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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상선(바오로) 신부님

~ 사순 제 2주일 / 오상선 신부님 ~

 


주님께서는 아브람과 계약을 맺으시며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나는 이집트 강에서 큰 강 곧 유프라테스 강까지 이르는 이 땅을 너의 후손에게 준다."(창세 15,18)

어제도 보았듯이 계약에는 당사자가 있고 당사자간의 쌍방의 의무가 조건으로 제시되는 법입니다. 그런데 하느님께서는 일방적으로 아브람에게 큰 땅을 선물로 주시겠다고 합니다. 그럼 아브람의 의무는 무엇이었을까요? 명시적으로 언급 안 되고 있지만, 유추해 보건데, 그냥 믿기만 하면 됩니다. "아브람이 주님을 믿으니, 주님께서 그 믿음을 의로움으로 인정해 주셨다."(창세 15,6)고 하니까요. "에이, 설마요..." 하지 않고, "예, 고맙습니다. 그리 믿습니다. 아멘." 하면 됩니다. 아버지가 아들에게 당신 재산의 일부를 상속으로 나누어 주시겠다는데, "예, 고맙습니다." 하며 감사하면 될 일이지요. "말로만 그렇게 하시고 나중에 딴소리 하실거죠?" 하거나 "에이, 줄려면 더 많이, 더 좋은 것, 그거 말고 딴 것 주세요." 이렇게 말해서는 안 되겠지요?

이렇게 하느님께서 아브람과 맺으신 계약에서 하느님은 부르시고 주도하시며, 아브람은 믿고 따릅니다. 그런데 "할례"와 같이 계약 이행을 위한 인간 편의 의무를 요구하시지 않고(창세 17,9-14) 하느님 편에서만 후손과 땅에 대해 약속하십니다. 인간에게 무엇을 요구하시기 이전에 당신께서 호의와 자애로 이루어 주실 미래를 드러내시는 겁니다. 그러니 우리 인간이 '예' 한다면 계약은 성사되고, '아니오' 한다면 그 복을 걷어차 버리는 것이 됩니다.

사실 오늘 말씀을 묵상하면서 저는, "나는 주님이다. 이 땅을 너에게 주어 차지하게 하려고 너를 칼데아 우르에서 이끌어 낸 이다."(창세 15,7) 하시는 말씀에 꽂혀서 오래 머물렀습니다. 마치 이제 떠나게 될 우리 벗들에게 속삭이시는 말씀, 약속의 말씀으로 들렸기 때문입니다. 벗들을 이곳에서 빼내시는 분이 주님이시고 더 좋은 선물을 주시기 위해서라고 자꾸만 들립니다. 자비하신 하느님께서 우리를 불러내시는 이유는 '더 좋은 것'을 주시기 위함이라는 것을 믿는 사람에게는 아브람이 아브라함이 되는 체험을 하게 해 주실 겁니다. 아멘.

제2독서에서 사도 바오로는 필리피인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만물을 당신께 복종시키실 수도 있는 그 권능으로, 우리의 비천한 몸을 당신의 영광스러운 몸과 같은 모습으로 변화시켜 주실 것입니다."(필리 3,21) 이게 가능한 일일까요? 어떻게 가능할 수 있을까요?

예수님의 거룩한 변모에서 그 해답을 찾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타볼산에서 예수님의 모습이 그렇게 영광스럽게 변하였으니까요. 우리도 가능하지 않을까요?

루카 복음사가는 기도를 특별히 강조하는 사가입니다. 타볼산의 변모 사건을 다루면서도 루카는 다른 복음사가들과는 달리, 예수님이 높은 산에 제자들을 데리고 오르신 이유를 분명하게 '기도하시러'(루카 9,28)라고 꼭집어서 이야기할 뿐더러, 영광스러운 변모 자체도 '기도하시는 중'(루카 9,29)에 일어났다고 밝혀줍니다. 루카에게 있어 '높은 산'은 바로 '하느님이 계신 곳'이기 때문이지요.

그렇다면 바오로 사도가 예언하는 우리의 몸이 영광스럽게 변하는 것도 '기도' 안에서, 기도를 통해서만 가능하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요? 사람이 가장 아름다울 때는 언제일까요? 여러분은 언제 자신의 모습이 가장 아름다워 보이나요? 머리를 새로 하고, 목욕을 깨끗이 하고, 화장을 예쁘게 하고, 멋진 새옷을 장만해 입고 그럴 때가 아름답지요.

그러나 사람이 진짜 아름다울 때는 기도하고 난 후가 아닐까요? 깊이 기도하고 난 후의 수행자의 모습은 맑고 티없는 순수 영혼의 모습으로 변해 있습니다. 기도 안에서 모든 번뇌와 근심걱정을 다 내려놓았으니 맑고 청아한 피부와 눈매, 사심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순수한 마음이 풍겨내는 향기야말로 그 어떤 아름다움보다 더 멋져 보입니다.

오늘 예수님의 모습도 그렇게 멋지고 아름답게 변하였답니다. 바로 '기도' 때문이지요. 기도 안에서 모세와 엘리야를 만나고 하느님을 체험한 까닭입니다.

벗님 여러분은 자신의 얼굴에 자신이 없나요? 아름답지 않다고 여기시나요? 그래서 온갖 미용에 좋다는 음식이나 화장품에 관심이 많으시나요? 성형수술이나 보톡스, 백옥 주사에 맘이 가나요? 그런 데에 보다 기도하는 데에 조금만 더 시간을 투자해 보세요. 하느님과 하느님 나라를 관상하는 이의 모습이 가장 아름답답니다.

오늘 기도 후 맑은 나의 모습을 바라보며 그 아름다움에 흐뭇해 하시는 기쁨 누리시길 축원합니다. 그때 우리는 사도 바오로의 표현대로 '하늘의 시민'(필리 3,20), '하느님 나라의 시민권자'임을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부활의 의미를 새롭게 이해하고 알아듣게 될 겁니다.

그래서 사도 바오로는 '눈물을 흘리며' 자기가 그토록 사랑하고 그리워하며 기쁨이요 화관으로 여기는 필리피인들에게 호소합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원수'(필리 3,18)로 제발 살지 말라고. 왜냐하면 그 길은 반드시 멸망으로 갈 수밖에 없는 길이기 때문이라고. 그런 사람이 어떤 사람이냐고요? 어리석게도 "자기네 배를 하느님으로, 자기네 수치를 영광으로 삼으며 이 세상 것만 생각하며 살아가는 사람들"(필리 3,19)이라고. 여러분은 절대로 그러지 말라고. '하늘의 시민'이 될 기회를 놓치지 말라고.

저 또한 바오로 사도처럼, 벗님 여러분에게 간절히 호소하고 권고합니다. "그러므로 내가 사랑하고 그리워하게 될 벗님 여러분, 나의 기쁨이며 화관인 벗님 여러분, 이렇게 주님 안에 굳건히 서 있으십시오, 아! 사랑하는 여러분!(필리 4,1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