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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상선(바오로) 신부님

~ 지극히 거룩하신 예수성심 대축일 / 오상선 신부님 ~

지극히 거룩하신 예수 성심 대축일(사제 성화의 날)
(에제34,11-16/로마5,5ㄴ-11/루카15,3-7)

제1독서

<내가 몸소 내 양 떼를 먹이고, 내가 몸소 그들을 누워 쉬게 하겠다.>
▥ 에제키엘 예언서의 말씀입니다. 34,11-16
11 주 하느님이 이렇게 말한다.
나 이제 내 양 떼를 찾아서 보살펴 주겠다.
12 자기 가축이 흩어진 양 떼 가운데에 있을 때,
목자가 그 가축을 보살피듯, 나도 내 양 떼를 보살피겠다.
캄캄한 구름의 날에, 흩어진 그 모든 곳에서 내 양 떼를 구해 내겠다.
13 그들을 민족들에게서 데려 내오고 여러 나라에서 모아다가,
그들의 땅으로 데려가겠다.
그런 다음 이스라엘의 산과 시냇가에서,
그리고 그 땅의 모든 거주지에서 그들을 먹이겠다.
14 좋은 풀밭에서 그들을 먹이고,
이스라엘의 높은 산들에 그들의 목장을 만들어 주겠다.
그들은 그곳 좋은 목장에서 누워 쉬고,
이스라엘 산악 지방의 기름진 풀밭에서 뜯어 먹을 것이다.
15 내가 몸소 내 양 떼를 먹이고, 내가 몸소 그들을 누워 쉬게 하겠다.
주 하느님의 말이다.
16 잃어버린 양은 찾아내고 흩어진 양은 도로 데려오며,
부러진 양은 싸매 주고 아픈 것은 원기를 북돋아 주겠다.
그러나 기름지고 힘센 양은 없애 버리겠다.
나는 이렇게 공정으로 양 떼를 먹이겠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제2독서

<하느님께서는 우리에 대한 당신의 사랑을 증명해 주셨습니다.>
▥ 사도 바오로의 로마서 말씀입니다. 5,5ㄴ-11
형제 여러분,
5 우리가 받은 성령을 통하여
하느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어졌습니다.
6 우리가 아직 나약하던 시절,
그리스도께서는 정해진 때에
불경한 자들을 위하여 돌아가셨습니다.
7 의로운 이를 위해서라도 죽을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혹시 착한 사람을 위해서라면 누가 죽겠다고 나설지도 모릅니다.
8 그런데 우리가 아직 죄인이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돌아가심으로써,
하느님께서는 우리에 대한 당신의 사랑을 증명해 주셨습니다.
9 그러므로 이제 그분의 피로 의롭게 된 우리가 그분을 통하여
하느님의 진노에서 구원을 받게 되리라는 것은 더욱 분명합니다.
10 우리가 하느님의 원수였을 때에
그분 아드님의 죽음으로 그분과 화해하게 되었다면,
화해가 이루어진 지금 그 아드님의 생명으로
구원을 받게 되리라는 것은 더욱 분명합니다.
11 그뿐 아니라 우리는 또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느님을 자랑합니다.
이 그리스도를 통하여 이제 화해가 이루어진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나와 함께 기뻐해 주십시오. 잃었던 내 양을 찾았습니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5,3-7
그때에 예수님께서 바리사이들과 율법 학자들에게
3 이 비유를 말씀하셨다.
4 “너희 가운데 어떤 사람이 양 백 마리를 가지고 있었는데
그 가운데에서 한 마리를 잃으면, 아흔아홉 마리를 광야에 놓아둔 채
잃은 양을 찾을 때까지 뒤쫓아 가지 않느냐?
5 그러다가 양을 찾으면 기뻐하며 어깨에 메고
6 집으로 가서 친구들과 이웃들을 불러,
‘나와 함께 기뻐해 주십시오. 잃었던 내 양을 찾았습니다.’ 하고 말한다.
7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이와 같이 하늘에서는, 회개할 필요가 없는 의인 아흔아홉보다
회개하는 죄인 한 사람 때문에 더 기뻐할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은 우리에게 당신 심장을 열어 주신 예수님의 마음 안으로 들어가 하느님 마음을 만나는 복된 날입니다. 우리는 미사의 말씀들을 통해 목자의 모습으로 당신을 드러내시는 주님을 더 친근하고 친밀히 체험합니다.

"나 이제 내 양 떼를 찾아서 보살펴 주겠다."(에제 34,11)

에제키엘 예언자는 하느님께서 당신 양 떼인 이스라엘을 어떻게 보살피실지 매우 구체적으로 전합니다. "보살피겠다, 구해 내겠다, 모아다가 데려가겠다, 먹이고, 목장을 만들어 주겠다, 누워 쉬게 하겠다, 찾아내고, 도로 데려오며, 싸매 주고, 북돋아 주겠다." 목자의 존재는 유목민인 이스라엘 백성에게 "돌봄"의 대표적 표상이기에, 그들에게 목자의 이러한 행동거지는 참으로 익숙합니다.

"그 가운데 한 마리를 잃으면 ... 잃은 양을 찾을 때까지 뒤쫒아 가지 않느냐?"(루카 15,4)

목자의 집념이 손에 잡힐 듯 다가옵니다. "찾을 때까지!" 결코 포기하지 않겠다는, 반드시 찾아내서 생명의 울 안으로 다시 넣어 주겠다는 사랑의 의지입니다. 한 마리쯤은 포기해도 되지 않을까 하는 포기와 타협의 기미는 손톱만큼도 보이지 않습니다. 이처럼 모든 걸 다 거는 목자의 모습에는 아버지께서 맡기신 양떼를 위해 죽음까지 불사한 예수님의 모습이 담겨있습니다.

제2독서에서 사도 바오로는 예수님을 통해 이루어진 하느님과 인류의 화해를 이야기합니다. "그분의 피로 의롭게 된 우리"(로마 5,9)는 "아드님의 죽음으로 그분과 화해하게"(로마 5,10) 되었고, 또 "아드님의 생명으로 구원을 받게"(로마 5,10) 되었습니다.

양들을 위해 목숨을 바치는 착한 목자는 자기의 사랑이 희생과 직결된다는 걸 모르지 않으면서도 양이 있는 곳으로 달려갑니다. 한 마리라도, 단 한 마리라도 그에겐 너무나 소중하기 때문입니다.

길 잃은 양을 찾아나서는 예수님의 그 마음이 곧 하느님의 마음입니다. 사실 인간이 진정 위안과 안식을 얻을 곳은 그 마음 밖에 달리 없습니다. 그 마음을 향한 허기와 갈증이 인간으로 하여금 무언가를 찾게 하고 추구하게 만드는 것인데, 그 진원지를 제대로 인식하는 이는 그리 많지 않지요. 그런데 세상 안에서 계속 여기저기 헛다리만 짚고 있다면 아무리 파고 들어도 공허감은 더 커질 뿐입니다. 돈도 명예도 성공도 인기도 취미나 사교도 인간에게 진정한 본향을 제공해 주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마음이 모든 인간의 본향입니다.

"주님은 나의 목자, 아쉬울 것 없어라."(화답송)
욕구에 사로잡혀 살아가게 되면 이 세상은 온통 아쉬운 것 투성이지만, 세상의 주인이신 주님을 소유하고 그 마음 안에서 살아가면 모든 것이 충만합니다. 우리를 품고 계신 그분 마음이 "보살피고 먹이고 싸매 주고 북돋아 주고 쉬게 하길" 원하시니 참 목자이신 주님의 마음에 머무르는 영혼에게는 부족할 것이 없습니다.

예수님은 당신 마음이 가는 대로 움직이십니다. 사랑이 흐르는 곳으로 달리십니다. 그 마음의 셈법은 세상 것과 천지차이로 다릅니다. 단 한 마리의 양, 단 한 사람의 죄인 때문에 목숨을 던질 수 있는 어리석은 사랑이 그분 마음에 들어 있습니다.

"나와 함께 기뻐해 주십시오. 잃었던 내 양을 찾았습니다."(루카 15,6)
사랑하는 벗님 여러분, 목자의 이 목소리가 들리십니까? 예수님은 어쩌면 이 기쁨 가득한 환호를 십자가상 죽음의 마지막 순간에 외치고 싶으셨을 것 같습니다. 바로 벗님을 위하여 말입니다.

"우리가 받은 성령을 통하여 하느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어졌습니다."(로마 5,5)
이제 어질고 겸손한 그 마음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어졌습니다. 그러니 벗님, 우리 마음이 그 사랑에 절여지는 것을 두려워하지 맙시다. 이미 마음과 마음이 닿았고 죽음보다 강한 사랑이 스며들고 있으니까요.

"사랑의 불가마이신 예수 성심, 저희를 위하여 빌어 주소서." 아멘.

온유하고 겸손하신 지극히 거룩하신 예수 성심이 벗님의 마음을 사랑으로 가득 채워 주시길 축원합니다. 또한 사제성화의 날을 맞아 모든 사제들이 착한 목자이신 예수님의 마음으로 양떼들을 위해 헌신할 수 있도록 기도하는 오늘 되시길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