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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상선(바오로) 신부님

~ 주님 수난 성지주일 / 오상선 신부님 ~

주님 수난 성지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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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주간의 시작인 주님 수난 성지주일입니다. 예수님께서 파스카의 신비를 완성하시기 위해 예루살렘에 들어서십니다. 예루살렘 입성에 관한 복음은 입당 행렬 전에 봉독되고, 미사 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기가 길게 읽힙니다. 오늘은 당신 백성을 향한 예수님의 눈길이 제 마음에 맺힙니다.

"그러나 너희는 그래서는 안 된다."(루카 22,26)

예수님과 최후의 만찬을 나누는 이 순간까지 제자들은 "누구를 가장 높은 사람으로 볼 것이냐는 문제로 말다툼"(루카 22,23)을 벌입니다. 그런 그들에게 예수님께서 간곡히 당부하십니다. 당신 이름으로 세워질 하느님 백성의 교회는, 제2독서인 필리피서에서 봉독되듯이 '낮춤과 비움'의 뿌리 위로 가지를 뻗어 올려야 합니다. 그래서 당신이 친히 먼저 보여주셨듯이 힘, 명예, 돈으로 지배하는 세상 원리와 역행하는 질서를 근간으로 합니다.

"너희에게 부족한 것이 있었느냐?"(루카 22,35)

자상한 눈길로 우리 모두를 향해 물으십니다. 물론 세상살이의 격류를 헤쳐가는 우리에게 물리적으로 부족한 게 없지는 않을 겁니다. 그런데 조금만 영의 눈을 활짝 열고 바라보면, 결핍의 순간마다 어떤 방식으로든 채워주시는 하느님을 놀랍게 체험하지요. 또 때에 따라서는 필요한 것을 챙기라고 허용하시는데, 그 둘 사이의 분별 기준은 주님의 말씀일 것입니다.

"주님께서 몸을 돌려 베드로를 바라보셨다."(루카 22,61)

아니라고 잡아떼었지만 결국 베드로는 예수님을 세 번이나 모른다고 부인했지요. 닭 울음 소리에 놀라 예수님의 예고를 깨달은 베드로의 처참하고 황망하고 수치스런 감정을 다독이고 녹여주시며 "괜찮다"고 말씀하시는 눈빛은, 때때로 한 눈을 팔고 발을 헛디디고 곁길로 삐져 나가는 우리의 배반을 제자리로 돌려놓아 주시는 연민의 사랑입니다.

"아버지, 저들을 용서해 주십시오. 저들은 자기들이 무슨 일을 하는지 모릅니다."(루카 23,34)

그동안의 예수님 눈길이 아직 자리싸움이나 하는 제자에게, 당신을 배반하는 제자에게 향한 것이라면, 이 말씀의 눈길은 폭력과 조롱으로 당신에게 직접 해를 가하고 있는 유다인들과 로마병사들을 향한 것입니다. 예수님이 받으신 모욕과 수모, 그에 대한 예수님의 반응은 제1독서인 주님의 종의 셋째 노래에 잘 드러나 있지요.

"그러나 주 하느님께서 나를 도와주시니 나는 수치를 당하지 않는다. ... 나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을 것임을 안다."(이사 50,7)

예수님께는 수모와 모욕 조롱에 노출된 것이 부끄럽고 수치스러운 것이 아니라, 거기에 휩쓸려 하느님의 피조물을 증오하고 복수심을 품는 것이 부끄럽고 수치스러운 일이기에, 당신이 겪는 고통과 물리적으로 해를 가하는 이들을 분리하시고, 오히려 악을 행하는 그들에게 연민과 자비 가득한 눈길을 보내시는 것입니다.

당장 코 앞에서 벌어지는 일에 파르르 떨고 약간의 손해에도 핏대를 올리는 우리는 그 일에 숨겨진 거대한 우주적 인과 관계나 하느님의 뜻, 신비적 의미를 모릅니다. 지금 내게 해가 되는 일, 사람, 사건 역시 누군가 "무슨 일을 하는지도 모르면서" 행하는 역할 수행일 수 있는데도 말입니다. 우리는 모두 그처럼 서로서로에게 슬프고 아픈 영향을 미치는 불쌍한 존재들일지도 모릅니다. 자기와 이웃을 불쌍히 보는 연민으로 우리 눈빛이 예수님의 눈빛을 닮아가길 소망합니다.


이제까지 저를 사로잡은 눈길이 예수님의 눈길들이었다면, 마지막은 복음 말미에 등장하는 여인들의 눈길입니다.

"갈릴래아에서부터 예수님과 함께 온 여자들도 뒤따라가 무덤을 보고, 또 예수님의 시신을 어떻게 모시는지 지켜보고 나서, 돌아가 향료와 향유를 준비하였다."(루카 23,55-56)

당시 사회적 약자였던 여성들은 예수님께 많은 위로와 힘을 얻었습니다. 존경하고 사랑하는 이의 허망한 죽음 앞에서 여인들은 도망가거나 모르는 체 하거나 배반하지 않고, 찬찬히 시신 수습과 안장의 과정을 바라봅니다. 이는 진정 관상의 눈빛입니다. 애도와 사랑, 연민과 아쉬움, 그리고 마지막까지 정성을 다하려는 충실함으로 그들은 시선을 예수님께 고정합니다.

그간 예수님께서 당신 제자와 적대자와 온 인류에게 보낸 자비와 연민의 눈길이 여인들의 이 소박한 사랑의 눈빛으로 보상받았으리라 감히 추측해 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바라시는 건 그리 거창한 것이 아니기에 그렇습니다. 여인들의 이 꾸밈없이 진실된 사랑의 눈길은, 우리 사랑의 눈길에 목마르고 허기지신 예수님께 이번 성주간을 통해 무엇을 드려야 할지, 실패로 점철된 사순시기를 아슬아슬 길게 지나온 우리를 다시 한 번 일깨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