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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상선(바오로) 신부님

~ 부활 제 2주일. 하느님의 자비주일 / 오상선 신부님 ~

부활 제2주일, 하느님의 자비 주일

 

제1독서

<신자들은 모두 함께 지내며 모든 것을 공동으로 소유하였다.>
▥ 사도행전의 말씀입니다. 2,42-47
형제들은 42 사도들의 가르침을 받고 친교를 이루며 빵을 떼어 나누고 기도하는 일에 전념하였다.
43 그리고 사도들을 통하여 많은 이적과 표징이 일어나므로 사람들은 저마다 두려움에 사로잡혔다. 44 신자들은 모두 함께 지내며 모든 것을 공동으로 소유하였다. 45 그리고 재산과 재물을 팔아 모든 사람에게 저마다 필요한 대로 나누어 주곤 하였다.
46 그들은 날마다 한마음으로 성전에 열심히 모이고 이 집 저 집에서 빵을 떼어 나누었으며, 즐겁고 순박한 마음으로 음식을 함께 먹고, 47 하느님을 찬미하며 온 백성에게서 호감을 얻었다. 주님께서는 날마다 그들의 모임에 구원받을 이들을 보태어 주셨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제2독서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새로 태어나게 하시어,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다시 살아나신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로 우리에게 생생한 희망을 주셨습니다.>
▥ 베드로 1서의 말씀입니다. 1,3-9
3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느님께서 찬미받으시기를 빕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크신 자비로 우리를 새로 태어나게 하시어,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다시 살아나신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로 우리에게 생생한 희망을 주셨고, 4 또한 썩지 않고 더러워지지 않고 시들지 않는 상속 재산을 얻게 하셨습니다. 이 상속 재산은 여러분을 위하여 하늘에 보존되어 있습니다. 5 여러분은 마지막 때에 나타날 준비가 되어 있는 구원을 얻도록, 여러분의 믿음을 통하여 하느님의 힘으로 보호를 받고 있습니다.
6 그러니 즐거워하십시오. 여러분이 지금 얼마 동안은 갖가지 시련을 겪으며 슬퍼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7 그러나 그것은 불로 단련을 받고도 결국 없어지고 마는 금보다 훨씬 값진 여러분의 믿음의 순수성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밝혀져, 여러분이 찬양과 영광과 영예를 얻게 하려는 것입니다. 8 여러분은 그리스도를 본 일이 없지만 그분을 사랑합니다. 여러분은 지금 그분을 보지 못하면서도 그분을 믿기에, 이루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기쁨 속에서 즐거워하고 있습니다. 9 여러분의 믿음의 목적인 영혼의 구원을 얻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여드레 뒤에 예수님께서 오셨다.>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20,19-31
19 그날 곧 주간 첫날 저녁이 되자, 제자들은 유다인들이 두려워 문을 모두 잠가 놓고 있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오시어 가운데에 서시며, “평화가 너희와 함께!” 하고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20 이렇게 말씀하시고 나서 당신의 두 손과 옆구리를 그들에게 보여 주셨다. 제자들은 주님을 뵙고 기뻐하였다.
21 예수님께서 다시 그들에게 이르셨다. “평화가 너희와 함께!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처럼 나도 너희를 보낸다.” 22 이렇게 이르시고 나서 그들에게 숨을 불어넣으며 말씀하셨다. “성령을 받아라. 23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용서해 주면 그가 용서를 받을 것이고, 그대로 두면 그대로 남아 있을 것이다.”
24 열두 제자 가운데 하나로서 ‘쌍둥이’라고 불리는 토마스는 예수님께서 오셨을 때에 그들과 함께 있지 않았다. 25 그래서 다른 제자들이 그에게 “우리는 주님을 뵈었소.” 하고 말하였다. 그러나 토마스는 그들에게, “나는 그분의 손에 있는 못 자국을 직접 보고 그 못 자국에 내 손가락을 넣어 보고 또 그분 옆구리에 내 손을 넣어 보지 않고는 결코 믿지 못하겠소.” 하고 말하였다.
26 여드레 뒤에 제자들이 다시 집 안에 모여 있었는데 토마스도 그들과 함께 있었다. 문이 다 잠겨 있었는데도 예수님께서 오시어 가운데에 서시며, “평화가 너희와 함께!” 하고 말씀하셨다. 27 그러고 나서 토마스에게 이르셨다. “네 손가락을 여기 대 보고 내 손을 보아라. 네 손을 뻗어 내 옆구리에 넣어 보아라. 그리고 의심을 버리고 믿어라.”
28 토마스가 예수님께 대답하였다. “저의 주님, 저의 하느님!” 29 그러자 예수님께서 토마스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나를 보고서야 믿느냐? 보지 않고도 믿는 사람은 행복하다.”
30 예수님께서는 이 책에 기록되지 않은 다른 많은 표징도 제자들 앞에서 일으키셨다. 31 이것들을 기록한 목적은 예수님께서 메시아시며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여러분이 믿고, 또 그렇게 믿어서 그분의 이름으로 생명을 얻게 하려는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당신이 창조하신 모든 이를 구원하시려는 하느님의 자비를 기리는 날입니다. 오늘 미사의 말씀은 믿음을 통한 구원을 이야기합니다.

"이것들을 기록한 목적은 예수님께서 메시아시며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여러분이 믿고 또 그렇게 믿어서 그분의 이름으로 생명을 얻게 하려는 것이다"(요한 20,31).

요한 복음서 저자가 자신의 저술 목적을 밝힌 부분이 오늘 복음 대목의 말미에 나옵니다. 이는 단순히 요한 복음만이 아니라 성경의 모든 책이 지향하는 바일 겁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이 지으시고 사랑하시는 피조물 중 누구도 구원에서 제외되는 걸 원하지 않으십니다. 그 의지의 절정이 외아드님을 세상에 보내신 사랑으로 표현되었지요. 하느님은 성자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이들을 영원한 생명으로 초대하십니다.

"나는 ... 직접 보고 ... 내 손을 넣어 보지 않고는 결코 믿지 못하겠소"(요한 20,25).

이 어깃장에 가까운 항변은 단 한 번의 부재로 부활하신 스승과의 해후를 놓친 토마스의 속상하고 안타까운 심정을 대변합니다. 사실 그도 사랑하는 주님을 얼마나 얼마나 뵙고 싶었겠습니까!

"너는 나를 보고서야 믿느냐?"(요한 20,29)

토마스를 향한 예수님의 말씀은 준엄한 꾸짖음이나 질책, 실망의 표현이 아니라 제자의 심정을 잘 아시기에 던지는 애정 어린 다독임으로 들립니다. "네 맘 다 안다. 그래서 내가 다시 온 거 아니니! 이제 됐지?" 다른 제자들 모르게 슬쩍 윙크까지 날리셨을지도 모를 정도로 사랑이 듬뿍 느껴집니다.

"보지 않고도 믿는 사람은 행복하다"(요한 20,29).

오늘 토마스로 인해 촉발된 이 말씀은 사도들을 통해 전해내려온 신앙을 받아들인 우리 모두를 격려하는 말씀입니다. 그렇다고 "보고 믿는 이들" 즉 신앙의 일세대를 평가절하하시려는 의미도 아닙니다. 두 눈 시퍼렇게 뜬 채 모든 걸 목격하고도 믿지 않는 이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당시 믿음을 선택한 이들이야말로 신앙의 영웅입니다.

제1독서에서는 "신자들"(사도 2,42) 즉 믿는 이들의 생활이 나옵니다.

"사도들의 가르침을 받고 친교를 이루며 빵을 떼어 나누고 기도하는 일에 전념하였다"(사도 2,42).

예수님을 그리스도라 고백하는 이들은 신앙과 삶이 유리된 관습적 율법주의에서 벗어나, 함께 지내고 공동으로 소유하며 빵을 떼어 나누고 하느님을 찬미하며 살아갑니다. 누구의 강요도 아닌, 오직 믿음에서 시작된 새로운 삶의 지평입니다. 실질적인 구원의 삶이 태동한 것이지요.

제2독서에서 사도 베드로는 믿음과 구원의 상관관계를 명확히 못박습니다.

"여러분은 그리스도를 본 일이 없지만 그분을 사랑합니다. 여러분은 지금 그분을 보지 못하면서도 그분을 믿기에 이루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기쁨 속에서 즐거워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의 믿음의 목적인 영혼의 구원을 얻을 것이기 때문입니다"(1베드 1,8-9).

영혼의 구원이 곧 믿음의 목적입니다. 우리는 육의 눈으로 만나본 적 없는 분을 영으로 감지하고 믿음으로써 영원한 생명을 얻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믿는다는 증거는 바로 영혼의 기쁨과 즐거움입니다.

사랑하는 벗님! 오늘 교회가 기억하고 기념하는 하느님의 자비는, 알면 알수록 믿지 않을 수 없고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드러납니다. 그분 품으로 달아들어 숨는 자체가 곧 자비의 품에 자신을 내어맡기는 믿음의 용기입니다. "예수님, 저는 당신께 의탁하나이다!"

부활 팔일 축제를 마감하며 용서와 화해의 은총이 가득한 오늘, 부족하고 죄스런 자신을 잊고 믿음으로 구원을 쟁취하는 축복의 날 되시길 기원합니다. "주님의 자애는 영원하십니다"(화답송 참조).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