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 제6주간 토요일 (사도18,23-28)(요한 16,23ㄴ-28)
제1독서
<아폴로는 성경을 바탕으로 예수님께서 메시아이심을 논증하였다.>
▥ 사도행전의 말씀입니다.18,23-28
바오로는 안티오키아에서 23 얼마 동안 지낸 뒤 다시 길을 떠나,
갈라티아 지방과 프리기아를 차례로 거쳐 가면서
모든 제자들의 힘을 북돋아 주었다.
24 한편 아폴로라는 어떤 유다인이 에페소에 도착하였는데,
그는 알렉산드리아 출신으로 달변가이며 성경에 정통한 사람이었다.
25 이미 주님의 길을 배워 알고 있던 그는 예수님에 관한 일들을
열정을 가지고 이야기하며 정확히 가르쳤다.
그러나 요한의 세례만 알고 있었다.
26 그가 회당에서 담대히 설교하기 시작하였는데,
프리스킬라와 아퀼라가 그의 말을 듣고 데리고 가서
그에게 하느님의 길을 더 정확히 설명해 주었다.
27 그 뒤에 아폴로가 아카이아로 건너가고 싶어 하자,
형제들이 그를 격려하며,
그곳의 제자들에게 그를 영접해 달라는 편지를 써 보냈다.
아폴로는 그곳에 이르러,
하느님의 은총으로 이미 신자가 된 이들에게 큰 도움을 주었다.
28 그가 성경을 바탕으로 예수님께서 메시아이심을 논증하면서,
공공연히 그리고 확고히 유다인들을 논박하였기 때문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아버지께서는 너희를 사랑하신다. 너희가 나를 사랑하고 또 믿었기 때문이다.>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16,23ㄴ-28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23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청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그분께서 너희에게 주실 것이다.
24 지금까지 너희는 내 이름으로 아무것도 청하지 않았다.
청하여라. 받을 것이다.
그리하여 너희 기쁨이 충만해질 것이다.
25 나는 지금까지 너희에게 이런 것들을 비유로 이야기하였다.
그러나 더 이상 너희에게 비유로 이야기하지 않고
아버지에 관하여 드러내 놓고 너희에게 알려 줄 때가 온다.
26 그날에 너희는 내 이름으로 청할 것이다.
내가 너희를 위하여 아버지께 청하겠다는 말이 아니다.
27 바로 아버지께서 너희를 사랑하신다.
너희가 나를 사랑하고 또 내가 하느님에게서 나왔다는 것을 믿었기 때문이다.
28 나는 아버지에게서 나와 세상에 왔다가,
다시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 간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내 이름으로!"(요한 16,23)
예수님의 이름 안에 하느님께서 현존하십니다. "예수"는 "주님(야훼)은 구원(도움)" 또는 "주님께서 구원하신다."라는 뜻의 히브리말 "여호수아"에서 유래한 이름입니다. 이를 줄여서 "예수아"로 불린 것을 그리스말로 옮기는 과정에서 "예수스"로 음역된 것이지요. 그러니 우리가 예수님의 이름을 부를 때 이미 그 안에 하느님께서 계십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부르는 동시에 하느님께 믿음과 사랑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구약 시대에 하느님께서 당신 뜻을 전하시려 판관과 임금, 예언자를 무수히 보내셨지만, 우리는 그들의 이름으로, 그들을 통해서 하느님께 청하지 않습니다. 하느님께서 당신과 하나이시며 또 사랑하시는 아들 예수님을 우리에게 주신 이후에 비로소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그분을 통해서 하느님께 청합니다.
"너희가 내 이름으로 청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그분께서 너희에게 주실 것이다."(요한 16,23) 예수님은 죄인이고 부족한 우리를 잘 아시면서도 우리에 대한 신뢰를 거두지 않으시기에, 우리의 청이 당신의 가르침과 분리되지 않을 것이라 믿고 이런 과감하고 대범한 약속을 하십니다.
비정상적으로라도 권력과 명예를 얻기 위해 검은 거래와 청탁이 끊이지 않는 세상이지요. 정당하지 않은 잇권을 욕망하는 이와, 불법인 걸 알면서도 알선하고 중개해서 이득을 취하는 이, 자기 지위와 권력을 이용해 이루어 주고는 대가로 더 큰 부를 일구는 이, 이 세 부류의 사람들은 이미 각자 서로의 욕망을 알고 이용하는 것입니다. 서로가 가진 헛되고 악한 욕망이 풍기는 악취가 서로를 부르는 것이지요.
그런데 그리스도인의 경우, 청을 귀기울여 듣고 계시는 분이 사랑과 정의의 하느님이시고, 하느님 앞에 우리가 들고 나가는 이름이 예수 그리스도이신데, 어느 누가 헛되고 악한 것을 청할 수 있을까요? 개인 영달과 세속적 영화만을 청하는 행위는 엄밀히 말해 하느님께 드리는 기도라기보다, 성삼위 하느님 아닌 다른 존재에게 졸라대는 주술이나 거래 정도가 아닐까 합니다.
기도는 마음 가득한 바람을 안고 하느님 앞에 서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청을 드리는 겁니다. 그런데 그렇게 주님의 이름을 부르는 순간, "예수"라는 이름에 장착된 "말씀"과 "사랑"이라는 필터가 작동하면서 마음속의 욕망은 정화와 정돈의 과정에 들어가게 마련입니다. 결국 영혼의 청원은 더 낮고 더 희생하고 더 품고 더 가난하고 더 나누는 곳을 향하기 마련이지요. 바로 거기에 "아버지의 뜻"이 있고 예수님께서 계시니까요.
"내가 너희를 위하여 아버지께 청하겠다는 말이 아니다. 바로 아버지께서 너희를 사랑하신다. 너희가 나를 사랑하고 또 내가 하느님에게서 나왔다는 것을 믿었기 때문이다."(요한 16,27)
예수님께서는 아버지와 아들, 우리의 관계에 있어서 당신의 역할을 분명히 하십니다. 당신이 중개자로서 희생제사를 통해 우리 죄를 사하심으로 우리가 깨끗해져 하느님 앞에 설 수 있게 해주실 장본인이 맞지만, "바로" 아버지께서 친히 우리를 사랑하고 계심을 강조하시면서 우리 시선과 마음이 하느님을 향하게 하십니다. 성삼위 하느님 내부에 흐르는 서로에 대한 겸손과 사랑입니다.
게다가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사랑하기에 아버지께서 우리를 사랑하시는 거라고 하시네요. 우리에 대한 성부 하느님의 사랑에는 성자 예수님에 대한 사랑이 깔려 있다는 뜻이고, 또 아버지께 사랑받는 비결이 당신에 대한 믿음과 사랑이라고 살짝 귀뜸해 주시는 듯합니다.
"청하여라 받을 것이다. 그리하여 너희 기쁨이 충만해질 것이다."(요한 16,24) 하느님의 자녀인 우리가 성령에 힘입어(로마 8,26 참조), 성자 예수님의 이름으로 성부께 드리는 사랑과 찬미와 청원 등이 곧 기도입니다. 그러니 어쩌면 결코 분리될 수 없는 성삼위 하느님 앞에 선 인간의 모든 행위가 곧 기도일 것입니다. 그리고 기도의 열매는 기쁨입니다.
오늘 제1독서인 사도행전 대목에서는 모처럼 선교의 장이 순조롭게 펼쳐집니다. 그동안 반대와 공격, 박해의 위험이 급박하게 돌아가던 것에 비하면 너무나 평화롭고 또 생명력이 넘쳐 독서 말씀에 머무르는 내내 마음이 기쁘고 흡족합니다.
바오로는 그동안 예수님의 이름을 씨 뿌렸던 곳들을 "거쳐 가면서 모든 제자들의 힘을 북돋아"(사도 18,23) 주고, "달변가이며 성경에 정통하고 이미 주님의 길을 배워 알고 있는"(사도 18,24) 준비된 일꾼 아폴로가 등장합니다. 그리고 "프리스킬라와 아퀼라가 데리고 가서 하느님의 길을 더 정확히 설명해"(사도 18,26) 주며 아폴로의 빈 곳을 보완해 채워주고, "형제들이 그를 격려하며 제자들에게 편지를 써"(사도 18,27) 주지요.
이 모든 움직임을 관상하다 보니, 교회는 어느 한 독보적인 인물에 의해 꾸려지는 영리 집단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미리 준비시켜 부르신 이들이 서로 파견하고 환대하며, 가르치고 배우고, 협력하고 보완하면서, 살이 붙고 혈관이 이어져 가고 뼈가 차오르면서 형성되어 가는 유기체라는 것이 보입니다.
이처럼 하느님 나라, 복음 선포를 통한 구원,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전하는 이들이 자기 안위를 잊고 서로에게 베푸는 선의와 사랑은 그 자체로 하느님께 올리는 기도일 것입니다. 그리고 기도에 대한 하느님의 응답은 일의 성과나 사업의 성공, 숫자의 증가나 빛나는 업적이 아니라 교회 지체들 안에 흐르는 충만한 기쁨일 것입니다.
사랑하는 벗님 여러분, 우리가 부르는 예수님 이름에 하느님께서 계십니다. 또 우리에게 보내시는 하느님의 응답에 예수님께서 계십니다. 그러므로 성삼위 하느님 안에 머무르는 복된 지위에 초대받은 우리가 진정으로, 진정으로 간절히 청할 것은 오직 하나, 하느님이 아닐까 합니다. 그분이 전부이시니 그분을 청해 얻음으로써 모든 것이 뒤따라 올 것이니까요. 마음에 기쁨이 충만해진다면 이미 기도는 시작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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