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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신부님들의 강론

~ 연중 제 32주간 토요일 / 이수철 신부님 ~

연중 제32주간 토요일. 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님.

간절하고 항구한 기도

-기도, 믿음, 삶-

 

 

 

루카복음은 기도의 복음이라 할 만큼 유난히 기도에 대한 내용이 많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주님은 “낙심하지 말고 끊임없이 기도할 것”을 권하며 과부의 청을 들어주는 재판관의 비유를 들려 주십니다. 낙심하지 말고, 간절히 항구히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모든 기도에 적용하는 기본적인 기도의 원리입니다.

 

 

 

그동안 강론에서나 피정 강의에서나 참 많이 강조해온 것이 기도입니다. 수도자는 물론 믿는 이들의 신원은 기도의 사람, 하느님의 사람, 그리스도의 사람, 교회의 사람입니다. 그러니 이미 그 신원에서 기도가 첫 자리에 놓입니다. 아무리 강조해도 부족한 것이 기도입니다. 늘 기도해도 기도에는 늘 초보자같습니다. “기도하는 사람”, “하느님을 찾는 사람”은 비단 믿는 이들뿐 아니라 예외없이 사람에 대한 정의라는 생각이 듭니다.

 

 

 

하느님과 사랑과 생명의 소통이 기도요, 말 그대로 기도의 훈련이요 기도의 습관화가 필수입니다. 기도와 믿음은, 삶은 함께 갑니다. 기도없는 믿음이나 삶은 상상할 수 없습니다. 기도하는 대로 살고 사는 대로 기도합니다. 나중 남는 것은 기도한 얼굴인가 기도하지 않은 얼굴인가 둘 중 하나일 것입니다. 기도와 더불어의 믿음, 그리고 삶입니다. 그러니 우리 삶의 여정은 기도의 여정이자 믿음의 여정입니다.

 

 

 

기도의 힘은 믿음의 힘이요 삶의 힘이요 하느님의 힘입니다. 기도와 더불어 날로 주님과 깊어지는 믿음의 관계가 내적힘의 원천입니다. 과연 날로 깊어지는, 날로 성장, 성숙하는 주님과 믿음의 관계인지요. 저는 수도원 하늘길 가로수들인 메타세콰이어 나무들을 볼때마다 우리의 내적성장을 묵상하곤 합니다. 기도와 믿음, 삶은 함께 갑니다. 제가 여기서 늘 강조하는 말마디가 있습니다.

 

 

 

“넘어지면 일어서고, 넘어지면 일어서고... 바로 기도와 삶의 자세이다. 이래야 한결같은 영적탄력이다. 넘어지면 곧장 일어나서 다시 시작하는 것이다. 넘어지는 것이 죄가 아니라, 절망이나 낙심으로 자포자기하여 일어나지 않는 것이 대죄다. 넘어지면 즉시 일어나 새롭게 시작하는 것이 바로 기도와 믿음, 삶의 자세이다.”

 

 

 

이래서 간절하고 항구한, 한결같고 끊임없는 기도를 강조하는 것입니다. 수십년간 참 많이 강조해온 말마디도 생각납니다. “노년의 품위유지를 위한 우선 순위는 1.하느님 믿음, 2. 건강, 3.돈이다.” 또 거칠다 싶은 표현도 있습니다. “물보다 진한게 피이고 피보다 진한게 돈이고 돈보다 진한 게 하느님 믿음이다. 정말 자녀들에게 물려줄 최고의 유산은 하느님 믿음이다. 이런 믿음을 위해 기도해야 한다. 기도가 답이다.”라는 말마디입니다.

 

 

 

오늘 복음의 과부의 청은 참 간절하고 절박합니다. 흡사 배수진을 친, 목숨을 건 간절한 청원입니다. 말그대로 종신불퇴終身不退의 자세입니다. 불의한 재판관을 항복에로 이끈 과부의 간절한 청원이요 기도와 믿음, 삶도 이와 같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목숨을 건, 참으로 간절하고 절박한 항구한 기도여야 한다하시며 주님은 당대의 제자는 물론 오늘의 우리를 향해 말씀하십니다.

 

 

 

“이 불의한 재판관이 하는 말을 새겨 들어라. 하느님께서 당신께 선택된 이들이 밤낮으로 부르짖는데 그들에게 올바른 판결을 내려 주지 않으신 채, 그들을 두고 미적거리겠느냐?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하느님께서는 그들에게 지체없이 올바른 판결을 내려 주실 것이다. 그러나 사람의 아들이 올 때에 이 세상에서 믿음을 찾아볼 수 있겠느냐?”

 

 

 

간절하고 항구한 기도에 앞서 기도의 지향이 하느님의 뜻에 맞는지 분별함이 우선입니다. 정말 내뜻이 아닌 주님의 뜻에 따른 간절하고 항구한 기도라면 우리 방식이 아닌, 하느님의 방식으로 나의 때가 아닌 하느님의 때 반드시 이뤄주실 것이란 믿음입니다.

 

 

 

“그러나 사람의 아들이 올 때에 이 세상에서 믿음을 찾아볼 수 있겠느냐?”

 

 

 

바로 오늘 우리에게 주어지는 물음입니다. 언젠가 갑자기의 믿음은 없습니다. 말그대로 기도와 함께 가는 믿음의 여정입니다. 우리의 정주의 수도생활은 말그대로 믿음의 내적 여정입니다. 오늘 과부의 청원과 같은 간청의 기도만 있는 게 아니라 찬미와 감사의 기도도 있습니다. 바로 우리 수도자들이 바치는 평생 공동전례기도인 시편성무일도와 미사가 바로 그러합니다. 새삼 기도도, 믿음도, 찬미와 감사도, 기쁨과 평화도, 행복도 선택이자 훈련이요 습관임을 깨닫습니다. 바로 찬미와 감사의 기쁨을 노래한 행복기도의 다음 대목입니다.

 

 

 

“주님, 눈이 열리니 온통 당신의 선물이옵니다.

당신을 찾아 어디로 가겠나이까

새삼 무엇을 청하겠나이까

오늘 지금 여기가 하늘 나라 천국이옵니다.

 

 

 

끊임없는 찬미와 감사의 기도와 삶중에 당신을 만나니

당신은 우리를 위로하시고 치유하시며

희망과 기쁨, 자유와 평화를 선사하시나이다.”

 

 

 

말그대로 그럼에도 불구하고 찬미와 감사의 기쁨, 찬미와 감사의 행복으로 오늘 지금 여기 삶의 꽃자리에서 하늘 나라 천국을 살아가는 수도자들이요 참으로 믿는 이들입니다. 우리 믿는 이들은 평생 제대가 없는 평생 영적전쟁중인 영원한 현역의 주님의 전사라 했는데, 죽어야 끝나는 영적전쟁이요 평생 기도의 전사, 믿음의 전사가 우리의 신원입니다. 그러니 궁극의 영적승리를 위해 하느님의 뜻에 따라 이런 간절하고 항구한 기도는 필수이며 이런 분투의 노력과 더불어 성장, 성숙하는 은총의 믿음입니다.

 

 

 

오늘로서 제1독서 지혜서는 끝납니다. 참으로 찬미와 감사의 기도와 삶이 지혜의 절정임을 깨닫습니다. 오늘 지혜서의 다음 장면은 영적승리를 상징하는 ‘찬미와 감사의 여정’, 끊임없는 ‘탈출(엑소더스)의 여정’중인 우리의 영적 삶에 대한 묘사같습니다.

 

 

 

“홍해는 장애물이 없는 길로,

거친 파도는 풀 많은 벌판으로 바뀌었습니다.

당신 손길의 보호를 받는 이들은 그 놀라운 기적을 보고,

온 민족이 그곳을 건너갔습니다.

그들은 풀을 뜯는 말들같았습니다.

또 어린 양들처럼 이리저리 뛰면서

주님, 자기들을 구해내신 당신을 찬양하였습니다.”

 

 

 

끊임없고 한결같은, 간절하고 항구한 찬미와 감사의 기도와 삶을 통해 오늘 지금 여기서 실현되는 해방과 자유의 하늘나라요, 바로 이 거룩한 미사은총이 우리 모두 이렇게 살도록 도와 주십니다. 아멘.