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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상선(바오로) 신부님

~ 사순 제 1주간 목요일 / 오상선 신부님 ~

 

 


사순절 동안 특별한 관심으로 묵상해야할 그리스도인의 세 가지 덕목이 바로 단식과 기도와 자선입니다.

앞서 예수님께서는 "아버지께서는 너희에게 필요한 것을 아시니 빈말을 되풀이하지 마라"고 하시며, 우리가 꼭 청해야 하는 내용이 담긴 주님의 기도를 가르쳐 주셨습니다(마태 6,7-13 참조). 즉 내 이름이 아니라 아버지의 이름이, 내 나라가 아니라 아버지의 나라가, 내 뜻이 아니라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도록 청해야 한다는 것. 그리고 풍부한 양식이 아니라 일용할 양식을, 용서받기보다 용서하기를, 유혹과 악에 굴하지 않게 해달라고 청하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나서 이제 어떻게 기도해야 하는지 기도의 자세에 대해 알려주십니다. "청하여라 ... 찾아라 ... 문을 두드려라 ..."(마태 7,7). 청하고, 찾고, 두드리기. 이 말씀은 "적극적으로, 순박한 열성을 가지고, 신뢰를 다해" 기도하라는 뜻입니다.

우리의 필요를 아시는 아버지께서는 사실 우리가 청하는 것, 그리고 우리가 찾는 것이 무엇인지 잘 아십니다. 또 어느 문을 열어주어야 할지도 잘 아십니다. 그런데 세속적 욕망과 지나친 자기애(自己愛)에서 아직 자유롭지 못한 우리가 오히려 우리 자신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걸 청하지 않고, 그저 남 보기 그럴듯하고 때깔 곱고 폼 나는 걸 청할 확률이 몹시 크지요. 그런 문으로 들어가려 헛걸음을 하기도 하고요.

예수님께서 인간적 부성애(父性愛)에 기대어 "너희 가운데 아들이 빵을 청하는데 돌을 줄 사람이 어디 있겠느냐? 생선을 청하는데 뱀을 줄 사람이 어디 있겠느냐?"(마태 7,9-10)고 하셨지만, 어쩌면 우리는 빵과 생선을 준비하고 계시는 아버지 하느님께 돌이나 뱀을 청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우리가 악할 망정 자녀에게 좋고 유용하고 긴요한 걸 줄 줄 알거든, 하느님 아버지께서 우리에게 "좋은 것"(마태 7,11)을 주시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것이 우리 좁은 소견과 조급한 욕망을 즉각 해소시켜주지 않아 당장은 기도가 이루어지지 않은 듯한 서운함을 느낄 수는 있어도, 진정 "좋은 것"임은 틀림없습니다.

이어 예수님께서 율법과 예언서의 정신을 선포하십니다. "남이 너희에게 해 주기를 바라는 그대로 너희도 남에게 해 주어라"(마태 7,12). 이렇게 뒤집어 생각해보면 어떨까요?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해 주기를 바라는 것을 과연 나는 그대로 남에게 해 줄 수 있는지, 또 그대로 해줘도 되는지 말입니다. 이 필터로 거른다면 우리는 더이상 하느님께 허황되고 헛되며 소모적인 욕망을 졸라대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독서에서는 민족적 말살의 음모에 처한 에스테르 왕비의 절박한 기도가 나옵니다.

"저의 주님, 저희의 임금님, 당신은 유일한 분이십니다. ... 주님, 당신밖에 없는 외로운 저를 도우소서. 당신께서는 모든 것을 알고 계십니다"(에스 4,17).

에스테르 왕비는 당시 임금의 간택을 받아 왕궁에서 호화롭게 지내는 신분이었지만, 민족을 위해 위험을 무릅쓰기로 결심하고 임금 앞에 나가기 전 이 기도를 바칩니다. 왕비의 신분이지만 하느님 앞에서는 두려움에 떠는 약하디 약한 존재일 뿐입니다.

이 기도에서 그녀는 당신(하느님)께서 "유일한 분"이심을 고백합니다. 한 분이신 하느님만이 홀로 구원을 가져오실 분이십니다. 또 오직 "당신밖에 없습니다"는 고백에는 인간에게서 오는 구원의 헛됨이 담겨 있습니다. 그리고 당신은 "모든 것을 알고 계시기에" 적대자 앞에서 정의와 공정을 펴실 분이심을 믿습니다. 그리고 자신을 가리키는 "당신밖에 없는 외로운 저"라는 말에는 모든 인간의 실존이 녹아 있습니다. 아무리 가족이 많고 지인이 넘쳐나도 인간은 결국 하느님 앞에 홀로 서야 하는 존재입니다. 누구 엄마나 누구 아들이 아닌, 참 존재자와 홀로 마주하는 관계성 안에서 인간 본연의 자기인식과 겸손이 시작되니까요.

이제 다시 복음으로 돌아가 봅니다. "청하여라 ... 찾아라 ... 문을 두드려라." 에스테르처럼, 유일하시고 모든 걸 아시는 하느님 외에는 달리 기댈 곳 없이 외로운 존재임을 겸손되이 자각한 이는, 자신이 청하고 찾고 두드리는 것 이상으로 하느님께서 가장 좋은 것으로 더 잘 이루어 주시리라 믿기에, 내용은 그저 하느님께 맡기고 자신은 더 적극적으로, 순박한 열성을 가지고, 신뢰를 다해 기도합니다. 우리 작은 머리로 아무리 궁리를 한들, 하느님 뜻, 계획, 섭리보다 더 좋을 수 없다는 걸 알기에 그럴 것입니다.

사랑하는 벗님 여러분, 오늘 주님께서 가르쳐 주신 주님의 기도를 바치되, 정말 적극적으로 청하고, 열성을 다하여 찾고, 신뢰를 다해 두드려 봅시다. 그때 나의 간절한 기도가 이루어짐을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꼭 그리되실 겁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