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8월 9일 연중 제19주간 월요일
2021.08.09.mp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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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미사의 말씀은 우리가 주님께 무엇을 되돌려 드려야 하는지 제시하십니다.
"여러분의 스승님은 성전 세를 내지 않으십니까?"(마태 17,24)
성전 세를 징수하는 이들이 베드로에게 묻습니다. 성전 세는 예루살렘 성전의 유지를 위해 스무 살 이상 된 이스라엘 남자라면 누구나 내야 하는 돈을 가리킵니다.
그런데 이 돈은 로마 황제의 얼굴이 새겨진 화폐로는 지불할 수 없어서 환전상들이 성전 안에서 유다 돈으로 바꾸어 주었지요. 그 과정에서 성전의 책임자들과 장사꾼들 사이의 모종의 결탁과 잇권이 오갔습니다. 예수님께서 이에 대해 철퇴를 가하신 것이 바로 성전 정화 사건입니다.
성전 세는 하느님께서 현존하시는 유형의 성전을 돌보고, 성전 일에 종사하는 이들의 삶을 보전해 줍니다. 또 예식에 필요한 비용에도 쓰이지요. 우리가 교무금이나 헌금을 통해 신자로서의 의무와 사랑을 표현하는 것과 같을 겁니다.
이렇게 성전을 위해서 외적으로는 성전 세가 요구되는데, 그렇다면 내적으로는 무엇이 요구되는지 제1독서가 들려 줍니다.
"너희는 주 너희 하느님을 경외하고 그분을 섬기며, 그분께만 매달리고 그분의 이름으로만 맹세해야 한다."(신명 10,20)
하느님께 대한 경외와 섬김, 의탁과 흠숭, 사랑의 마음이야말로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진정한 봉헌입니다. 그분께 선택되어 하느님 백성이 된 이스라엘은 외적인 세금이나 예물로만이 아니라 이러한 내적 봉헌으로 하느님과 관계를 맺어야 하지요.
그런데 세금은 주님께서 주신 것을 일부분 되돌려 드리는 것에 불과하고, 마찬가지로 내적인 사랑 또한 그 이상으로 우리를 사랑하신 하느님 마음에 아주 쬐끔 반응하는 것에 불과하지만 말입니다.
하느님과 우리 사이에 이러한 내적 관계성이 정립이 되고 유지가 되면 사실 외적인 봉헌은 자연히 따라옵니다. 각자 형편에 따라 규모야 다르겠지만, 하지 말라고 해도 하게 되지요. 또 그분께 무엇이라도 더 바치고 싶은 마음에 성전을 위한 것뿐 아니라 그분의 모상인 형제와 이웃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지고 눈을 돌리게 됩니다. 이쯤되면 성전 세는 의무가 아니라 사랑이 됩니다.
"너희는 이방인을 사랑해야 한다."(신명 10,19)
성경을 읽다 보면 특별히 이방인을 콕 짚어서 사랑하라는 명령을 자주 듣게 됩니다. 그렇다면 왜 굳이 "이방인"인지 주님의 마음에 머물러 봅니다.
이스라엘 백성의 입장에서 이 세상의 모든 사람은 동족과 이방인으로 나뉩니다. 자기네 민족이거나 민족이 아니거나 둘 중 하나지요. 팔은 안으로 굽는다는 만고의 진리로 어차피 동족은 사랑하고 보호하기 마련이니, "이방인을 사랑하라"는 주님의 말씀은 결국 모든 사람을 사랑하고 존중하며 돌보라는 뜻이 아닐까 싶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스라엘은 하느님께서 자기들을 특별히 선택하셨다는 선민사상에 집착해 이방인을 죄인 취급하고 무시하며 도외시했습니다. 온 세상 만물의 주인이시며 모든 사람을 사랑하시는 주님께서 진정으로 바라시는 봉헌은 외형의 성전을 보전하는 성전 세만이 아니라, 바로 주님의 마음을 헤아려 드리는, 경계 없는 사랑이 아니었을까 생각하게 됩니다.
"호수에 가서 낚시를 던져 먼저 올라오는 고기를 잡아 입을 열어 보아라."(마태 17,27)
예수님께서 신비한 방식으로 성전 세를 마련해 주십니다. 하느님의 자녀들에게 먼저 요구되는 것은 외적 돈보다 마음이지만, 세금 징수관들의 비위를 건드려 세상 제도와 마찰을 빚고 싶지 않으신 까닭입니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그 성전 세는 하느님께서 마련해 주셨지요!
"나와 네 몫으로 그들에게 주어라."(마태 17,27)
나와 네 몫. 문맥 안에서는 예수님과 베드로 몫의 성전 세를 가리키지만, 오늘 주님께서 이끌어 주시는 묵상의 흐름에서 보면, 나 자신과, 나 아닌 모든 이들의 몫이라는 의미도 캐낼 수 있습니니다.
우리는 "우리"의 범주 안에 넣은 이들과 "우리" 밖으로 밀어낸 이들 모두를 위해 하느님께 사랑의 의무를 바쳐야 합니다. 우리 중 그 누구도 이 사랑의 의무에서 예외일 수 없지요. 이것이 유형의 성전뿐만 아니라 성전 안에서 진정으로 사랑받고 찬양받으셔야 할 하느님께 드리라고 우리에게 요구되는 진정한 봉헌이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벗님! 하느님을 위해, 이웃과 형제를 위해 우리가 사심없이 바칠 것은 유형의 것이든 무형의 것이든 주님께서 친히 마련해 주십니다. 그분께서 마련해 주신 것에서 조금 떼어 다시 되돌려 드리는 것 뿐이지요. 인간이 자기 능력과 지식처럼 포장하고, 타이밍과 운수로 착각해서 그렇지 사실은 모두 주님께 받은 것이니까요.
우리는 성전 세를 바칩니까? 예, 그렇습니다. 주님을 사랑하고 이웃과 형제를 사랑함으로써 세상의 모든 성전들을 가꾸며 사랑의 의무를 다하는 여러분 모두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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