을 설명해 주고 혹은 가르치고
혹은 위로해 주고 혹은 축복을 베풀어주었다.
그가 은수생활을 시작한 지 9년째 되는 해의 일이다.
캔터베리의 대주교 지휘하에 열린 주교 회의의 결과로 그 교구를 3등분하여 쿳베르토를
헥섬교구의 주교로 추대하는 것을 만장일치로 결정했는데,
회의에 참석했던 국왕 에그베르토는 겸손한 쿠베르토가 사양하지 않을까 하여 손수 설복의 임무를 맡고
파프노 섬에 건너가서 정중히 주교 취임을 간청했다.
쿠베르토의 심정으로 본다면 본시 고요한 섬의 생활을 버리고는 싶지 않았지만
국왕 자신이 직접 부탁하기도 해서 할 수 없이 드디어 취임을 허락했다.
그러나 결정되었던 헥섬 교구 대신 인연이 깊은 린디스파르노 교구를 사목(司牧)하게 되었다.
쿳베르토의 주교 서품식은 684년의 부활 축일에 거행되었다.
그 뒤 그는 2년 이상 린디스파르노 교구를 다스리고 있었지만 드디어 최후의 날이 임박한 것을 깨닫고
선종의 준비를 하기 위해 사랑하는 파르노 섬으로 돌아가서 거기서 687년 3월 20일 이 세상을 떠났다.
그의 사망 후 그 섬에는 여러 가지의 기적이 일어나고
그의 유덕을 사모하는 순례자도 끊임이 없고 특히 뱃사공들은 지금도 성 쿠베르토를 수호 성인으로 공경하고 있다.
(대구대교구홈에서)
이야기
어느 날 초저녁 무렵, 저녁기도를 마친 멜로스 수도원의 문지기 수사는 문단속을 끝내고
잠자리에 들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때 전쟁에 지친 한 병사가 말을 타고 수도원 문 앞에 와서 섰다.
번쩍이는 창을 손에 들고 있던 그는 말을 탄 채 이렇게 말했다.
"나는 머시아 사람들과 전쟁을 하다가 왔소.
전쟁을 하면서 사람들이 서로를 죽이는 데 신물이 났소.
그러니 제발 나를 당신들의 동료로 받아들여 주시오.”
놀라운 눈으로 그를 바라보던 문지기 수사는 그를 수도원장에게 안내하였다.
병사의 신실함에 마음이 움직인 수도원장은 문을 열어 주었고
마침내 쿠트베르트는 자신의 안식처를 찾게 되었다.
성 쿠트베르트가 말을 타고 창을 든 채 멜로스 수도원에 도착했다는 것은 확실하지만
그 다음 부분은 꾸며진 이야기다.
그런 일이 실제로 일어났을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사실 영혼을 파고드는 이야기는 우리를 감동시키고 많은 것을 가르친다.
예수님도 이야기를 통해서 군중들을 가르치셨다.
단순히 사실만을 나열하는 것은 진실을 축소하고 진실의 위력을 감소시킨다.
우리가 상상력을 동원하여 사실들 사이의 빈 공간을 채울 때,
진실은 더 완전하고 충만한 모습으로 우리 존재의 가장 깊은 곳까지 다가올 수 있게 된다.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가? 상상력이라는 선물을 주신 하느님을 찬미한다.
(까리따스수녀회홈에서)
축일:3월20일(3월19일)
파르마의 복자 요한, I Order
Beato Giovanni (Buralli) da Parma
Parma, 1208 circa - Camerino, 19 marzo 1289
Blessed John of Parma
Also known as Giovanni di Parma, John Buralli
Born : 1209 at Parma, Italy
Died : 1289 at Greccio, Italy
Beatified : 1777 by Pope Pius VI (cultus confirmed)
작은 형제회의 제7대 총장인 요한 부랄리(Joannes Buralli)는 이탈리아 파르마 출신으로 25세 때에 작은 형제회 회원이 되었다. 그는 즉시 파리(Paris)로 가서 공부를 하고 사제로 서품된 후에는 볼로냐(Bologna), 나폴리(Napoli) 그리고 로마(Roma)에서 신학을 가르쳤다. 그의 설교는 매우 뛰어났기 때문에 수많은 군중들이 몰려들곤 하였다. 1247년 그는 총장으로 선출되었다. 그는 강인하고 배짱이 센 사람으로 인내심도 많았기 때문에 수도회 내외의 어려운 문제들을 잘 풀어나갔다.
그는 자주 부엌일하는 수사들을 거들어 준 것으로 유명할 뿐 아니라 침묵을 사랑하고 화해의 정이 깊어서 쓸데없는 말은 삼갔다. 그가 영국을 방문했을 때에는 국왕 헨리 3세가 문밖으로 나와 보잘것없는 그를 껴안아 영접했고, 프랑스의 상스(Sens)를 찾았을 때에도 국왕 루이 9세가 그의 기도와 축복을 청할 정도로 공경을 받았다. 또한 그는 교황으로부터 임명 받은 동방 황제의 교황 대사로서 봉사하기도 했다.
1257년에 그는 총장직을 사임하고 성 보나벤투라(Bonaventura, 7월 15일)를 후임자로 뽑았다. 그는 그레치오(Greccio)의 은둔소로 은퇴하여 30여 년 동안 잊혀진 사람으로 살며 수덕생활에 전념하였다.
(가톨릭홈에서)
*프랑스 국왕 루이(루도비코) 9세: 재속프란치스코회 주보성인(축일 8월25일)
Greccio
파르마의 요한(1247-1257년) 7대 총장
과거로의 복귀:
리옹총회에서 선출되었으며, 이 새 총장의 선출 소식을 듣고 에지디오 형제는 "오기는 잘 오셨는데 너무 늦게 오셨군요!" 하고 외쳤다. 그는 당시 형제회를 정비하는 데 적합한 인물로 학문과 지식에서도 특출했지만 프란치스코의 이상에도 아주 헌신적이었다. "형제회란 건물은 학문과 덕행이라는 두 기둥 위에 세워진다."고 그는 말했다. 그러나 전자가 더 우세해지고 있는 현상에는 동의하지 않았다. 그의 통치 규범은 자신의 모범이었다.
그는 초기의 열정과 옛 전통으로 돌아감을 목표로 제시했다. 관구들간의 상호이해를 증진시킴으로서 형제회의 정신을 보다 잘 통합하고자 총회를 이탈리아와 알프스 산 너머에서 번갈아가며 열리도록 조정했다.
그에게는 프란치스코 성인의 유언이 회칙의 가장 훌륭한 해석이었기에 교황 특권의 반대자가 되었다.
형제회 외부 반대자들과의 논쟁에서는 작은형제들의 모범과 겸손으로써 답하기를 바랬다.
그는 모든 관구들을 걸어서 방문했고, 가는 곳마다 회칙과 유언에 충실하라고 권고했다....
... 파르마의 요한은 40대의 바뇨레지오의 보나벤투라를 지명하고 나서 그레치오의 은둔소로 물러갔다.
(김창재다미아노OFM, 강의록 간추린 프란치스칸 역사, 2006 프란치스칸 영성학교 40쪽에서..)
*아시시의 복자 에지디오 축일:4월23일
*바뇨레지오의 성 보나벤투라 주교학자 축일:7월15일
야고바형제가 주문하여 그렸다는 '눈물 흘리는 성 프란치스코' 초상화(그렉치오) 2005년 성지순례 사진.
가장 오래된 프란치스코성인의 초상화라고 한다.
San Francesco a Greccio(눈물 흘리는 성프란치스코-그렉치오 성당)
"우리가 자랑할 수 있는 것은 곧 우리의 연약함이며,
매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지는 일입니다."(권고5)
그렉치오의 구유동굴의 벽화, 2005년 성지순례 사진
왼쪽은 프란치스코 성인이 강생의 신비를 재현한 성탄 그림이고
오른쪽은 성서 상의 아기예수님의 성탄 모습이다.
성프란치스코의 임종 - 포르치운쿨라의 건너감 경당
복되신 프란치스코의 유언
1) 주님이 나 프란치스꼬 형제에게 이렇게 회개생활을 시작하도록 해 주셨습니다 : 내가 죄중에 있었기에 나병환자들을 보는 것이 나에게는 너무나 역겨운 일이었습니다. 2) 그런데 주님 친히 나를 그들에게 데리고 가셨고 나는 그들 가운데서 자비를 베풀었습니다. 3) 그래서 내가 그들한테서 떠나올 때에는 역겨웠던 바로 그것이 내게 있어 몸과 마음의 단맛으로 변했습니다. 그리고 그 후 얼마 있다가 나는 세속을 떠났습니다.
4) 그리고 주님이 성당에 대한 크나큰 신앙심을 주셨기에, 다음과 같은 말로 단순하게 기도하곤 했습니다: 5) "주 예수 그리스도여, 당신의 거룩한 십자가로써 세상을 구속하셨사오니, 우리는 여기와 전 세계에 있는 당신의 모든 성당에서 주님을 흠숭하며 찬양하나이다."
6) 그 후 주님이 거룩한 로마교회의 관습을 따라 생활하는 사제들에 대한 큰 신앙심을 주셨고 또한 지금 도 주시기에, 만일 그분들이 나를 학대한다 해도 그분들이 받은 품(品) 때문에 나는 그분들에게 달려가기를 원합니다. 7) 그리고 내가 솔로몬이 가졌던 그 정도의 많은 지혜를 가지고 있고, 속화된 불쌍한 어떤 사제 들을 만난다 해도, 그분들의 뜻을 벗어나 그들이 거주하는 본당에서 설교하고 싶지 않습니다. 8) 그리고 그 분들과 또 다른 사제들을 마치 나의 주인인 듯이 두려워하고 사랑하며 존경하기를 원합니다. 9) 그리고 그 분들 안에서 나는 하느님의 아드님을 알아 뵙고, 그분들이 나의 주인이므로 그분들 안에서 죄를 보고 싶지 않습니다. 10) 내가 이렇게 하는 이유는 사제 자신들도 성체를 영하고 사제들만이 다른 이들에게 분배하는 주님의 지극히 거룩한 몸과 피가 아니고서는 이 세상에서 하느님의 지극히 높으신 아드님을 내 육신의 눈으 로 결코 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11) 그리고 누구든지 이 지극히 거룩한 성사를 무엇보다도 공경하고 경배 하며 귀중한 장소에 보시기를 원합니다. 12) 지극히 거룩하신 주님의 이름과 말씀이 기록된 책을 부당한 곳 에서 발견하면, 나는 그것을 주워 모으기를 원하고, 또한 다른 이들도 그것을 주워 모아 합당한 곳에 모시 기를 부탁합니다. 또한 우리는 모든 신학자들과 우리에게 영과 생명을 넣어 주는 사람들로서 받들어 존경해 야 합니다.
14) 그리고 주님이 몇몇 형제들을 나에게 주신 후 아무고 내가 해야 할 것을 나에게 보여 주지 않았지만, 지극히 높으신 분께서 친히 거룩한 복음의 양식(樣式)에 따라 살아야 할 것을 나에게 계시하셨습니다. 15) 그리고 우리 생활을 받아들이려고 찾아오는 사람들은 가지고 있던 모든 것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주었고 또 한 안팎으로 기운 수도복 한 벌과 띠와 속옷으로 만족하였습니다. 17) 우리는 그 이상 더 가지기를 원치 않 았습니다. 18) 우리는 성무일도를 바쳤습니다. 글아는 형제들은 다른 성직자들처럼 바쳤고, 글 모르는 형제 들은 "주의기도"를 바쳤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성당에다 거처를 마련해야 할 때에도 매우 기뻐했습니다. 19) 그리고 우리는 배우지 못한 사람들이었으며 모든 이에게 복종하였습니다. 20) 그리고 나는 손수 일하였 고 또 일하기를 원하며 다른 모든 형제들도 올바른 일에 종사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21) 일할 줄 모르는 형제들은 일을 배워야 하고, 일의 보수를 받을 욕심 때문이 아니라 모범을 보여 주며 한가함을 피하기 위해 서 일을 배울 것입니다. 22) 그리고 우리가 일을 보수를 받지 못할 때에는 집집마다 동냥하면서 주님의 식 탁으로 달려갑시다.
23) "주님이 당신에게 평화 주시기를 빕니다"하고 우리가 해야 할 인사를 주님이 나에게 계시해 주셨습니 다.
24) 형제들을 위해 지은 성당이나 초라한 집이나 다른 건물이 회칙에 따라 서약한 거룩한 가난에 맞지 않 으면 형제들은 절대로 받아들이지 말 것을 명심할 것입니다. 그리고 거기에서 항상 "나그네나 순례자"같이 기거하십시오(1베드 2,11).
25) 나는 모든 형제들에게 순종으로 단호히 명합니다 : 형제들이 어디에 있든지, 직접 혹은 간접으로, 설교 하기 위해서나 지기 몸의 박해를 피하기 위해서나 성당이나 다른 건물을 위해서 어떠한 증서도 로마 교황청 에 감히 신청하지 말 것입니다. 26) 오히려 환영받지 못하거든 하느님의 축복 속에 회개생활을 하기 위해 다른 지방으로 피하십시오.
27) 그리고 나는 이 형제회의 총봉사자께, 그리고 그분이 임의로 나의 수호자로 정해 주는 그 형제에게 순 종하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28) 그리고 그분은 나의 주인이기에, 그분의 듯과 순종을 벗어나서는 어디에 가 지도 무엇을 하지도 못할 정도로 그분의 수중에 매여 있기를 원합니다. 29) 그리고 비록 내가 우매하고 병 약한 사람이지만, 회칙이 정하는 대로 나에게 성무일도를 읽어 줄 형제 한 분을 항상 모시기를 원합니다.
30) 그리고 다른 모든 형제들도 수호자 형제들에게 이와 같이 순종해야 하고 회칙에 따라 성무일도를 바 쳐야 합니다. 31) 그리고 회칙에 따라 성무일도를 바치지 않고 다른 형식으로 변경하려고 하는 사람이나 혹 은 가톨릭 신자가 아닌 듯한 형제를 발견하게 되면, 어디서든지 이런 형제를 만나는 곳마다, 형제들은 모두 그를 만난 곳에서 가장 가까운 관할 보호자 형제에게 데리고 갈 순종의 의무가 있습니다. 32) 그리고 보호 자는, 그를 그의 봉사자의 손에 직접 넘겨 줄 때까지 자기 손에서 도망갈 수 없도록 감옥에 주야로 갇혀 있 는 사람처럼 엄중하게 지킬 단호한 순종의 의무가 있습니다. 33) 그리고 봉사자는 그 형제를 전 형제회의 주인이며 보호자요 감사관이신 오스띠아 추기경에게 보낼 단호한 순종의 의무를 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형제를 추기경에게 넘겨줄 때까지 몇몇 형제를 임명하여 그를 감옥에 갇혀 있는 사람처럼 주야로 지키게 할 것입니다.
34) 그리고 형제들은 "이것이 또 하나의 회칙이다"하고 말하지 말 것입니다. 이 글은 우리가 지키기로 주 님께 약속한 회칙을 보다 더 가톨릭 신자답게 실행하도록, 나 작은 형제 프란치스꼬가 축복받은 나의 형제 여러분에게 남기는 회고요 권고와 충고, 곧 나의 유언이기 때문입니다.
35) 그리고 총봉사자와 다른 모든 봉사자들과 보호자들은 순종으로 이 말에 아무것도 덧붙이거나 삭제하 지 말아야 합니다. 36) 그리고 형제들은 이 글은 회칙과 같이 항상 소지할 것입니다. 37) 그리고 개최하는 모든 회의에서 회칙을 읽을 때 이 글도 읽을 것입니다.
38) 그리고 나는 성직형제와 평형제를 막론하고 나의 모든 형제들에게 단호히 순종으로 명합니다 : 회칙과 이 글에 "이렇게 알아들어야 한다"는 해석을 덧붙이지 마십시오. 39) 이와 반대로 주님이 나에게 회칙과 이 글을 단순하고 순수하게 말하게 하고 또 기록하게 해 주신 것과 같이 여러분도 해석하지 말고 단순하고 순수하게 이해하며 거룩한 행동으로 끝날까지 실행하도록 하십시오.
40) 이것을 실행하는 사람은 누구나 하늘에서는 지극히 높으신 아버지의 축복을 충만히 받고, 땅에서는 지 극히 거룩하신 위로자 성령과 하늘의 모든 천사들과 성인들과 함께 사랑하시는 아드님의 축복을 충만히 받 기를 비는 바입니다. 41) 그리고 여러분의 보잘것없는 종 나 프란치스꼬 형제는 여러분이 이 지극히 거룩한 축복을 내적 외적으로 받으리라는 것을 여러분에게 할 수 있는 데까지 확언하는 바입니다.
건너감 경당의 내부모습
우리 사부 성 프란치스꼬의 축복 (2첼라노 191)
오! 지극히 사랑하는 형제들, 그리고 영원히 축복받은 아들들,
내 말을 듣고 여러분의 아버지의 음성을 들 으십시오 :
우리는 큰 것을 약속했고 우리에게는 더 큰 것이 약속되어 있습니다.
약속한 것을 지키고 약속 된 것을 갈망합시다.
쾌락은 일시적이고 형벌은 끝이 없습니다. 고통은 짧고 영광은 영원합니다.
부르심을 받은 사람은 많지만 뽑힌 사람은 적습니다.
누구든지 자기의 보상을 받을 것입니다. 아멘.
*아시시의 성프란치스코 축일:10월4일
*성프란치스코의 거룩한 상흔 축일:9월17일
축일 : 3월 20일
시에나의 복자 암브로시오
Bl. Ambrose of Sienna
Bl. AMBROSE SANSEDONI of Siena
Beato Ambrogio Sansedoni Domenicano
Siena, 16 aprile 1220 - ivi, 20 marzo 1286
Beatified:1622 (cultus confirmed)
Ambrogio = immortale, dal greco = divine immortal
암브로시오는 희랍어로 ’죽지 않는’이란 뜻이다.
시에나의 최고 귀족 가문의 자제인 그는 머리가 비정상적으로 컸고
또 손과 다리를 사용하지 못하는 아이로 태어났다.
어느 날, 그의 유모가 도미니꼬회 수도원 성당으로 아이를 데리고 갔을 때,
그가 기적적으로 치유되었다고 한다.
그러므로 그는 어릴적부터 병자와 가난한 자에 대한 감옥을 방문했다.
17세때, 그는 도미니칸이 되고자 했으나, 그를 미심쩍게 여긴 원장이 쾰른으로 보냈는데,
다행스럽게도 성 알베르또(대)를 스승으로 또 성 토마스 아퀴나스를 친구로 만나게 된 것이다.
위대한 스승과 뛰어난 친구의 도움으로 높은 학덕을 얻었고, 하리 대학에서 신학을 가르치기도 하였다.
그러나 은둔생활을 갈망하여 장상의 허락을 얻었지만,
설교하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는 결정에 따라
그는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등지를 돌아 다니며 설교하여 큰 성공을 거두었다.
청중들은 설교하는 그의 머리 위에 비둘기 모양의 성령이 계시는 광경을 목격했다고 증언하였다.
또한 그는 성좌의 요청에 따라 성좌와 시에나의 정치적 알력을 해소하기 위하여 노력하였고,
그레고리오 교황이 서거함에 따라 자기 수도원으로 은신해버혔던 것이다.
그는 하루에 4시간 이상 잠을 자지 않았고,
새벽 기도 후에는 2시간 동안 기도하였으나, 나머지 시간은 공부하였다.
44년간의 수도생활에서 그는 매주 금요일에는 꼭 빵과 물로만 식사 하였다.
그는 66세의 일기로 선종하였다.
(성바오로수도회홈에서)
*성 도미니코 사제 축일:8월8일
*성 알베르토(대) 주교 학자 축일:11월15일
*성 토마스 아퀴나스 사제 학자 축일:1월28일
*밀라노의 성 암브로시오 주교 학자 축일:12월7일
천주교설교자회(도미니코회)
Order of Preachers (Dominicans)
도미니코 수도회는 천주교 수도회들 중의 하나이며,
성 도미니코 (St. DOMINIC de Guzman. 1170-1221) 창립자의 이름에 따라
도미니코 수도회 또는 도미니코회 (한자 : 道明會)라고 부릅니다.
사명은 설교함으로써 하느님의 말씀을 선포하는 것이므로
설교자들의 수도회 (설교자회, 라틴어: ORDO FRATRUM PRAEDICATORUM [O.P.] )라고도 합니다.
본 수도회의 모토는 회원 성 토마스 아퀴나스께서 요약하신 대로
"진리를 관상하라 그리고 전한다"(contemplari et contemplata aliis tradere)입니다.
밤낮으로 하느님의 계시된 진리를 공부와 기도함으로서
알 게 되고 너그러운 마음으로 설교와 가르침으로서 전하는 뜻입니다.
(도미니코수도회홈에서)
3월20일 성녀 클라우디아
성녀 알렉산드라(Alexandra), 성녀 클라우디아, 성녀 에우프라시아(Euphrasia), 성녀 마트로나(Matrona), 성녀 율리아나(Juliana), 성녀 에우페미아(Euphemia), 성녀 테오도시아(Theodosia), 성녀 데르푸타(Derphuta)와 그녀의 자매는 모두 파플라고니아(Paphlagonia) 지방 아미수스(Amisus)의 여성 그리스도인으로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 때 화형을 당해 순교하였다. 성녀 클라우디아는 칼디아(Caldia)로도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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