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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신부님들의 강론

~ 연중 제 32주간 토요일 / 이영근 신부님 ~

연중 제32주간 토요일. 이영근 아오스딩 신부님.

“낙심하지 말고 끊임없이 기도해야 한다.”(루카 18,1)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으로 가시는 막바지 길에서 “기도”에 대한 비유를 들려주십니다. 기도가 그만큼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오늘 <복음>의 “과부의 청을 들어주는 불의한 재판관의 비유”는 “낙심하지 말고 끊임없이 기도해야 한다.”(루카 18,1)는 뜻으로,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들려주신 비유입니다.

 

그런데 “끊임없이 기도하라”는 말씀은 대체 어떤 기도를 말하는 걸까? 흔히 ‘기도의 황금률’이라 불리는 이 기도를 우리는 “끊임없는 기도”(Laus perennis), ‘항구한 기도’, ‘지속적인 기도’, ‘중단 없는 기도’ 등으로 부르고 있습니다. 이 기도는 교회전승 안에서, 주로 서방교회에서는 ‘렉시오 디비나’(lectio divina)의 형태로, 동방교회에서는 ‘예수기도’(εύχη Ιησοû)의 형태로 전승되어 오고 있습니다.

 

그런데 ‘끊임없이 기도하라’는 말씀은 대체 무슨 뜻일까? 그것은 우선, ‘끊임없이 주 하느님을 향하라’는 말씀이라 할 수 있습니다. 곧 기도는 하느님을 ‘향하여’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곧 ‘마음이 동반된 기도’이기 때문입니다. 만약 기도가 주님을 향하여 있지 않다면, 그것은 하나의 넋두리요, 하소연이요, 자기 한탄이요, 독백일 뿐일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기도는 그 어떤 누군가가 아닌, 바로 우리 ‘주님을 향하여’ 있고, 우리 주님과 관계 안에 머무는 것을 말합니다. 곧 그것은 주님을 믿고 주님께 희망을 두고 주님을 사랑하는 일입니다. 그래서 예언자 사무엘은 “기도하지 않는 것은 죄”(1사무 12,23)라고 말합니다. 만약 하느님과 관계 맺지 않고 하느님께 희망을 두지 않는다면, 곧 하느님이 아닌 다른 우상을 향하게 되고 말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아우구스티누스 성인이 말한 대로, 인간은 ‘하느님을 향하여 방향 지워진 존재’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사실은 우리보다 앞서 우리의 주 님 하느님께서 ‘우리를 향하여’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러기에, 예수님께서는 “낙심하지 말고”(루가 18,1) 기도하라고 하십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를 바라보고 계시는 그분이 계시기에, 기도하기를 포기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희망하기를 포기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마치 과부가 판결해주지 않는 재판관 앞에서도 실망하지 않고 간청하기를 포기하지 않듯이 말입니다. 사실, 낙심하지 않고 포기하지 않을 수 있음은 하느님께 대한 ‘믿음’에서 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오늘 <복음>의 마지막 구절에서 우리의 믿음을 찾으십니다.

 

“사람의 아들이 올 때에 이 세상에서 믿음을 찾아볼 수 있겠느냐?”(루카 12,8)

 

그러니 이 “끊임없는 기도”는 “사람의 아들이 올 때”까지의 지속되어야 하는 기도입니다. 그래서 이를 <루카복음의 소묵시록>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기도하기를 결코 멈추지 말아야 할 일입니다. 곧 하느님을 향하여 있기를 멈추지 말아야 하고, 하느님과의 관계 안에 머물러 있기를 멈추지 말아야 할 일입니다. “기도하는 한 사람이 기도하지 않는 한 민족보다 위대하다”는 말이 있듯이, 우리는 세상에서 하느님의 살아있는 증거자가 되어야 할 일입니다. 아멘.

 

 

 

오늘의 말·샘기도(기도나눔터)

“낙심하지 말고 끊임없이 기도해야 한다.”(루카 18,1)

 

 

 

주님!

제 마음이 당신을 향하게 하소서.

이미 제 마음 안에 와 계신 당신을 저버리지 않게 하소서.

늘 저를 향하여 있는 당신을 외면하지 않게 하소서.

당신께 믿음을 두고 당신의 희망이 이루어지게 하소서.

당신의 희망이 저의 희망이 되게 하시고

낙심하지 말게 하소서.

늘 제 안에 살아계긴 당신을 찬미하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