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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상선(바오로) 신부님

~ 부활 제 7주간 수요일 / 오상선 신부님 ~

부활 제7주간 수요일

 

제1독서

<나는 하느님께 여러분을 맡깁니다. 그분께서는 여러분을 굳건히 세우시고 상속 재산을 차지하도록 그것을 나누어 주실 수 있습니다.>
▥ 사도행전의 말씀입니다.20,28-38
그 무렵 바오로가 에페소 교회의 원로들에게 말하였다.
28 “여러분 자신과 모든 양 떼를 잘 보살피십시오.
성령께서 여러분을 양 떼의 감독으로 세우시어,
하느님의 교회 곧 하느님께서 당신 아드님의 피로 얻으신 교회를
돌보게 하셨습니다.
29 내가 떠난 뒤에 사나운 이리들이 여러분 가운데로 들어가
양 떼를 해칠 것임을 나는 압니다.
30 바로 여러분 가운데에서도 진리를 왜곡하는 말을 하며
자기를 따르라고 제자들을 꾀어내는 사람들이 생겨날 것입니다.
31 그러니 내가 삼 년 동안 밤낮 쉬지 않고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을 눈물로 타이른 것을 명심하며
늘 깨어 있으십시오.
32 이제 나는 하느님과 그분 은총의 말씀에 여러분을 맡깁니다.
그 말씀은 여러분을 굳건히 세울 수 있고,
또 거룩하게 된 모든 이와 함께 상속 재산을 차지하도록
여러분에게 그것을 나누어 줄 수 있습니다.
33 나는 누구의 은이나 금이나 옷을 탐낸 일이 없습니다.
34 나와 내 일행에게 필요한 것을 이 두 손으로 장만하였다는 사실을
여러분 자신이 잘 알고 있습니다.
35 나는 모든 면에서 여러분에게 본을 보였습니다.
그렇게 애써 일하며 약한 이들을 거두어 주고,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더 행복하다.’고 친히 이르신
주 예수님의 말씀을 명심하라는 것입니다.”
36 바오로는 이렇게 말하고 나서 무릎을 꿇고 그들과 함께 기도하였다.
37 그들은 모두 흐느껴 울면서 바오로의 목을 껴안고 입을 맞추었다.
38 다시는 자기 얼굴을 볼 수 없으리라고 한 바오로의 말에
마음이 매우 아팠던 것이다.
그들은 바오로를 배 안까지 배웅하였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이들도 우리처럼 하나가 되게 해 주십시오.>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17,11ㄷ-19
그때에 예수님께서 하늘을 향하여 눈을 들어 기도하셨다.
11 “거룩하신 아버지, 아버지께서 저에게 주신 이름으로 이들을 지키시어,
이들도 우리처럼 하나가 되게 해 주십시오.
12 저는 이들과 함께 있는 동안,
아버지께서 저에게 주신 이름으로 이들을 지켰습니다.
제가 그렇게 이들을 보호하여,
성경 말씀이 이루어지려고 멸망하도록 정해진 자 말고는
아무도 멸망하지 않았습니다.
13 이제 저는 아버지께 갑니다.
제가 세상에 있으면서 이런 말씀을 드리는 이유는,
이들이 속으로 저의 기쁨을 충만히 누리게 하려는 것입니다.
14 저는 이들에게 아버지의 말씀을 주었는데,
세상은 이들을 미워하였습니다.
제가 세상에 속하지 않은 것처럼 이들도 세상에 속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15 이들을 세상에서 데려가시라고 비는 것이 아니라,
이들을 악에서 지켜 주십사고 빕니다.
16 제가 세상에 속하지 않은 것처럼 이들도 세상에 속하지 않습니다.
17 이들을 진리로 거룩하게 해 주십시오. 아버지의 말씀이 진리입니다.
18 아버지께서 저를 세상에 보내신 것처럼 저도 이들을 세상에 보냈습니다.
19 그리고 저는 이들을 위하여 저 자신을 거룩하게 합니다.
이들도 진리로 거룩해지게 하려는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도 어제에 이어 예수님의 대사제의 기도(복음)와 사도 바오로의 고별사(제1독서)가 계속 이어집니다.

기도를 드리려고 말문을 열 때, 우리는 하느님의 이름에 그분의 속성을 덧붙여 부르곤 합니다. 그분의 무한한 속성 중 어떤 이름을 붙일지는 기도하는 이가 닥친 현실이나 지향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용서를 비는 기도 첫 머리에는 "자비하신 하느님"을, 전쟁을 앞두고 "만군의 주님"을, 아플 때 "치유하시는 주님"을 부르는 것과 같은 맥락이지요.

"거룩하신 아버지"(요한 17,11).
오늘 예수님은 아버지의 거룩함에 기대어 당신의 마음을 쏟아내고 계십니다. "거룩함"은 하느님의 본성입니다. 인간과 구별되는, 인간이 감히 범접할 수 없는 하느님의 고유함인 동시에, 하느님을 닮아야 하는 그분 백성에게 요구되는 덕목이기도 합니다.

"제가 세상에 속하지 않은 것처럼 이들도 세상에 속하지 않습니다."(요한 17,16)
인간의 언어에서 거룩하다는 것은 성별되고 봉헌되었다는 것을 뜻합니다. 세상 목적이 아닌, 하느님만을 위해 따로 떼어진 존재의 특성을 가리키지요. 그래서 예수님은 제자들이 세상에 속하지 않음을 누차 강조하십니다. 그들의 존재는 근본도 목적도 하느님을 향해야 합니다.

"이들을 진리로 거룩하게 해 주십시오. 아버지의 말씀이 진리입니다."(요한 17,17)
우리는 언제 거룩함을 느낍니까? 전례 중 분향 연기와 성가에서 거룩함을 느낄 수도 있고 특정한 복장이나 몸짓에서 거룩함을 감지할 수도 있습니다. 이는 각자의 심성과 체험에 따라 다양할 것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통회하는 영혼, 회심하는 영혼에게서 진정한 거룩함을 봅니다. 그리고 또, 예수님처럼 친구를 위해 자기 목숨을 내놓는 살신성인의 희생 앞에서 매우 강렬하게 거룩함을 느낍니다.

예수님께서 아버지의 말씀인 "진리"로 제자들을 거룩하게 해주십사 청하십니다. 생각을 들추고 골수를 쪼개는 말씀이야말로 만나는 이를 회심으로 이끌어 거룩하게 합니다. 또 예수님께서 친히 실행하셨고 우리에게도 명하신 "가장 큰 사랑"을 실천하려는 원의를 품게 만들지요. 진리를 만난 이들은 주님께로 방향을 돌려, 친구를 위해 목숨을 바치는 가장 큰 사랑에까지 도전하고 싶어하게 됩니다. 교회 역사에서 무수한 성인들과 순교자들의 궤적이 이를 증명하고, 일상 안에서 숨은 희생을 봉헌하고 산화한 이름 없는 의인들의 자취 역시 종교와 상관없이 거룩하고 또 거룩합니다.

"여러분 자신과 모든 양떼를 잘 보살피십시오."(사도 20,28)
제1독서에서 사도 바오로는 에페소 교회 원로들에게 이처럼 당부합니다. 양 떼를 보살피라는 말보다 자신을 잘 보살피라는 말이 앞서는 것은 우연이 아닐 겁니다. 목자가 먼저 거룩해져야 양들이 거룩해질 수 있으니까요. 사도 바오로가 선교 현장에서 보여주었던 삶의 태도, 즉 탐욕을 부리지 않고 모든 면에서 본을 보여주려고 애쓴 노력이 이를 뒷받침합니다. 이는 예수님께서 "저는 이들을 위하여 저 자신을 거룩하게 합니다. 이들도 진리로 거룩해지게 하려는 것입니다."(요한 17,19)라고 하신 말씀과 부합하지요. 그러므로 우리는 전적으로는 아닐지라도 내게 맡겨진 양 떼나 이웃, 가족, 친지, 지인들, 넓게는 내가 속한 사회와 이 세상의 거룩함에 얼마간 책임이 있음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사도 바오로는 하느님의 교회를 "하느님께서 당신 아드님의 피로 얻으신 교회"(사도 20,28)라고 일컫습니다. 교회는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는 그분의 몸입니다.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피로 몸을 씻어 죄에서 해방시키시고 깨끗하게 하셨음을 의미하지요. 또 교회는 신랑이신 그리스도의 신부입니다. 죄와 악으로 부정했던 존재를 당신 피 값으로 속량하시어 흠도 티도 주름도 없게 하시고 다시 당신 것으로 삼으신 신부입니다. 머리이시고 신랑이신 그리스도의 희생제사라는 가장 큰 사랑으로 거듭난 교회는 그래서 거룩합니다. 가장 큰 사랑이 회심을 불렀으니, 거룩함이 거룩함을 부르고 거룩하게 한 것이지요.

하느님의 말씀이고 예수님 자신인 "진리"와 접촉한 영혼은 회심하지 않을 수 없고 예수님처럼 사랑하지 않을 수 없으니, 거룩함에게서, 거룩함으로 초대를 받은 것입니다. 거룩함은 특정 장소나 의복, 의례처럼 눈에 보이는 표지에서뿐만 아니라, 드러나지 않게 세상 곳곳에 스며들어 선한 영향을 미치는 이름 없는 회심자들, 사랑을 실천하는 이들을 통해서도 확장되고 있지요.

사랑하는 벗님 여러분, 우리를 거룩함으로 이끄시기 위해 손을 내미시는 진리의 말씀을 부여잡고, 다가오시는 말씀에 머물러 매일 매일을 충실히 채워나갑시다. 이 고요하고 소박한 발걸음이야말로 하느님의 거룩함과 맞닿아 있다는 걸 잊지 맙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