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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상선(바오로) 신부님

~ 사순 제 4주간 월요일 / 오상선 신부님 ~

 

"거기에 왕실 관리가 한 사람 있었는데 그의 아들이 카파르나움에서 앓아누워 있었다."(요한 4,46)

왕실 관리 한 사람이 갈릴래아 카나에 오신 예수님을 찾아와 앓고 있는 아들의 치유를 간청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당신을 믿지 않으면서 표징과 이적 따위나 요구하는 이들에게 많이 지치셨는지, "너희는 표징과 이적을 보지 않으면 믿지 않는(요한 4,48) 족속들이잖아."라고 동문서답을 던지십니다. 예수님과 왕실 관리, 두 사람의 관심사와 바람이 엇갈립니다. 예수님은 그의 믿음에 관심이 있으신데 반해, 그는 앓는 아이의 아버지로서 온 정신이 아들에게 쏠려 있을 테니까요.

"그래도~"(요한 4,19)

이 말씀에 한참을 머물렀습니다. 아주 간결한 접속사에 불과하지만 그 안에서 아버지의 마음, 그리고 하느님의 마음이 진하게 담겨 있음을 봅니다.

예수님의 동문서답이 어쩌면 완곡한 거절일 수도 있었는데, 그는 포기하지 않고 재차 간청을 이어갑니다. "그래도~"라는 말씀에는 아들의 회복을 위한 간절함과, 지금은 저렇게 말씀하셔도 반드시 들어주시리라는 믿음이 자기도 모르게 이미 깔려 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그 믿음의 싹에서 풍기는 미세한 향기를 감지하십니다. 그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가거라, 네 아들은 살아날 것이다."(요한 4,50)

아버지 안에 돋아난 믿음의 싹을 믿어주신 예수님께서 진정으로 그가 바라마지 않던 말씀을 하시는 겁니다. 이제 두 사람의 관심사와 바람은 하나가 됩니다. 그는 아들을 치유해 주실 예수님을 믿고, 예수님은 그의 믿음의 싹이 언젠가 큰 나무가 되리라 믿어 주십니다.

"그 사람은 자기에게 이르신 말씀을 믿고 떠나갔다. ... 그리하여 그와 그의 온 집안이 믿게 되었다."(요한 4,50.53) 예수님의 믿음 역시 응답을 받습니다. 이처럼 그는 예수님의 믿음에 실망을 드리지 않습니다.

"그래도~"

벗님 여러분은 이런 믿음을 체험한 적이 있나요? 절박한 간청이 단박에 거절당한 순간에, 그래도~ ... 믿고 기다렸는데 결정적인 순간에 처절히 버림받고, 그래도~ ... 벼랑 끝으로 끝으로 몰리면서도 믿고 버티었는데 겨우 딛고 선 나머지 발마저 떼라고 하실 때, 그래도~ ... 믿고 바랐던 바가 다 무너져 더 청할 무엇도 남아 있지 않은 순간에, 그래도~ ...

믿음은 머릿속에 고이 모셔둔 개념이나, 책상 위에서 침 튀기며 증명하는 논리를 넘어섭니다. 믿음은 생각과 마음과 영혼이 몸과 함께 반응하고 견지하는 의지적 실제이고 그 표현이기에 목숨을 바치는 순교까지도 가능한 겁니다.

이 "그래도~"의 믿음을 먼저 발휘하고 계신 분은 하느님이십니다. 그분께서 인류와 함께하시면서 "그래도~"를 얼마나 수없이 되뇌이셨겠습니까! 지금도 나약하고 부족한 우리의 실수와 죄악에 여전히 "그래도~"를 반복하며 새 길을 찾아주려 살피고 계실 겁니다.

"보라, 나 이제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리라. 예전의 것들은 이제 기억되지도 않고 마음에 떠오르지도 않으리라."(이사 65,17)

하느님의 무수한 "그래도~"가 이렇게 새 창조의 장을 활짝 열어젖힙니다. 새 하늘과 새 땅은, 죄인인 너희가 싹 바뀌면, 잘못된 걸 다 뒤집으면, 죄악의 결과를 다 되돌리면 그때 이루어 주시겠다고 미뤄두는 조건부 계획이 아닙니다. 오히려 새 하늘과 새 땅은, 우선 믿고 보시는, 번번이 배신당해도 또 믿어 주시는 하느님의 "그래도~" 덕분에 아직 죄인인 채, 부정하고 불결한 채, 불순하고 탐욕스러운 채로 맞이하게 되는 귀한 선물인 것입니다.

4월이 시작되고 사순 제 4주간에 접어들고 있습니다. 시작 때의 기개와 포부가 점점 쪼그라들어 가고 초라해지는 중인가요? 괜찮습니다. 아직 모든 것이 가능한 건 실패의 순간마다 "그래도~" 하시며 인자한 시선으로 우리 등을 두드려 주시는 하느님의 믿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에 대한 하느님의 굳은 믿음에 우리가 보답할 수 있는 오직 한 가지를, 시편 작가의 입을 빌어 고백합니다.

"저는 오로지 주님만 믿나이다. 가련한 저를 굽어보시니 당신 자애로 저는 기뻐하고 즐거워하리이다."(입당송) 아멘.

사랑하는 벗님 여러분, 오늘 이 "그래도~"를 되뇌이며 하느님이 나를 얼마나 믿어주시는지, 또 나도 어떤 상황에서든지 주님이 나와 함께 하심을 믿음으로써 새로운 창조의 기쁨을 체험하는 날 되시길 축원합니다. "그래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