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14일 연중 제6주간 화요일
제1독서
<내가 창조한 사람들을 이 땅 위에서 쓸어버리겠다.>
▥ 창세기의 말씀입니다.6,5-8; 7,1-5.10
5 주님께서는 사람들의 악이 세상에 많아지고,
그들 마음의 모든 생각과 뜻이 언제나 악하기만 한 것을 보시고,
6 세상에 사람을 만드신 것을 후회하시며 마음 아파하셨다.
7 그래서 주님께서 말씀하셨다.
“내가 창조한 사람들을 이 땅 위에서 쓸어버리겠다.
사람뿐 아니라 짐승과 기어 다니는 것들과 하늘의 새들까지 쓸어버리겠다.
내가 그것들을 만든 것이 후회스럽구나!”
8 그러나 노아만은 주님의 눈에 들었다.
7,1 주님께서 노아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네 가족들과 함께 방주로 들어가거라.
내가 보니 이 세대에 내 앞에서 의로운 사람은 너밖에 없구나.
2 정결한 짐승은 모두 수놈과 암놈으로 일곱 쌍씩,
부정한 짐승은 수놈과 암놈으로 한 쌍씩 데려가거라.
3 하늘의 새들도 수컷과 암컷으로 일곱 쌍씩 데리고 가서,
그 씨가 온 땅 위에 살아남게 하여라.
4 이제 이레가 지나면, 내가 사십 일 동안 밤낮으로 땅에 비를 내려,
내가 만든 생물을 땅에서 모두 쓸어버리겠다.”
5 노아는 주님께서 명령하신 대로 다 하였다.
10 이레가 지나자 땅에 홍수가 났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바리사이들의 누룩과 헤로데의 누룩을 조심하여라.>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8,14-21
그때에 14 제자들이 빵을 가져오는 것을 잊어버려,
그들이 가진 빵이 배 안에는 한 개밖에 없었다.
15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너희는 주의하여라.
바리사이들의 누룩과 헤로데의 누룩을 조심하여라.” 하고 분부하셨다.
16 그러자 제자들은 자기들에게 빵이 없다고 서로 수군거렸다.
17 예수님께서는 그것을 아시고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어찌하여 빵이 없다고 수군거리느냐?
아직도 이해하지 못하고 깨닫지 못하느냐? 너희 마음이 그렇게도 완고하냐?
18 너희는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고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느냐?
너희는 기억하지 못하느냐?
19 내가 빵 다섯 개를 오천 명에게 떼어 주었을 때,
빵 조각을 몇 광주리나 가득 거두었느냐?”
그들이 “열둘입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20 “빵 일곱 개를 사천 명에게 떼어 주었을 때에는,
빵 조각을 몇 바구니나 가득 거두었느냐?”그들이 “일곱입니다.” 하고 대답하자,
21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아직도 깨닫지 못하느냐?”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건물이 낡고 험하게 되어 여기저기서 삐걱대는 소리가 나면, 두 가지 해법을 놓고 고심을 하게 됩니다. 하나는 싹 다 밀어버리고 새로 짓는 것이죠. 이 방법은 좋기는 한데 일단 비용이 많이 들고 역사의 흔적은 다 사라져 없어진다는 단점이 있습니다. 그래서 또 한가지의 방법은 소위 '리뉴얼' 내지는 '리모델링'을 하는 것입니다. 이 경우, 자주 손 봐야하고 새로운 맛은 덜 하지만, 우선 비용이 적게 들고 살아온 흔적들을 남길 수 있다는 것입니다.
유럽은 리모델링을 주로 하고, 우리나라는 신축을 주로 하지요. 그 이유는 유럽은 아예 기초와 뼈대가 든든한 건물들이 대부분이라 내부만 손대는 것이 훨씬 비용이 적게 들기 때문이고 역사 보존 의식도 아주 강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는 상대적으로 기초와 뼈대가 튼튼하지 못한 건축물이 대부분이고 또 개발이라는 미명 하에 좀 독재적인 방법으로 막 때려부수고 새로운 건물들을 짓게 된 것이지요. 문화재와 역사보존 의식도 먹고사는 문제보다 늘 뒷전에 있는 것도 한 이유이기도 합니다.
구약의 하느님께서는 오늘 당신이 만드신 모든 살아있는 것들에 환멸을 느끼시고 모두 다 싹 쓸어버리시고 새로운 세상을 시작하시려 합니다. 대신 신약의 예수님께서는 당신 자신을 희생제물로 바쳐서라도 망가지고 있는 인간성을 회복시키는 구상을 하시는 것 같습니다. 아버지는 '신축'파이시고 아드님은 '리모델링'파라고나 할까요. 여러분은 어느 파인가요?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창조하시고나서, 특히 당신 모습대로 만든 사람을 보시고 무척이나 좋아하셨지요. 그런데 뱀의 유혹에 빠져 당신 말을 듣지 않고 죄에 빠진 아담과 하와, 그리고 그 아들 카인의 친족 살해 등을 보며 마음이 많이 아프셨지요. 그래도 어떻게든 그들을 살려보려고 무던히 애를 쓰셨지요. 그런데 사람들은 갈수록 악마적 본성을 드러내기 시작하는데 그 절정은 바벨탑이었지요. 인간의 교만이 하늘을 찌를 기세였습니다. "사람들의 악이 세상에 많아지고 그들 마음의 모든 생각과 뜻이 언제나 악하기만"(창세 6,5) 한 것이 하느님 마음을 아프게 합니다. 하느님께서는 더이상은 안되겠다 판단하시고 대홍수를 통해 싹쓸이를 계획하십니다. "세상에 사람을 만드신 것을 후회하시며 마음 아파하셨다."(창세 6,6)고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두 번에 걸친 빵의 기적을 통해 사랑의 나눔이 하늘나라의 표징임을 보여주셨고, 많은 이들이 그를 받아들이고 기쁨을 누립니다. 하느님께서 창조 때 주신 그 아름다운 인간의 모습을 회복할 수 있게 되는가 싶었습니다. 그런데 그 이후 바리사이들과 율법학자 등 소위 당시에 잘 나간다는 사람들은 딴지를 걸기 시작합니다. 다시 악의 세력들이 발동하기 시작함을 느끼신 걸까요. 그래서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주의하여라. 바리사이들의 누룩과 헤로데의 누룩을 조심하여라.” (마르 8,15)
누룩은 중요한 음식에 꼭 필요한 재료인 동시에, 섞인 재료를 발효시키거나 썩히는 등 영향을 미치는 특성이 있어 부패와 타락의 근원을 가리키거나 인간의 악한 성향을 상징하는 단어로 쓰입니다. 제자들이 그들의 악의에 물들거나 좌우되지 않기를 바라시는 마음에서 하신 말씀일 것입니다.
누룩은 빵을 부풀게 합니다. 정치, 경제적으로 기득권을 누리고 있는 바리사이들과 헤로데도 누룩을 갖고 있습니다. 그들은 그들의 누룩으로 행복한 나라를 만들겠다는 청사진을 제시하고, 부자가 되게 해주겠다고 유혹합니다. 율법을 우리가 말하는대로 잘 지키면 하늘나라를 보장해 주겠다고도 합니다.
예수님이 제시하시는 누룩은 소박한 빵의 나눔을 통해서 모두가 배부르게 되는 하느님 나라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은 바로 이런 누룩이 되도록 불림받은 사람들이지요. 정치논리와 경제논리에 속지 않고 복음논리와 나눔논리의 신비를 깨달아 체험하는 오늘이길 빕니다.
누룩은 부풀어 오르게 합니다. 사실을 있는 그대로가 아니라 부풀리고 떠벌려서 마치 사실인 양 왜곡하게 됩니다. 바리사이들은 율법이 하느님의 사랑의 계명인 것을 부풀리고 떠벌려서 그 원래 의미를 왜곡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큰 짐만 안겨 주었습니다. 그래서 누룩은 부패하게 만듭니다. 유대인들에게 있어 '누룩 없는 빵'은 잊을 수 없는 구원체험입니다.
그런 짓을 하지 말라고 주님께서는 오늘 우리에게 재촉하십니다. 사랑이 아닌 이유로 다른 사람에 대한 검증되지 않은 이야기들을 떠벌리고 부풀려서 그 사람을 아프게 만드는 일이 바로 그런 위선이 아닐까요. 오늘은 뭐든지 자꾸만 부풀리려는 우리 마음의 못된 관성을 주시하며 부풀어 오르지 못하게 한번 해봅시다. 부풀리는만큼 상처는 덧나게 되고 가라앉는만큼 상처는 치유됩니다.
"그러나 노아만은 주님의 눈에 들었다."(창세 7,1)
이런 인간의 교만과 부패로 인하여 모든 피조물과 인류에게 닥칠 막막한 징벌의 어둠 사이에도 희망이 존재합니다. 의인인 노아와, 그가 온갖 조롱 속에 순명으로 건조한 방주는 '가죽옷, 카인의 표, 셋의 탄생'처럼 하느님께서 세상에 주시는 사랑의 기회요 자애의 표상입니다. 이제는 마지막일 것 같은 암흑의 순간을 비집고 들어오는 여명처럼 그를 통해 세상은 귀한 생명을 이어갑니다.
사람을 만드신 것을 후회하시던 하느님은 홍수 이후에 당신 마음을 돌이키실 것입니다. 사람의 마음을 개조하시는 것이 아니라 악한 뜻을 품기 마련인 인간의 실존을 받아들이시는 것으로요.
만물과 세상을 이롭게 할 능력과 지위를 부여받은 사람이 역으로 만물과 세상을 부패와 타락으로 물들이고 멸망시킬 파괴력을 지닌 존재도 될 수 있습니다. 나는 세상을 이롭게 하는 누룩일지 해롭게 하는 누룩일지 예수님의 시선으로 자신을 보고 또 봅니다. 오늘 정월대보름입니다. 보름달처럼 넉넉한 마음과 맑은 눈과 귀로 보고 들으며 세상을 밝히는 누룩이 되라고 우리를 초대하시는 것 같습니다.
선악과를 따 먹은 조상들 덕분에 우리 안에 선을 아는 능력도 있지만 악을 아는 능력도 있습니다. 선을 지향하고 악을 눌러 이겨야만 우리는 원래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보시니 좋았던 그 모습으로 되돌아갈 수 있습니다. 그때 닫혔던 에덴동산 문이 활짝 열리고 영원한 생명의 나라, 하늘 나라가 우리에게 손짓하게 될 것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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