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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상선(바오로) 신부님

~ 사순 제 2주간 월요일 / 오상선 신부님 ~


"심판하지 마라. 단죄하지 마라. 용서하여라."(루카 6,37) 사순절을 지내는 교회에 용서에 대한 예수님의 가르침이 계속됩니다. 용서, 영원한 숙제이지요. 우리에게 해를 입힌 이에게 용서와 자비를 실천하기 위해서는 세 가지 단계가 필요합니다.

먼저 자신이 얼마나 큰 죄인인지를 인식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다니엘 예언자는 주님께 이스라엘 백성이 지은 죄를 고백합니다 "당신께 거역하였습니다, 벗어났습니다, 귀를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죄를 지었기 때문입니다, 말씀을 듣지 않고, 법에 따라 걷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죄인식은 용서와 자비를 실행하는 단계까지 가려면 그저 출발선에 불과합니다.

두 번째 단계는 하느님의 용서와 자애, 자비를 믿는 것입니다. 다니엘 예언자가 하느님 앞에 이스라엘의 죄악을 처절하고 통렬하게 드러내고 인정할 수 있는 힘은, 민족이 저질러 온 온갖 죄악에도 불구하고 하느님은 "계약과 자애를 지키시는 분, 자비하시고 용서를 베푸시는 분"(다니 9,4.9)이심을 믿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실제로 용서와 자비를 베풀 수 있기 위해서는 세 번째 단계, 즉 "너희 아버지께서 자비하신 것처럼 너희도 자비로운 사람이 되어라."(루카 6,36)는 말씀까지 도달해야 합니다.

우리는 하느님의 모습에 따라 창조된 존재이기에 예수님은 우리 보고 하늘에 계신 아버지처럼 되어라 하십니다. 부전자전이라 하듯 무릇 자식은 아버지를 닮아야 한다는 말씀이겠지요!

그래서 하느님의 속성 세 가지를 주문하시는데, 그저께는 <거룩한 사람이 되라!>, <완전한 사람이 되라!> 하시더니만, 오늘은 <자비로운 사람이 되라!> 하시네요. 벤뎅이 소갈딱지 같은 우리 보고 자비로운 사람이 되어라구요! 이미 여러 차례 용서를 실패한 체험을 지닌 우리에게 이 권고들이 과중하고 고통스럽고 때론 불가능하기까지 한 의무를 부과한다고 생각하면 부담스럽기 짝이 없습니다.

용서하는 사람과 용서받는 사람 중에 더 혜택을 받는 쪽은 어디일까요? 실상 용서의 경우 더 혜택을 받는 쪽은, 용서받는 이보다는 용서를 한 사람일 겁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지금 나에게 용서와 자비를 원하시고 요구하신다면, 그건 바로 나의 영혼이 먼저 평화를 회복하길 바라시는 것이니까요. 자비하신 아버지를 닮아 자비로워지라는 권고에는 무엇보다 먼저 우리가 해방되길 원하시는 예수님의 사랑어린 바람이 담겨 있습니다.

지금 마음이 지옥 같고 분노가 들끓어, 용서가 어려운 상황일 수도 있습니다. 아무리 애를 써도 자기 힘으로는 용서가 어려울 수도 있습니다. 세상사와 엎치락뒤치락하며 살다보면 누구나 이런 도전을 받을 때가 있기 마련입니다. 그래도 괜찮습니다. 그러니 너무 조급하게 생각해 스스로를 볶아대지 말았으면 합니다. 그래도 하느님은 당신에게서 자비를 거두지 않으실 것이니까요.

다만, 하느님께 받은 용서를 간직한 죄인으로서, 용서하시는 자비로운 아버지를 닮아보려 죽음같은 자기 비움(버림)의 강을 건넌 이는 아직 거기까지 이르지 못한 사람에 비해서 용서와 자비라는 보화의 가치를 더 깊이 깨닫고 감사할 수 있습니다. 용서가 나의 일이 아니라 하느님의 일임을 체득했기에 그렇습니다. 거기에 하느님과의 친밀감은 덤입니다.

사랑하는 벗님, 혹시 아직 용서하지 못하는 사람이 있나요? 그만 용서하라네요. 그를 위해서가 아니라 벗님을 위해서 그렇게 하랍니다. 안 된다구요? 벗님은 자비와 용서의 대가이신 하느님을 아버지라 부르고 있습니다. 벗님은 그분을 닮은 아들이고 딸입니다. 벗님도 너그러운 사람이라고 저는 믿습니다. 그런데 혹 그 너그러움이 내 가족이나 내가 좋아하는 사람, 나에게 도움이 될 듯한 사람까지만 미치지는 않는지요? 하느님의 자비는 온 인류에게 미치고 온 삼라만상에까지 이르지요. 

따라서 참 하느님 자녀는 자비의 폭을 끊임없이 확장해 나가는 사람이 아닐까요? 지 새끼 귀한 줄 알고 자기에게 잘해 주는 이에게 잘 하는 일은 비단 사람이 아니라 동물들도 그렇게 하지요. 하느님 자녀는 그보다는 더 마음 씀씀이가 넓어야 하지 않을까요?

자비로운 사람은 손해보는 길을 택하지만 언제나 넉넉합니다. 인색한 사람은 이익이 될 듯한 길을 택하지만 결국은 쫄딱 망합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우리 보고 너무 정확한 잣대로
옳고 그름을 따지고 손익을 따지지 말라고 하시네요. 그냥 좀 손해보고 나에게 잘 해 주는 사람만이 아니라 잘 못 해 주는 사람들을 축복해주고 기도해주라네요. 남을 함부러 심판하지도 말고 용서하라고 하네요. 내 것 챙기려 애쓰지 말고 자꾸만 퍼 주라고 하네요. 퍼 주면 훨씬 후하게 받게 될 거라면서...

오늘 그렇게 한번 해 보실래요? 오늘은 좀 손해보는 날 됩시다. 오늘은 퍼주는 날 됩시다. 오늘은 따지지 말고 용서하는 날 됩시다. 후후 나중에 몇 배로 받게 될 그 날을 떠올리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