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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상선(바오로) 신부님

~ 부활 제 2주간 목요일 / 오상선 신부님 ~

부활 제2주간 목요일(사도 5,27-33) ( 요한 3,31-36)

 

제1독서

<우리는 이 일의 증인입니다. 성령도 증인이십니다.>
▥ 사도행전의 말씀입니다. 5,27-33
그 무렵 경비병들이 27 사도들을 데려다가 최고 의회에 세워 놓자 대사제가 신문하였다. 28 “우리가 당신들에게 그 이름으로 가르치지 말라고 단단히 지시하지 않았소? 그런데 보시오, 당신들은 온 예루살렘에 당신들의 가르침을 퍼뜨리면서, 그 사람의 피에 대한 책임을 우리에게 씌우려 하고 있소.”
29 그러자 베드로와 사도들이 대답하였다. “사람에게 순종하는 것보다 하느님께 순종하는 것이 더욱 마땅합니다. 30 우리 조상들의 하느님께서는 여러분이 나무에 매달아 죽인 예수님을 다시 일으키셨습니다. 31 그리고 하느님께서는 그분을 영도자와 구원자로 삼아 당신의 오른쪽에 들어 올리시어, 이스라엘이 회개하고 죄를 용서받게 하셨습니다. 32 우리는 이 일의 증인입니다. 하느님께서 당신께 순종하는 이들에게 주신 성령도 증인이십니다.”
33 그들은 이 말을 듣고 격분하여 사도들을 죽이려고 하였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아버지께서는 아드님을 사랑하시고 모든 것을 그분 손에 내주셨다.>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3,31-36
31 위에서 오시는 분은 모든 것 위에 계신다. 땅에서 난 사람은 땅에 속하고 땅에 속한 것을 말하는데, 하늘에서 오시는 분은 모든 것 위에 계신다.
32 그분께서는 친히 보고 들으신 것을 증언하신다. 그러나 아무도 그분의 증언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33 그분의 증언을 받아들이는 사람은 하느님께서 참되심을 확증한 것이다.
34 하느님께서 보내신 분께서는 하느님의 말씀을 하신다. 하느님께서 한량없이 성령을 주시기 때문이다. 35 아버지께서는 아드님을 사랑하시고 모든 것을 그분 손에 내주셨다. 36 아드님을 믿는 이는 영원한 생명을 얻는다. 그러나 아드님께 순종하지 않는 자는 생명을 보지 못할 뿐만 아니라, 하느님의 진노가 그 사람 위에 머무르게 된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 미사의 말씀에는 삼위 하느님의 관계성이 잘 드러납니다.

"하느님께서 보내신 분께서는 하느님의 말씀을 하신다"(요한 3,34).

아버지에게서 파견되신 성자 예수님은 보내신 분의 뜻을 아시고 그분의 말씀을 하십니다. 예수님은 당신 스스로의 말로써 스스로의 영광을 들어높이시지 않으시고 오로지 아버지의 영광을 위해 아버지의 말씀을 하십니다. 사실 예수님께서 바로 아버지의 말씀이시지요.

"아버지께서는 아드님을 사랑하시고 모든 것을 그분 손에 내주셨다"(요한 3,35).

그런 아드님을 하느님은 사랑하십니다. 그리고 예수님에게 모든 것을 주십니다. "모든 것"에는 그야말로 다 들어 있습니다. 권한과 소유를 포함해 성령까지 주십니다. 성령은 아버지와 아드님 사이를 잇는 사랑이고, 사랑의 유대입니다.

아버지께서 아드님에게 주실 가장 크고 중요한 존재는 바로 당신 자신이십니다. 사랑하는 존재 사이에서는 서로에게 자신을 내어주는 증여가 일어납니다. 하느님의 온전한 자기 증여가 아드님을 향해 일어납니다. 성부 하느님은 성자 예수님과 하나이시고 또 성령과 더불어 한 분이십니다.

"아드님을 믿는 이는 영원한 생명을 얻는다"(요한 3,31).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은 당신들끼리의 완전한 사랑 안에 취해 계시지 않고 우리를 그 관계 안으로 초대하십니다. 하느님은 스스로의 충만함에 고립되어 계시지 않고 우리에게 당신을 열어젖히신 겁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믿음으로써 삼위 하느님의 관계 안에 참여합니다. "영원한 생명"은 삼위 하느님과 누리는 지고의 행복입니다.

제1독서에서는 하느님과의 관계에 참여하는 우리가 해야 할 실천적 몫이 구체적으로 밝혀집니다.

"사람에게 순종하는 것보다 하느님께 순종하는 것이 더욱 마땅합니다"(사도 5,29).

감사하게도 사람을 통해 하느님의 뜻이 드러나는 경우에는 큰 문제가 발생하지 않겠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없지 않지요. 오늘 독서 대목에서 이스라엘의 최고 의회 구성원들과 사도들이 맞닥뜨린 대립이 좋은 예가 될 겁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하느님의 아드님으로 믿고 고백하는 우리는 이런 상황에서 누구의 뜻을 따라야 하는지 명백합니다. 비록 하느님께 순종함으로써 많은 것을, 생명까지 잃는다 해도 순종해야 할 분은 오직 하느님이십니다.

이처럼 성 삼위 하느님 안에 참여하는 우리의 믿음은 구체적인 선택과 결단을 요구합니다. 누구에게 순종하느냐에 따라 우리 존재와 방향성은 크게 달라지지요.

"우리는 이 일의 증인입니다. 하느님께서 당신께 순종하는 이들에게 주신 성령도 증인이십니다"(사도 5,32).

우리는 하느님께 순종함으로써 성령을 얻습니다. 하느님께서 당신 아드님에게 "한량없이 주신 성령을" 우리에게도 주십니다. 그 성령의 현존이야말로 우리가 하느님을 모신 그분의 사람임을 증언합니다. 성령께서 우리가 믿고 사랑하는 아드님의 증인이시고, 우리가 참여한 사랑의 관계의 증인이시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벗님! 삶은 우리에게 무수히 선택의 기회를 제공합니다. 누구를, 무엇을, 어떤 방식을, 언제, 어디를 선택할지 우리는 매순간 고민하고 움직이지요. 사람이 아닌 하느님께 순종하는 이는 자기 잇속이나 안위, 편리 등의 세속적 가치를 넘어서 거룩하고 공의로운 하느님의 뜻에 제 뜻을 합치는 사람입니다. 제게 해가 돌아올지라도 그렇습니다.

내 앞에 펼쳐진 기회들 안에서 숨겨진 하느님의 뜻을 찾아내어 선택하는 하루 되시길 축원합니다. 작고 소박해 보여도 그 안에 구원이 있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